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7시간의 수면을 취한다, 매주 적어도 3번의 유산소운동과 2번의 근력운동을 한다, 업무 외에 내가 진정으로 즐기는 활동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진다, 수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보통 산만해지지 않고 한 번에 한 가지에 잘 집중한다,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은 서로 일치하는 편이다.”

지난해 회사에서 진행한 ‘에너지 매니지먼트(Energy Management)’ 캠페인 중 ‘에너지 감사(audit)’에 나온 항목들이다. 각 항목들에 답을 한 뒤 신체적·정서적·정신적·영적 에너지의 합산으로 자신의 에너지 수준을 측정했다. 의도적인 작은 변화만으로 개인의 성과, 행복도, 웰빙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면서, 구체적인 방법과 요령도 전해줬다.

글로벌 회사가 세운 비전과 목표 달성, 조직 관리를 하기에도 분주한데, 왜 난데없이 각자의 에너지 얘기를 꺼내는 걸까.

에너지 매니지먼트 워크숍 때 나눴던 대화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전날 잠을 못 잤거나, 어떤 사소한 일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면 그런 신체적·정서적 에너지는 우리 삶에 그대로 영향을 주지 않던가요?”

우리는 각자의 에너지 수준을 살펴본 뒤 소회를 나눴다. “내 육체 에너지가 그렇게 바닥일 줄 몰랐다” “책임감과 사명감만 앞섰지 정작 몸 상태는 번아웃 직전이었구나” “쉼표를 찍어줘야 더 긴 경기를 달릴 수 있는 것인데…” “내 마음을 좋게 만드는 것엔 왜 그렇게 관심이 없었을까”….

한 직원은 “이제까지 접한 사내 캠페인과 달리 나라는 사람 자체를 깊이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한 팀원은 “에너지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은 ‘뭔가를 이루고 더 잘 달성하자’가 아니라, 회사가 개개인을 귀하게 여기고 보듬어주는 것같이 여겨져 참 좋았다”고 했다.

사전에 따르면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용량(Capacity)’, 혹은 ‘인간이 활동하는 근원이 되는 힘’이라고 한다. 일하는 능력이나 역량과는 다른 개념이다. 조직에서 ‘에너지 관리’라 하면, 직원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체계적으로 확장하고 재생하게 함으로써 시간과 노력을 더 잘 관리하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겠다.

실제 ‘에너지 프로젝트(Energy Project)’라는 미국 회사는 구글·페이스북·코카콜라·화이자 같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으로 이 개념을 조직 내에 전파하고 있다. 이 회사의 창립자이자 CEO인 토니 슈왈츠(Tony Schwartz)는 ‘완전한 몰입의 파워(Power of full engagement)’란 책에서 “하루 시간은 고정돼 있지만,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양과 질은 그렇지 않다”며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 조직에서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시간이 아니라 당신의 에너지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프로젝트’에선 각자의 에너지를 네 가지 측면에서 측정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신체적(physical) 에너지’는 순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정서적(emotional) 에너지’는 에너지의 질과 연결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배양해야 위기와 난관에서 회복 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한 번에 한 가지에 몰입하는 주의와 집중력을 뜻하는 ‘정신적(mental) 에너지’는 주로 창의력과 통찰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영적(spiritual) 에너지’는 누군가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실행할 때나 높은 가치를 갖고 행동할 때 발산되는 목적 에너지라고 한다.

한번은 본사에서 고위임원이 왔을 때 그녀의 에너지 관리에 대해 물어봤다. “일단,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어요. 그게 출발점이고요. 저녁에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보내는 두세 시간 동안은 아예 휴대폰을 꺼놓아요. 그런 뒤 다시 컴퓨터와 휴대폰을 켜고 밤에 화상회의를 해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상사가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주말엔 정말 급한 일 아니면 그렇게 바로바로 이메일 답장 안 해도 됩니다. 그 다음주에 더 몰입해서 일하려면 확실한 휴식이 필요하죠.”

에너지 매니지먼트는 ‘일에 대한 수요와 강도는 계속 높아만 가는데, 각자의 에너지 용량은 그것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에너지를 그냥 소비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재생산해서 회복 탄력성을 가질지가 그만큼 중요해진다. 높은 강도의 업무와 목표 달성에 밀려서 에너지를 마냥 소비하지 않고 빨리 재생산하고 회복하는 데에 개인과 조직의 승부가 갈린다는 것이다.

‘에너지 프로젝트’에선 누군가에게 작은 감사의 노트를 보낸다든지, 월·수·금 3일만큼은 꼭 땀 흘리는 운동을 한다든지, 밤에 자기 전에 다음날 입을 옷을 미리 준비해놓는다든지, 잠들기 전에 그날 좋았던 점 세 가지를 적는 등 사소한 것들이 반복될 때 갖고 올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최근 몇 년간 애플·페이스북·구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천문학적 돈을 들여 사옥을 신축하는 붐이 일고 있다. 격의 없이 소통하는 열린 업무공간은 기본이고, 놀이터 같은 휴식공간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모바일 업무, 탄력 집중시간제 같은 근무 형태가 일반화되어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드는데도 이런 공간 마련에 힘쓰는 것 역시 직원들의 정신적·신체적 에너지를 충전해 최고의 업무 효율과 창의성을 이끌어내려는 것이겠다.

돌아보면 각자의 에너지 관리는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 역시도 능력이어서, 경쟁의 대상으로 봤는지도 모른다. 또 충분한 에너지 용량이 없는 개인과 조직에 역량 강화만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한 동료는 “상사가 ‘에너지 레벨이 좀 떨어진 것 같다’고 할 때, 내가 의욕상실인 것처럼 보여지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면서 “그 부분을 꺼내놓고 함께 고민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니 일도 그렇고, 개인 삶도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글로벌 회사들이 이끄는 에너지 매니지먼트는 그것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지 않고 회사도 관심을 갖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식이다. 실제 에너지 프로젝트에선, 각 개인에게 여러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동시에 ‘조직은 개인의 각기 다른 에너지 관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제시한다.

요즘 주변에서도 워라밸(일과 개인 삶 간의 균형), 자율 출퇴근제, 복장 자율화같이 직원들의 근무 환경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 다음 단계야말로 각자의 일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 부분의 관리 아닐까. 토니 슈왈츠가 강조한 대로 “모든 건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떠올려본다. 개인의 즐겁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모여서 팀과 조직의 에너지로 이어질 테고, 그것이야말로 기업이 돈 들여 투자해서 살 수 없는 힘이겠다. 이것이 긍정적인 기업문화와 창의적이고 혁신성을 갖춘 성과 달성으로 이어질 것도 분명하다. 이번 주는 동료와 팀원들을 만날 때 나와 그들의, 우리의 에너지에 대해 좀 더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황성혜 한국화이자제약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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