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전북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시장. 부안군 인구는 5만6000여명이다.
지난 2월 6일 전북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시장. 부안군 인구는 5만6000여명이다.

지난 2월 6일 낮 12시 전북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햇볕이 내려쬐는 보도에 쌓인 눈이 얼어붙어 있었다. 이날 아침 부안군 기온은 영하 10도. 터미널 교차로에 있는 버스정류장에는 노란색과 흰색으로 도색된 버스 7~8대가 줄줄이 정차한 채 있었다. 버스 옆면에는 이런 안내문이 보였다.

‘18. 1. 1부터 농어촌버스 요금은 거리에 관계없이 단일요금을 받습니다. 일반인 1000원, 초·중·고생 100원.’

“어디 갔다 와요?” “치과 갔다 와요.”

버스에 탄 승객들이 웃으며 서로 인사를 했다. 60~70대로 보이는 여성 승객 두 명이 손에 파란색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씩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추위를 막으려 모자를 덮어쓰고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버스에 탈 때 요금을 내는 서울과는 달리 내릴 때 돈을 내고 앞문으로 내린다. 카드를 내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대부분은 현금을 낸다. 버스기사가 버스에 올라 시동을 걸자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왔다. 버스 안의 승객은 기자를 포함해 10명. 곧 출발한 버스가 백산면의 평교 정류장에 정차하자 파란색 패딩점퍼를 입은 초등학생이 내리면서 버스 현금통에 100원짜리 한 개를 냈다. 기자도 내리면서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 화면에 붉은 글씨로 ‘950’이라는 숫자가 떴다. 버스기사 한광수씨는 “(변산면) 모항이나 격포처럼 멀리 떨어진 곳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며 “시장 경기도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많이 오니 활기가 있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군의 버스요금 파격 인하 시책은 지방자치단체 소멸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다. 부안군은 지난 1월 1일부터 군내 버스요금을 거리와 상관없이 현금 기준 성인 1000원, 학생 100원으로 내렸다. 카드를 사용할 경우 성인은 950원, 학생은 50원이다.

인구소멸 위기 지자체의 실험

언뜻 보기에는 파격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서 방향으로 길고 관청·병원 등 주요 시설이 북동쪽 끝에 밀집한 부안군의 지리적 특성상 이 할인액은 상당한 수준이다. 가령 예전엔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쪽 끝에 있는 변산면 모항에 가려면 왕복 9800원의 요금이 필요했다. 지금은 카드를 이용하면 1900원에 왕복할 수 있다.

부안군이 이처럼 버스요금을 파격적으로 내린 것은 지속적인 인구감소 때문이다. 부안군 인구는 2007년 6만1879명에서 2017년 5만6086명으로 줄었다. 10년 새 주민 열 명 중 한 명이 군을 떠난 셈이다.

광역지자체인 전라북도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전북 인구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185만4607명으로, 가장 많았던 1966년 252만3708명에 비해 30% 가까이 감소했다. 특히 농어촌지역은 인구가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무주·진안·장수군은 이미 인구 3만명 선이 무너졌다.

군내 버스요금 인하에 대한 군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새해 들어 군내 버스요금이 인하되면서 지역 상권도 활기를 띤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말이다. 실제로 이날 한파를 감안하면 시장에 손님들이 꽤 있는 편이었다. 변산면의 격포항, 모항 등 부안군 서쪽에 사는 주민들이 동쪽의 중심가에 한 번 나올 것을 두세 번 나온다는 설명이다.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뒤에 있는 시장에서 만난 건어물상 이정순씨의 표정은 밝았다.

“작년에 비하면 손님이 월등히 더 나와요. 특히 평일에요. 옛날엔 버스가 텅텅 비어서 왔는데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서서 와야 할 정도예요.”

부안군의 버스요금 인하 시책을 군민 모두가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부안군청 근처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택열씨는 “예전엔 격포나 모항에 가면 ‘나라시’ 손님도 태우곤 했는데 타격이 심하다”고 말했다. 전북도가 운영하는 직행버스 업체도 시내버스 운행으로 인해 승객이 감소해 배차 간격을 늘렸다.

부안군의 농어촌버스 단일요금 정책이 환영받으면서 인근 고창군과 순창군도 2월부터 단일요금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요금은 성인 기준 1000원, 학생 500원이다. 인구 3만명이 안 되는 무주·진안·장수·임실군은 이미 2015~2016년부터 같은 액수의 단일요금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인구감소가 마찬가지로 심각한 전라남도 역시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전남도는 광역지자체로는 처음 2014년 ‘100원 택시’를 도입했다. 3년간 216만명이 이용했다.

전북 지자체들의 파격적인 교통정책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5년 남원과 순창에서 시작된 행복콜택시, 행복콜버스 제도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열 곳 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북 진안군의 경우 100원만 내면 콜택시가 주민들을 면소재지까지 태워다준다. 버스가 들어가기 어려운 오지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 콜버스를 부르면 미니버스가 간다. 요금은 1인당 1000원 정도다.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내 모습. 오래된 난로 하나가 난방시설의 전부다.
부안군 시외버스터미널 내 모습. 오래된 난로 하나가 난방시설의 전부다.

재정자립도 문제

하지만 버스요금을 인하하고 콜택시·콜버스 등 교통요금을 절감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우선 기초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재원 마련에 문제가 따른다. 예컨대 부안군이 버스요금을 인하하는 과정에서 군내 두 개의 버스회사에 지원해주는 금액은 1년에 10억7600만원이다. 보통 성인은 1000원, 학생은 500원 하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학생 요금이 더 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최병관 부안군 건설교통과 교통행정팀장은 기자와 만나 “금액 산출을 해보니 100원으로 낮출 경우 500원일 때보다 1년에 8000만원 정도 보전금액이 늘었다”며 “학생의 경우 수입이 없기 때문에 교통복지 차원에서 파격적으로 인하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어 금액을 더 낮췄다”고 말했다.

