ⓒ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금 우리 경제와 자본시장은 최근 1~2년간 지나친 호황을 맛보며 호황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강해졌어요. 그래서 지난해 실적 감소와 시장 하강에 대해 우려가 커진 거지요. 사실 감소한 실적과 시장 하락은 우리 산업과 시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고 여전히 나쁘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 산업과 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이 경쟁력이 최소 5~10년은 유지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영향으로 2019년 한국 시장의 가치는 정상적 수준에서 봤을 때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와 있습니다. (투자하기에) 절대 비싸지 않은 시장이지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이채원(54) 대표가 2019년 한국 산업과 자본시장을 전망하며 한 말이다. 이채원 대표는 한국 주식시장의 대표적인 가치투자가이자 장기투자가로 정평이 나 있다. 트렌트와 테마를 활용하거나 성장성에 주목한 투자보다, 높은 잠재 가치를 지닌 우량 소외기업 발굴과 중·장기투자로 상당한 수익을 거둬온 투자가로 유명하다.

이런 이채원 대표가 2019년 한국 산업과 시장에 대해 “지나친 우려나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볼 이유는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한국 산업과 시장이 짧은 시간 지나치게 좋았던 상태에서 지금은 그보다는 조금 덜 좋지만 정상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산업계와 주식시장 역시 여전히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2019년 자본시장의 트렌드에는 분명히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본시장이 최근 몇 년 인덱스펀드와 ETF 같은 패시브 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던 것과 달리 2019년부터는 액티브 성향의 펀드와 자본이 시장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와 행동주의 성격을 가진 자본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산업·시장 아직 경쟁력 있어

여의도의 한 빌딩에 자리 잡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만난 이 대표와의 인터뷰는 투자시장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사실 한국의 산업과 시장을 바라보는 국내외 투자시장의 시각은 불과 몇 달 전인 2018년 초가을을 기준으로 급변했다.

지난해 8월 모건스탠리 등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한국 기업들이 주도해온 ‘반도체 수퍼호황’이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후 삼성전자 등이 주도해온 반도체 시장의 호황세가 꺾이는 현상이 실제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초(超)호황이 실제로 끝나가면서 삼성전자와 반도체·IT관련 주요 기업들의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덩달아 확산되고 있다. 또 이런 우려가 한국 경제와 산업, 특히 자본시장으로까지 빠르게 전이되며 경제·산업·투자시장의 동반 하강 현상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철강·자동차·기계 등 전통 제조산업의 경쟁력이 급락한 상태에서 최근 몇 년 한국 산업과 시장을 지탱하던 반도체산업의 호황까지 꺾이자 투자 심리가 급랭한 것이다.

이채원 대표 역시 ‘반도체시장이 안 좋아질 것’이라는 국내외 시각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근 몇 년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것이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좀 더 객관화된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도체를 예로 들면 최근 1~2년간 50조원을 벌다가 이제 30조원쯤 벌게 된다는 전망입니다. 지나친 호황이었던 1~2년 전과 비교하면 나쁜 것이지만 불과 3~4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반도체산업과 관련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여전히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경쟁력 또한 5~10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또 다른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 분야도 비슷합니다.(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침체 전망이 강하지만) 3~4년 전까지 1조~2조원을 벌었는데 1~2년 전부터 갑자기 3조~4조원으로 수익이 급증한 것이 냉정히 말해 문제였던 겁니다. 이런 수익이 2019년 2조원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하면 (비정상적 수준이던) 1~2년 전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3~4년 전보다는 훨씬 잘 버는 것이지요.”

이 대표는 현재 반도체 호황 종말과 미·중 간 무역분쟁, 중국 경기 둔화 등의 이슈로 우려가 커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출 상황 역시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율이 1달러당 1120원 정도면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1월 현재, 1달러당 원화 환율은 1110원대 중반에서 1130원대 초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대표는 “비정상적으로 좋았던 것이 덜 좋은 상태로 가는 것이지 안 좋은 상태로 가는 게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지난 1~2년간 기대 이상으로 좋은 시장이 이어지면서 2018년 하반기의 시장 하락이 산업계와 투자자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한국 시장이 꺾였다’보다는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시각이 오히려 정확한 관점”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우리 자본시장, 특히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객관적 통계나 수치를 분석하기보다는 국내외에서 전해지는 몇몇 이슈들에 의해 감정적인 면에서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꺾였다기보다 제자리 찾아가는 것

