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photo 뉴시스
지난 4월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photo 뉴시스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 김영삼(YS) 대통령 때 일이다. YS가 취임한 뒤 처음으로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치했다. 이때 재벌 총수들은 누구랄 것 없이 일찍 가서 대기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대선에 출마해 YS를 괴롭혔기 때문에 재벌 총수들은 YS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날은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방에서 상경이 늦어 한 총수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다른 총수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됐다. 그 총수는 들어서자마자 90도 각도로 절하며 “각하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공교롭게도 YS와 인연이 있었던 총수였다. YS도 웃으면서 넘어가 별다른 ‘위기’는 없었다.

전두환 시절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이 집안 문제로 청와대 초청 행사에 늦었다가 재계 랭킹 7위였던 그룹이 공중분해된 사실은 지금도 회자되는 얘기다. 물론 이는 조금은 과장된 면이 있다. 신발산업의 한계와 청와대 초청 불충 등이 어우러져 그럴듯하게 각색돼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정반대의 얘기도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중소기업 오너인 C씨를 청와대로 불렀으나 그 기업인은 혹시 정치자금을 내라고 하는 줄 알고 안 간 적이 있다. 전 대통령이 “왜 그 기업인 안 왔냐”고 해서 당시 주무 장관이 직접 C씨를 찾아가 만났다. “왜 안 오셨냐”고 묻자 그는 “저는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이라 정치자금을 낼 형편이 안 돼 안 갔다”고 하자 그 장관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 기업인이 전 대통령의 대구공고 후배라 부른 것인데 정치자금을 내라는 것으로 착각해 안 간 것이었다. 그 뒤 그 기업은 일취월장했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업과 C씨는 전 대통령 퇴임 뒤 세무조사 등으로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견실한 기업 경영으로 현재 알토란 같은 회사가 됐고, C씨 역시 알짜 재벌 반열에 오른 기업 총수가 됐다.

이렇듯 기업과 정권은 항상 긴장과 유대가 이어진다. 김대중(DJ)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DJ가 취임하자 기업인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상태에서 취임한 대통령이라 재벌 총수들은 고개를 들 형편도 안 되었다. 하지만 1997년 12월 19일 취임 일성으로 “모든 기업을 권력의 사슬로부터, 권력의 비호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것”이라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들이 우스꽝스럽고 불쌍하다”

그러나 DJ는 정부로부터 모든 기업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이른바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LG그룹은 이때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현 하이닉스)에 넘겨야 했고, 석유화학 분야도 빅딜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DJ 정부 시절 혜택을 받은 기업과 기업인이 있는 반면 혹독한 시련을 겪은 기업도 있었다.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당시 김우중 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서 DJ 정권의 재벌정책에 적극 호응했다. 대우그룹의 유동성 등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그 절반만 투입됐어도 대우그룹은 해체되지 않았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 회장은 한참 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입만 열면 대마도 죽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누가 대우에 자금을 대주겠냐.” 여신 연장은커녕 회수하기 바쁜데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대우 임직원들과 채권 은행, 협력업체, 국민이 감수해야 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재벌 총수들의 수난은 계속됐다. 노 대통령이 취임하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업인들이 대거 ‘수행’한 적이 있다. 재벌 총수들을 승합차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당시 함께했던 관료는 필자에게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었다. “회장님들이 우스꽝스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좁은 승합차에 끼어앉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통령이 도착할 때까지 대기해야 하고 행사 끝나면 승합차를 찾느라 뛰어다니기 바빴다.”

몇 년 전 국정농단 청문회 때는 더 가관이었다. 재벌 총수들을 청문회장에 불러놓고 한 국회의원이 “촛불집회에 가본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일갈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한 외신 기자가 “세계 토픽감도 이런 토픽감은 없다”고 필자에게 피력한 적이 있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 롯데그룹 등은 글로벌 기업이다. 이를 이끄는 총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CEO들이다. 아직도 정부는 기업인들을 동행하면서 ‘수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세상은 모두 투명해지고 글로벌해졌는데도 정권을 잡은 사람은 권위주의 사고를 못 버렸다는 방증이다.

“기업 할 수 있는 나라만 돼도 좋겠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집권하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어느 기업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커녕 기업 할 수 있는 나라만 돼도 좋겠다”고 말이다. 문재인 정권도 마찬가지다. 상생을 부르짖으며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한다. 특히 정권이 시작되면 대통령은 재벌의 방만한 경영을 질타하고 중소기업과 상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대기업에선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며 화답한다. 역대 정권이나 지금 정권이나 똑같이 되풀이되는 시나리오다.

