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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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지난 4월 말 ‘FX시티’란 FX렌트 사이트에서 마진거래를 하다 2주 만에 1230만원을 잃었다는 A씨는 FX시티 대표 이모(30)씨에게 “합법이라고 허위광고를 했으니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씨는 돈을 돌려주겠다고 답했지만, 하루 만에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이 남성의 연락을 피했다. A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던 FX시티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했다. “합법이라고 허위광고한 것에 대해 해명하고,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는지(외환이 실거래 되는지) 증명하라”는 요구였다. A씨는 FX시티 측에 투자한 내역이 실제 거래로 이뤄졌는지 계좌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사례 2

FX렌트 업체 회원 B씨는 입금한 돈을 아예 도둑맞은 신세가 됐다. 업체 측은 처음에 B씨의 연락처로 홍보 문자를 보내 “속는 셈 치고 소액만 넣어보라. 50% 수익을 내주겠다”고 했다. 10여만원 정도 넣은 돈이 실제로 50% 불어나자, B씨는 더 큰 수익을 기대하고 3000만원을 보냈다. 하지만 수익이 전혀 나지 않아 B씨가 항의하자, 업체 측에서는 “한 번만 더 믿고 돈을 넣어보라. 이번에도 수익을 못 내면 잃은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다. B씨는 불안해하면서도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따랐고, 수차례에 걸쳐 총 1억3000만원의 돈을 입금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B씨가 마지막 금액을 입금한 직후 잠적해버렸다. 그때서야 사기임을 알아챈 B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사이트는 이미 폐쇄된 후였고 업체 관계자들의 이름도 가짜였다. 결국 B씨는 신고나 고소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FX렌트 업체를 통해 FX마진거래(Foreign Exchange Margin Trading)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FX렌트 관련 업체들은 기존의 FX마진거래에서 변형된 방식으로 거래를 중개하는 사이트들이다. FX마진거래란 실시간으로 변하는 외환 환율에 따라 매수와 매도를 반복해 그 차익을 얻는 거래를 말한다. 일반적인 FX마진거래는 주식과 마찬가지로 국내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 거래할 수 있는데 이때 약 1만달러(1200만원)의 증거금을 예치해야 한다. 하지만 FX렌트는 이러한 증권사 계좌나 증거금을 업체 측에서 개인에게 ‘대주는(Rent)’ 방식이다. 때문에 사용자들은 사이트에 회원가입만 하면 바로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FX렌트 업체들은 유관기관의 방치 속에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포털에 검색하면 FX시티, FX리치, FX타워, FX365 등 수백 개의 사이트가 뜬다. 거래는 환율 차이가 나타나는 실시간 그래프(차트)를 보면서 ‘매도’에 돈을 걸 것인지, ‘매수’에 돈을 걸 것인지 선택해 금액을 거는 방식이다. 한 번에 베팅할 수 있는 금액은 5000원부터 100만원까지다. 사행성이 다분하고 실제 피해 사례들이 다수 접수되고 있음에도 유관기관들은 선제대응은커녕 ‘법적 근거가 명확지 않다’며 방치만 해온 상황이다. 최근 법원에서 이 거래방식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오고 난 후에야 후속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원 “금융파생상품 아닌 도박” 결론

