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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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산업과 시장이 동시에 안고 있는 문제는 향후 10년을 이끌 신성장동력이 없다는 겁니다. 기업의 경쟁력·수익성·주식의 품질 문제로 파고들면 한국 기업들 중 앞으로 5~10년간 투자할 만한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2019년 한국에 들어올 주요 자본은 빠르게 움직이는 단기 자본이 대다수가 될 전망입니다. 신성장동력을 갖춘 기업에 중장기 투자하는 자본보다, 금리나 환율 차로 인해 발생할 단기 수익을 노리는 자본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큽니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 김한진(58) 수석연구위원이 전망한 2019년 한국 시장의 모습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2019년 한국 경제와 산업계, 또 금융과 자본시장 모두 중장기 성향의 안정적 자본보다는 소위 ‘핫머니’로 불리는 단기 자본들이 수익을 내기 유리한 환경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한국 시장이 “투자 매력이 없는 시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풍부한 유동성과 외환보유고, 비교적 낮은 금리 상황 등 건전성과 금융 환경 면에서 다른 주요국이나 신흥국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에서 반도체 등 주력 산업들이 사실상 하강국면에 들어섰고, 반도체나 IT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마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성장성과 혁신성을 가진 산업과 기업에 투자하는 중장기 자본보다 환율·금리 같은 이슈에 따라 치고 빠지는 단기 자본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돼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커진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2019년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몇 년간 좋지 못한 경제 상황이 이어지던 중국에 이어 그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오던 미국 역시 2018년 중반을 기점으로 경기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이기에 이 두 공룡 국가의 경기 하강 여파를 피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김 수석연구위원도 2019년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바로 이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뚜렷하게 도드라진 위험요소는 없지만 사회와 경제 전반에서 지속돼온 구조적 문제들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맞물리면서 2019년 경기를 점진적으로 하락시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한진 수석연구위원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과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등을 거쳐 현재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1세대 이코노미스트로 유명하다. 자본시장에서 손꼽히는 학구파로, 특히 경제 전망과 함께 투자 자산 배분 분야에서 성과를 올려왔다.

여의도 KTB빌딩 리서치센터에서 만난 그는 “2018년 중반 이후 세계 경기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며 “미국 경기가 꺾이고 신흥국 경기가 연쇄적으로 꺾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IT와 반도체를 재료로 빠르게 성장했던 미국 경제가 지난해 중순 이후 하락세로 들어서며 한국 주력 산업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미국 IT기업들의 성장 수혜를 누려왔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2019년 쉽지 않은 해를 맞을 것”이라며 “이들 주력 산업이 어려워지면 한국 경제와 산업 전체가 힘든 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락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반도체를 대신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와 산업에서는 그 대체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떠나 중국 역시 이미 수년 동안 경기 악화에 빠져 있는데 이런 중국의 상황으로 인해 반도체 이전부터 한국의 주력 산업이던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구(舊) 산업 역시 침체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결국 최근 1~2년간 호황을 맞으며 한국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산업의 상황이 나빠지고, 석유화학과 철강 등 기존 주력 산업의 경기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경제 전반의 하락세를 피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2019년 어느 순간 큰 충격을 받거나 갑작스럽게 깊은 침체에 빠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그는 “2007년 미국 리먼사태가 불러온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갑작스러운 쇼크상태로 간다는 건 아니다”라며 “당시의 경제 침체와 지금의 경기 하강은 그 성격과 구조가 다르다”고 했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지금의 경기 하강은 리먼사태 때처럼 허구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졌다거나 금융·투자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경제 전반에 걸쳐 돌아다니고 있는 과도한 유동성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들이 불거지고, 이런 문제들이 전체적인 경제 체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는 “특히 지금 한국이 맞고 있는 경제 하락은 조금 독특한 형태”라면서 “뚜렷하게 어디가 문제이고 명백한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찾기 힘든,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지속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해 경기 전체를 하락 국면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2019년 한국 경제”라고 진단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꼭 집어내기 힘든 채 골골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어떤 충격에 의해 나빠진 것이라면 충격을 가한 요인만 제거하면 빠르게 경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외환 불일치나 금융시스템 위험 같은 문제라면 이 요인을 제거하고 완화하는 식으로 문제가 해결됐죠. 그런데 지금은 ‘어디가 문제다’ ‘이걸 해결하자’는 위험요인을 집어내기 힘들다는 거지요.”

