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서울 영등포의 쪽방촌을 찾아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쪽방촌 주민들이 폭염으로 고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매년 혹서기, 혹한기면 으레 나오는 기사였지만 운 좋게 포털 네이버 모바일 메인에 걸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매년 나오는 기사, 기자가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댓글이었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댓글을 쓴 네티즌의 말처럼 올해는 쪽방촌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기사를 쓰려고 했습니다. 가을·겨울에 쪽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전기장판입니다. 난방시설이 없는 쪽방촌 주민들은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납니다. 옷을 대여섯 겹씩 껴입어도 쪽방의 한기를 이겨내기는 어렵습니다. 몰아치는 한파에 전기장판 하나만 붙들고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위태롭습니다. 여기에 대규모 정전이라도 겹치면 저소득층은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정책의 영향은 산업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처럼 정부가 예측한 전력수요를 넘어서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 저소득층이 한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전기에 난방을 의존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탈원전 쪽방촌 기사를 쓴 뒤에도 정부는 전력수요감축 요청을 두 차례 더 발령했습니다. 올겨울에만 열 번째 수요감축 요청입니다. 정부는 “전력 예비율은 안정적”이라고 해명하지만, 산업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입니다.

산업부가 올해 유독 수요감축요청을 자주 한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졌습니다. 반면 저소득층이 전기에 난방을 의존한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분배를 통한 성장’을 외치는 정부라면, 에너지 전환 정책이 소외계층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정부가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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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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