지난 4월 24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도박공간개설죄로 기소된 조모(61) FX렌트 회장에게 징역 5년과 추징금 336억원을 선고했다. 조 회장은 ‘스마트관리’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고 FX렌트 사업을 확장한 사실상 이 업계의 ‘대부’ 격인 인물이다. 그는 2017년 3월 FX렌트 사업으로 특허까지 획득했다. 법원은 조 회장의 판결문에서 ‘FX렌트 거래에 참가하는 회원은 렌트 사용료 또는 보증금 명목으로 회사 측에 돈을 지급해야 한다. 도박에 재물을 거는 입장료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FX렌트 거래 참가자들이 노력해 영국과 호주의 경제 상황, 각종 경제지표와 외환거래 사정 등을 파악하고 있다면 FX마진거래의 방향을 충분히 맞힐 수 있다. 그러므로 FX렌트 결과가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영국과 호주의 경제 상황을 알더라도 FX마진거래처럼 순간적인 변화를 정확히 맞히는 건 불가능하다”라며 FX렌트가 금융파생상품이 아닌 도박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유죄를 선고받은 조 회장은 과거 건실한 사업가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사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갔다. 조 회장은 ‘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전국중앙회장’을 맡고 자신의 회사 이름 ‘FX렌트’가 붙은 KLPGA 대회까지 개최하는 등 건실한 사업가의 이미지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 2018년 9월에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벤처기업 인증까지 받았다. 그는 이러한 경력을 앞세워 대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사업도 확장했다. 2018년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조 회장은 국내에 FX마진거래가 허용된 초기부터 관심을 갖고 직접 거래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8년부터 3년간 FX마진거래와 관련한 교육 및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아카데미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1년 FX렌트라는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환율이나 외환거래 등에 대해 얼마나 전문적인 지식과 경력을 가졌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인터뷰에서 조 회장은 “우연의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 정당한 수익으로서 사행성 도박과는 무관하다”며 FX렌트의 합법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필수라는 굳은 신조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창업자 개인의 사회적 평판을 높여 사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은 다단계 사업으로 물의를 일으킨 업자들이 전형적으로 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조 회장은 지난해 9월 KBS 보도본부장을 지냈던 김모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유력 언론사 보도본부장 출신을 대표로 선임해 회사의 신뢰도를 쌓으려 한 것이다. 김모씨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FX렌트 대표직은 선임되고 두 달 뒤에 바로 관뒀다”면서 “그 이후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FX렌트와 관련된 내용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지난 4월 22일 1230만원의 돈을 잃은 A씨가 서울 연희동 FX시티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곽승한
지난 4월 22일 1230만원의 돈을 잃은 A씨가 서울 연희동 FX시티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곽승한

법원 판결 후 잠적하는 업체들

조 회장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 FX렌트 관련 업체들 중 여러 곳이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사무실을 수시로 옮기고 있는 정황도 확인됐다. 온라인상에서 FX렌트 관련 업체로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인 ‘FX시티’는 서울 연희동에 본사가 있었다. 지난 5월 14일 기자가 찾아간 연희동 사무실에는 책상과 컴퓨터만 남은 채로 텅 비어 있었다. 다만 FX시티 홈페이지에서는 여전히 접속이 가능하고 거래도 이뤄지고 있었다. 기자가 사용자로 가장해 문의하자 FX시티 관계자는 “최근 불법 판결과 FX시티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지금도 문제없이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FX시티의 대표 이씨는 최근 FX렌트 사업이 불법으로 판결이 나자 돈을 잃은 이용자들로부터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FX렌트 관련 업체들은 본사-지사-지점 형태로 이뤄진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 FX시티가 ‘본사’라면 경기지사, 부산지사, 광주지사 등 지역별로 지사가 나뉜다. 그리고 이 지사는 ‘지점’을 구축한다. 이 지점들은 ‘청담점’ ‘BMW점’ ‘에르메스점’ 등 이름도 다양하다. ‘지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시설이 마련된 것이 아닌 온라인상에 가상으로 차려진 것이다. 이러한 지점들은 홍보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은 뒤 사이트에 가입할 때 지점마다 정해진 ‘코드값’을 입력하게 한다.

지점을 차리려면 본사를 통해 ‘코드값’을 사야 하는데, 여기에 2000만~30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더 비싼 코드값을 살수록 수익률에 따른 배당률이 높아진다. 회원이 수익을 실현했을 때 업체는 14% 정도의 수수료를 가져가는데, 이를 본사와 지점이 6 대 4 또는 7 대 3의 비율로 나눈다고 알려졌다.

FX렌트 업체의 지점을 차리려 했던 C씨는 “3000만원을 주고 코드를 사서 지점을 운영하려 했는데 지사가 ‘먹튀’해 버렸다”고 했다. C씨는 친한 친구가 “한 달에 1억원씩 벌 수 있다”고 권유해 FX렌트 업체의 지점을 차리려 했다고 한다. C씨는 “그 친구는 지역에서 유명한 조폭이었고, 그와 함께 이 사업을 하는 주변 사람들도 모두 조폭이었다”고 했다. C씨는 “과거 불법 토토 사이트 총판을 하던 이들이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불법이고, 서버를 해외에 두고 운영해야 하니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넘어온 게 FX렌트 쪽이다”라고 했다. C씨는 또 “그 친구들은 FX렌트의 조 회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FX렌트 거래 방법으로 특허를 받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조모 회장. 그는 건실한 사업가 이미지를 쌓으려 했지만 지난 4월 인천지법으로부터 도박공간개설죄로 징역 5년에 추징금 336억원을 선고받았다. FX렌트 관련 업체 중 하나인 FX리치는 지난 5월 6일부로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photo 화면 캡처
(왼쪽부터) FX렌트 거래 방법으로 특허를 받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조모 회장. 그는 건실한 사업가 이미지를 쌓으려 했지만 지난 4월 인천지법으로부터 도박공간개설죄로 징역 5년에 추징금 336억원을 선고받았다. FX렌트 관련 업체 중 하나인 FX리치는 지난 5월 6일부로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photo 화면 캡처