이 대표가 2019년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미·중 무역분쟁, 미국 경기 둔화와 주요 IT기업들의 실적 악화, 수년간 이어진 상승장의 피로 누적 등 여러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크게 동반 하락했다. 이와 함께 세계 자본시장 곳곳에서 ‘유동성이 만들어준 상승장이 이제 끝났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최근 수년간 이어진 지수 급등이 2019년 시장에서는 더 이상 없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시장이 빠르고 급하게 하강한다는 전망도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큰 틀에서 보면 6개월 후쯤 지수 등락의 바닥이 어느 정도 확인되면, 지수가 일정한 폭을 갖고 위아래로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수의 등락 폭이 얼마나 될지, 저점이 어디일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소위 말하는 ‘보합 시장’의 형성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2019년 한국 시장이 투자 관점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투자 매력도가 지난 몇 년 전 시장보다도 나을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분석이다. “지금 우리 시장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8배 수준인데 이것마저 깨지려 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2007년 리먼사태 당시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지요. 최근 몇 년 한국 기업들의 수익이 확대됐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그대로 축적한 상황에서 2018년 말 지수와 주가 하락이 오히려 한국 시장과 기업의 자산가치를 높여준 역할을 한 겁니다.(1997년 외환위기 같은 것을 빼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봤을 때 한국 시장의 PBR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온 셈입니다.”

한국 시장 PBR 역대 가장 낮은 수준

이 대표는 한국의 GDP와 비교한 시장상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국의 GDP 규모가 약 1700조원 정도 되는데 코스피시장의 시가총액이 1300조원대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가총액이 GDP 대비 80% 아래로 떨어진 것이죠. 이 수준이라면 비싼 시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지표들을 바탕으로 분석하면 다른 주요 자본시장이나 경쟁 관계에 있는 신흥국 시장들에 비해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 대표는 “2019년 한국 시장이 급등락하지 않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액티브 펀드나 자산들이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이유와 구조는 다르지만 2019년 시장의 지수 움직임 등 외형은 2011~2015년 벌어진 박스권 시장과 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스권 시장에서는 지수를 따라가는 인덱스펀드 등 패시브형 자산보다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액티브형 자산이 보다 높은 수익과 투자 성과를 올리는 데 효과적이다.

이 대표는 2019년 시장의 움직임이 2011~2015년의 흐름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면 결국 액티브 펀드 같은 자산의 움직임이 당연히 눈에 띄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수년간 대형 인덱스펀드와 ETF 등 패시브 자산이 주도하던 주식시장의 투자 패턴이 올해는 좀 더 적극적 성격의 액티브 자산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지수를 중심으로 유입되던 자본의 방향이 특정 종목과 산업 중심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 대표는 크게 ‘성장성’과 ‘자산’이 투자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경제 전체는 물론 주요 산업들이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투자시장에서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과거보다 더 강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이런 성장성을 갖춘 기업과 산업이 몇 안 되고, 그나마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성장성’이 부각되는 산업이나 기업이 등장하면 전통적인 성장의 시대보다 더 많은 돈과 사람이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돈·사람 몰리는 곳 조심해야

하지만 이 대표는 찾기 쉽지 않은 성장성보다는 ‘쌓여 있는 자산’이 더 주목받는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저성장 시장에서 투자 자본은 본능적으로 ‘고여 있는 물을 정화해서 마시자’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유동성 파티를 통해 많은 기업들이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게 사실인데 바로 이런 기업들의 투자매력도가 부각되고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우량자산을 상당 규모로 축적해둔 기업들의 가치가 부각되고, 재평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 증가하고 있는 행동주의 성격의 자본들 역시 2019년 시장에 또 하나의 투자 흐름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대형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이전보다 더 강하게 주주 친화적인 목소리를 키우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 이채원 대표에게 “2019년 개인투자자들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식, 채권, 부동산, ELS 등 무엇이 됐든 급작스럽게 인기가 치솟고 돈과 사람이 몰리는 곳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든 전문가든 누구나 좋다고 하는 것에 열광해 당장 뛰어들기보다, 지금은 소외돼 있지만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상을 찾는 게 개인도 망하지 않는 투자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조동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