기업은 생물이다. 옥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겨야만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법이다. 법을 위반하거나 반칙 플레이를 하면 법과 제도에 의해 단죄하면 그만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 들어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를 넘어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대기업과 그 총수들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공권력을 총동원해 대기업을 옥죄는 형국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툭하면 기업 총수들을 범법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 겁박하거나 여론몰이로 기업인을 죄악시해서는 시장이 살아날 수가 없다. 경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물이기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역시 대기업 총수 옥죄기의 일환이었다는 시각이 재계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경찰과 검찰, 국세청 등 공권력을 총동원해 압수수색 18회에다 소환만 14회 당했다. 일가족 모두가 공권력의 포토라인에 서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를 버텨낼 기업이나 기업인이 얼마나 될까. 문제는 조 회장의 사망으로 한진그룹호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 회장이 한진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회장 때부터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때 조 회장은 부친인 조중훈 회장이 살아 있어서 그런지 무척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공대 출신답게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2005년 다시 한 번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얘기를 풀어갔다. 정비 분야뿐 아니라 향후 비전까지 망설임이 없었다. 조 회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학업을 이어가다 부친이 설립한 인하대학교로 편입해 졸업한 후 베트남전까지 다녀왔다.

조양호의 영광과 굴욕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후 1992년 대표이사 사장,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고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은 ‘위기를 기회의 순간으로 만든 점’이라고 재계에선 평가한다. 1997년 외환위기일 때 자체 항공기를 과감하게 매각해 임차로 돌리면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외환위기가 절정일 때인 이듬해엔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라크전쟁과 9·11테러 등으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됐을 때인 2003년엔 A380 항공기 구매 계약을 맺어 세계 항공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 뒤 대한항공은 승승장구했고 세계적인 항공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세계 항공업계가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때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 Team) 창설을 주도한 것도 조 회장이었다.

그는 또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 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 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했다.

조 회장은 ‘항공업계의 유엔’이라고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Board of Governors) 위원, 2014년부터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Strategy and Policy Committee) 위원을 맡았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2009년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에 선임됐다. 2009년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주요한 역할을 했다.

영광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고,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른 뒤에는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지만 결국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되고 말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타의로 물러난 것도 조 회장에게는 씁쓸한 기억이었다. 당시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조 회장은 조직위에 파견된 한진그룹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외부 환경에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결정적 타격은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가 알려지면서부터다. 장녀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조금 잠잠해질 무렵 다시 막내딸인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이 불거져 나오면서 조 회장 일가의 수난이 연속되었다. 아내인 이명희 여사의 욕설 동영상이 공개되는가 하면 시민 사회단체로부터의 고발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경찰과 검찰의 압수수색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선임이 부결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정관을 만든 것도 결국 조 회장이다. 자기가 만든 덫에 자기가 걸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조양호 회장이 없는 한진그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장남인 조원태 대표이사가 있지만 경영수업을 다 받았다고 할 처지는 안 된다. 아버지가 뒤에서 후견인으로 있으면서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면 모를까 부친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또 하나는 지분 문제다.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위력을 발휘한 2대주주인 이른바 ‘강성부 펀드’인 KCGI와 국민연금이 변수로 남는다. KCGI 및 국민연금의 합산지분은 20.81%여서 단순 계산으로도 조 사장 측이 최대주주 지위를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제주 2공항 해결하고 상속세와 상쇄?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구조를 보면 조 회장 일가의 우호 지분이 28.95%다. 이 가운데 조 회장이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조원태 사장 2.3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2.31%,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2.30% 등으로 조 회장 자녀들의 지분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상속세를 내고 나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 회장 별세 소식이 알려졌을 때 주가가 급등한 이유도 지분 싸움이 일어났을 때 주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실제로 상속세율을 50%로 가정할 때(상속세율 단순 적용), 한진칼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03%밖에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조 회장 일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기서 다시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제주에 있는 한진그룹 계열사 소유의 정석비행장이다. 현재 제주는 제2공항 신설 문제로 반대 단체와 찬성 단체가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다. 서귀포시 성산포 일대를 제2공항 부지로 선정했으나 일부 단체들이 잘못 결정된 것이라며 극렬 반대하고 있다. 제2공항 신설안을 내놓을 때부터 정석비행장을 활용하면 되지 않겠냐는 얘기들이 현지에서 회자되었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어떻게 하느냐는 반대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정석비행장과 제2공항 부지는 바로 인접해 있어 지리적 여건도 비슷하다. 조양호 회장이 타계하면서 이 부분이 다시 수면 위로 오르지 않겠냐는 얘기들이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즉 한진그룹이 제주에 소유하고 있는 정석비행장을 상속세와 상쇄하는 식으로 처리하면 정부와 제주도민, 한진그룹 모두가 ‘윈(WIN)’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제2공항 문제로 시끄러운 제주공항 문제도 말끔히 해소하고 조양호 회장 일가는 그룹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묘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진그룹을 ‘조씨 일가’가 지키느냐는 문제뿐 아니라 현 정부의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에 또 다른 과제를 안겼다고 할 수 있다. 정권이 재벌 총수를 사망에 이르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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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추 재벌평론가·전 서울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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