한국의 경제 하락은 독특한 형태

즉 뚜렷한 위험요인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과거와 달리 경기 회복을 위한 해법 찾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가 전망하는 올해 투자와 자산시장은 어떨까. 이에 대해 그는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과 “외국인이 주도하는 시장” 등 크게 두 가지로 전망했다. 특히 다른 신흥국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장기투자나 지속성을 가진 투자보다 단기 차익을 노린 외부 자금의 유출입이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전체적인 경제 환경과 주력 산업이 약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충격이 가해져도 자본시장이 큰 충격을 받으며 출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2019년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금융시장이나 유동성이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외부 요인이나 한국 내부 상황 모두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미룰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경제 상황만 보면) 오히려 (기준금리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요.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금리를 올리기 힘들 겁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채권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금리 하락이 향후 2~3년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요.”

현재 중국 등 상당수 신흥국들은 심각한 부채 문제에 빠져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의 초저금리 정책 덕분에 신흥국들과 신흥국 주요 기업들이 대거 달러를 가져다 쓰면서 부채가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 미국 연준이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신흥국들에 달러 부채는 당장의 급한 불이 되고 있다. 신흥국들의 성장성 문제는 둘째 치고 당장 이들 국가의 성장을 이끌던 주요 기업들의 건전성 문제와 함께 금융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상당수 신흥국이나 신흥국 주요 기업들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가는 안정적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있고, 주요 기업들은 신사업이나 설비투자에 나서지 않은 만큼 엄청난 이익을 유보시켜 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단기 부채 역시 적은 상황이다.

핫머니 유입되는 거친 박스권 장세

김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달러나 단기) 부채 문제에서 충격이 적다”며 “수출이 완전히 몰락하거나 기업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사실상 매우 적다”고 했다. 이런 환경이 해외 자본들이 올해도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게 할 요인이라는 것이다.

“지금 주요 선진국이나 신흥국들 상황을 보면 주식 등 살 만한 투자처가 많지 않아요. 특히 신흥국 주식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결국 성장성은 약하지만 안정성을 갖춘 한국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외부자금 유입이 지속성을 갖기보다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코스피가 2300포인트를 넘지 못하는 저평가 상태이고 금리가 하락하는 환경에서는 투자 자본에 한국 시장은 ‘먹을 게 있는 동네’ 정도로 보일 겁니다. 그런데 ‘얼마나 먹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오래, 많이 먹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는 “한국 주식시장이 지속해 오르려면 경기가 좋아져야 한다”며 “문제는 2019년이 경기 하강 국면 초입이라는 점이다.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적어도 앞으로 2~3년간은 금리 하락과 경기 하강의 그림 속에서 금융 환경과 환율 변화에 따른 유동성 장세와 기술적 반등이 반복될 것”이라며 “이런 시장을 이끄는 것이 외국인, 특히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금융·유동성 장세가 올 상반기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기도 하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올해는 원화 강세 가능성이 있다”며 “원화가 강세를 나타낼 때 외국 자본이 한국 자본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하반기 경기가 더 안 좋아지면 시장도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이유와 구조는 다르지만 코스피가 1800~2200포인트 선을 오르내리던 2011~2015년의 지루한 박스권 시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나타났던 박스권 시장보다 2019년이 좀 더 거친 시장이 될 가능이 있다”며 “지수나 자금이 박스권 안에서 짧은 시간 급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핫머니가 단기간 유입됐다가 빠르게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혁신적이고 성장성을 갖춘 새로운 우량기업이나 산업이 등장해야 하는데 2019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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