전형적인 불법 온라인 도박 운영 방식

이와 같은 방식은 전형적인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의 영업 행태와 유사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지난해 연말 발간한 ‘제4차 불법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는 처음 시작할 때 여러 명이 함께 자금을 모아 공동으로 시작한다. 이후 회원수가 증가해 사이트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만큼 규모가 커지면 본인이 데려온 조직원과 회원에게 개별사이트를 ‘분양’한다. 기존의 대형 사이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분양된 사이트에 이용자가 몰리면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분양된 사이트들은 뿌리는 같지만 뿔뿔이 흩어진 ‘점조직’ 형태를 구축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업 방식에 대해 단속을 피하고 정보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 또 점조직 형태로 운영해야 돈을 여러 곳에 분산해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FX시티의 경우 ‘FX시티플래티넘플러스에스’ ‘FX시티플래티넘플러스알파’ ‘FX시티플래티넘플러스베가’ 등 이름만 살짝 바꾼 업체 7곳을 차렸다. 이 업체들의 등기부등본상에는 공통적으로 대표 이씨의 이름이 등장한다. 언론 보도와 법원 판결로 인해 FX렌트 거래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이 커지자, 일부 업체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FX렌트 관련 업체들은 회원들에게 계좌이체를 통해 돈을 입금하게 하는데, 이 계좌 역시 수시로 바뀌고 카카오페이나 토스 같은 모바일 간편송금서비스를 통해서는 입금이 되지 않는다. 입금을 하려 하면 ‘이상거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거래가 차단된 상태’라는 메시지가 뜬다. 업체 측에서도 “은행 계좌를 통해 직접 입금하라”고 알린다.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 역시 주간 단위로 정산 후 수시로 대포통장을 개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단속이 강화되자 이들은 전문 브로커를 통해 돈을 주고 새로운 대포통장을 산다고 한다. 최근에는 FX렌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금과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사이트들도 늘고 있다. 환율 차이가 아닌 금과 비트코인의 시세 변동에 따라 매수 또는 매도에 돈을 거는 방식이다. 이들은 “FX렌트와 거래 방식은 비슷하지만 우리는 철저히 실물거래를 하기 때문에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FX렌트 업체들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2015년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FX렌트 마진거래에 대해 “단시간 내 환율 등락을 맞히는 게임 내지 도박에 불과할 뿐, 금융파생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FX렌트는 원심에서 불법 도박 관련이 아닌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유죄를 받았는데, 대법원은 금융상품이 아니므로 자본시장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FX렌트 업체들은 이를 두고 “대법원으로부터 합법을 인정받았다”고 홍보한 것이다.

검찰 측에도 최근 FX렌트와 관련한 고발이 다수 접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FX렌트 관련 사이트를 개설한 이들은 도박공간개설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 사람들에게 “합법적인 투자”라고 홍보해 끌어들인 경우 사기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FX렌트 업체에 돈을 넣었다 ‘먹튀’를 당한 경우, 도박 자금으로 판단되어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투자는 개인의 몫이지만, 투자를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관련 부처의 몫이다. 그동안 FX렌트 관련 사례들이 사감위나 금융감독원 등에 꾸준히 접수됐지만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방치해왔다. 사감위는 지난 4월 24일 FX렌트가 불법 도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야 홈페이지에 “FX렌트가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사감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속차단 요청 및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감위 관계자는 “방심위에는 이미 여러 건 심의를 의뢰했고 구체적인 피해자가 있는 경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FX렌트 거래가 불법 도박으로 판결이 난 이상 사이트 이용자들도 불법 도박을 이용한 셈”이라면서 “돈이 들어간 상태에서 사이트가 차단될 경우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최소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금액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FX렌트 관련 업체들의 공통점은 사내 임원들이 대부분 1990년대생이라는 것이다. FX시티 본사 법인등기부등본에 등재된 사내이사와 감사는 각각 1990년생, 1995년생이었다. 또 다른 유명 업체의 사내이사 역시 1997년생, 1994년생이었다. 20대인 이들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법원 판결 이후에도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에는 FX렌트를 광고하는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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