시골 버스의 경우 적자 노선이 많다. 운행을 할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에 민간 업체라면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인 버스의 경우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수요자가 없어도 공급을 계속해줘야 하는 측면이 강하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업체가 파산하면 버스가 반드시 필요한 주민이 이동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운수사업법에도 적자노선에 재정지원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소멸 위기에 처한 기초지자체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1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평균인 47.2%에 비해 한참 낮다. 인구가 감소할수록 세수(稅收)도 감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중앙정부 보조금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버스요금 인하 등 교통복지정책이 농어촌지역의 인구감소를 막고 나아가 순유입을 늘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민들이 농어촌을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감소로 인한 지자체 소멸 위기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30년 안에 소멸될 위험에 놓인 지자체는 전국 226곳 중 79곳이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전북 지역에서만 전주·익산·군산·완주를 제외한 10개 시·군이 3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지역의 인구감소 이유는 다양하다. 이 중 핵심 요인으로 지목받는 것이 청년층 인구의 감소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역 내 20~39세 가임여성 인구의 부족이다. 이와 함께 꼽히는 문제점은 농어촌지역의 고령화 문제다. 실제로 부안군의 경우 65세 이상 연령의 인구 비율이 2014년 1월 26.7%에서 지난 1월 29.8%로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65세 이상일 경우 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현재 지자체 소멸 현상을 연구할 때 주로 이용되는 것이 2016년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이 펴낸 ‘지역 고용동향 심층분석’ 보고서의 ‘소멸위험지수’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방 소멸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처음으로 쓴 사람이다. 일본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가 2014년 쓴 책인 ‘지방 소멸’의 방법론을 차용해 한국의 지방 소멸 문제를 분석했다. 마스다는 한국의 행정안전부 장관에 해당하는 총무대신을 지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가임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연령 인구수로 나눈 비율이다. 두 연령군의 비율이 1 대 1이어야 인구수가 유지된다. 지수가 낮아질수록 인구가 줄어들어 장기적으로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된다.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연령 인구수의 절반 이하면 ‘소멸 위기’ 단계다. 대규모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등 지역에 인구가 유입될 만한 특별한 반전이 없으면 20~30년 내 자연 소멸할 위험이 아주 크다는 뜻이다.

‘소멸위험지수’ 지표를 이용해 전국 지자체를 분류해 보면 2014년 기준 소멸위험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자체는 경북 의성군이다. 소멸위험지수가 0.19로, 65세 이상 인구 5명당 20~39세 여성이 1명밖에 없다. 전남 고흥군, 경북 군위군 역시 각각 소멸위험지수가 0.19, 0.20으로 ‘소멸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부안은 0.31로 사정이 조금 낫지만 마찬가지로 ‘소멸 위험’ 단계다.

이 지수를 이용해 강원연구원이 지난해 11월 펴낸 ‘강원도 인구구조 실태와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도 면 지역의 86%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2040년쯤에는 강원도 소재 면의 10곳 중 9곳 가까운 곳의 인구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강원도의 경우 도내 인구의 불균등 분포도 심각하다. 전체 인구의 약 55%가 춘천·원주·강릉 3개 도시에 거주한다. 농어촌의 경우 보건·의료기관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시설 등 지역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강원도는 도내 군 지역에 산부인과가 하나도 없다. 보육시설과 초등학교가 하나도 없는 읍·면·동도 여럿이다.

버스 승객이 하차하며 요금 1000원을 내고 있다.
버스 승객이 하차하며 요금 1000원을 내고 있다.

젊은 여성에게 일자리 제공해야

충남의 경우 지난해 11월 기준 ‘인구 소멸 위험단계’에 이른 자치단체가 절반 이상에 달한다. 특히 2015년에 비해 지난해 유소년 인구가 3800여명 감소한 것으로 조사돼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 문제가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충남연구원이 발표한 ‘2015-2016년 충남지역 각 시군 인구 변화 현황’에 따르면, 2016년 충청남도 인구는 213만2566명으로, 2015년 210만7802명에 비해 2만4764명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가장 인구가 많이 줄어든 충남 예산의 경우 전체 인구의 2.9%가 줄어들었다. 서천군과 부여군 역시 1년 동안 각각 인구 1.6%, 1.3%가 감소했다.

전국적인 현상인 지방 소멸 현상을 막거나 혹은 늦추기라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표적 대책으로 주목받는 것이 귀농·귀촌이다. 부안군의 경우에도 꾸준히 귀농·귀촌 장려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어촌과 농촌에서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지자체 단위의 큰 성공 사례는 들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일자리 감소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젊은층, 그중에서도 20~39세 젊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 소멸’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젊은층이 아니라 굳이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잡는 이유에 대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수많은 청년정책을 내세우지만 대상과 효과가 모두 불확실하다”며 “반면 젊은 여성의 유출을 방지하고 유입시키는 데 효과적인 정책은 보다 명료하다”고 했다. 대상을 좁힐 경우 범위만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 방향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지자체장이 단순히 고용률 70%를 달성한다고 선언하고 공공근로를 늘리기보다 젊은 여성 인구를 매년 1% 늘리기 위해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새롭게 대두되는 주장도 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해 저서 ‘지방도시 살생부’에서 ‘압축도시’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신도심 개발 등으로 확장된 지방도시의 인구와 기능을 최대한 원도심으로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도심 기능을 압축하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이 절감된다. 인구가 모여 살면 상권이 활성화될 가능성도 지금보다는 올라간다. 어차피 쇠퇴하는 모든 곳을 살릴 수는 없기 때문에 원도심만이라도 인구 유출을 줄여보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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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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