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잠긴 미니애폴리스의 한 공원.
폭설에 잠긴 미니애폴리스의 한 공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영화 ‘그랜토리노(Gran Torino)’에서 “중부 사람들은 그들의 혹독한 추위가 나쁜 사람들을 쫓아내 준다고 믿는다”며 웃는다. 미네소타 출신 음악가 프린스(Prince)도 “미국 본토에서 가장 추운 미네소타는 너무 추워서 나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하기야 겨울에는 섭씨 영하 30도 이하 날씨가 몇 주 동안 계속되고 눈도 허리까지 찰 정도로 오곤 하니까 범죄자들이 굳이 이런 추위에 고생하며 나쁜 짓을 도모할 것 같지는 않다. 스칸디나비아와 독일계 주민이 대부분인 이곳 사람들은 강인하고 건실하면서도 선량하다. 사람들은 200년 전부터 미네소타를 ‘북부의 별’이라고 불러왔다. 처음 이곳에 이사와서는 숨을 못 쉴 정도로 추운 이유가 겨울 밤하늘 별빛이 유난히 맑아서 그럴 거라며 웃기도 했지만, 20년이 지나 정든 지금은 착한 사람이 많은 곳이어서 그렇다는 마음이다.

20년 전 초여름 교수직 인터뷰를 위해 미네소타주에 처음 오게 되었다. 미니애폴리스공항에 내려 보니 사람들이 북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후손답게 키가 한없이 크고 피부가 다른 백인들보다도 희며 금발이 많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강한 빛에 노출되면 두통이 생기는 체질이라 공항 안에서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 했는데, 밖으로 나와 보니 위도가 높은 지역이고 건조한 탓에 초여름 햇빛이 한없이 맑고 밝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일 년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산다. 봄·여름·가을에는 햇빛이 너무 밝아서 그렇고 겨울에는 햇빛이 눈에 반사되어 또 그렇다. 그렇지만 아무 불만 없다. 미세먼지 없이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하염없이 넓은 하늘, 그리고 눈부시게 맑은 햇빛을 불평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겠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가진 장점을 많이 빼닮은 미네소타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주로 평가되어 왔다. 동부와 서부 해안에 있는 몇몇 주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평균 개인소득을 자랑한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상위 2% 사람들이 소득세를 더 많이 내서 다른 주들이 재정 적자에 허덕일 때 미네소타는 흑자를 즐겼다. 주립대학 시스템이 가장 잘 운영되는 곳 가운데 하나이고 치안이 무척 잘 되어 있다.

북부의 별, 삶이 빛나는 곳

소득세가 높은 대신 미국 내 어느 주보다도 저소득층과 노약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의료개혁이 있기 전에도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의료보험이 있었고,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을 비롯한 병원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첨단 의료기기 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유지·보존하려는 노력을 끝없이 경주한다. 미국 본토 정가운데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북유럽 나라들과 닮은 점이 많다. 이렇게 살다 보니 미국 내에서 평균수명도 가장 긴 주가 되었다. ‘북부의 별’이라는 별명답게 많은 사람들이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을 만끽하며 사는 곳이다.

한반도보다 더 넓은 미네소타지만 인구는 600만명이 안 된다. 주도(state capital)인 세인트폴과 경제 중심지인 미니애폴리스 지역이 서로 인접해 있어서 함께 ‘트윈 시티스(Twin Cities)’라고 불리는데, 이 두 도시에 300만명 가까이 산다.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는 현대식 마천루 빌딩이 즐비하다.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지 않고도 다른 건물로 이동하라고 건물과 건물을 잇는 스카이워크(skywalk 또는 skyway)가 총 연장 18㎞에 달할 정도로 많다. 미네소타가 춥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추위를 느낄 기회는 거의 없다. 건물과 건물이 스카이워크 또는 지하로 연결되어 있고 가정집의 차고가 대부분 집 안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겨울에 추위를 직접 접할 기회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한국인 회사가 설계·시공하고 얼마 전 미식축구 최대 행사인 수퍼볼을 유치한 유에스뱅크스타디움도 거대한 스타디움 건물 전체가 모두 유리로 덮여 있어 관객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한다.

미네소타를 이런저런 이유로 찾는 이들은 매년 7000만명 정도나 된다. 공항에서 전철로 연결되어 있는 미국 최대의 쇼핑몰(Mall of America)은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4층 건물로 되어 있다. 직사각형의 귀퉁이마다 4개의 유명 백화점이 있고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점포들이 각층을 이루고 있다. 지하에는 수족관, 건물 중간에는 온갖 기구를 갖춘 실내 놀이동산(amusement park), 3층과 4층에는 식당가와 극장이 있다. 미네소타에는 의류와 신발에 소비세가 없기 때문에 다른 주에 사는 사람들이 호텔에 며칠씩 묵으며 한껏 쇼핑을 하고 돌아가는 여행상품도 있다.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도 물론 다양한 쇼핑센터가 여러 곳 있다. 원하는 모든 수준과 종류의 쇼핑이 가능하다.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미네소타 사람들의 습성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도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붐비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은 문화적으로 무척 세련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니애폴리스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과 워커현대미술관(Walker Art Center)은 한나절 미술적 감흥에 젖어 보내기 좋은 곳이다. 또 시간만 잘 맞춘다면 미네소타 교향악단과 ‘실내 교향악단으로는 미국 내 최고’라는 세인트폴 실내교향악단의 멋진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또 미네소타는 개인당 연극 객석 수가 뉴욕시 다음으로 많은 주여서 인구 580만명의 주에서 매년 230만장의 연극표가 판매된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미니애폴리스의 ‘거스리극단(Guthrie Theater)’은 몇 해 전 미시시피강가의 새 건물로 이사했는데 한번 들러서 공연도 보고 멋진 건물도 감상할 만하다.

현대 팝문화도 발달해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프린스(Prince)가 미니애폴리스 출신이다. 프린스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그가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하던 뮤직스튜디오 ‘프레슬리 파크(Praisley Park)’가 2016년 말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미네소타를 둘러싸고 있는 위스콘신, 아이오와,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 그리고 캐나다의 매니토바 사람들이 세련된 문화적 경험을 위해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을 자주 찾는 이유다.

3M이나 베스트바이(BestBuy) 등 첨단산업 관련 분야 본사들이 있는 미네소타지만 이곳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사랑한다. 미네소타 자동차 번호판에는 ‘10000 Lakes’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다. 1만개 이상의 호수가 있는 주라는 뜻으로 어딜 가나 맑은 호수가 있다. 많은 이들이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따로 가지고 그곳에서 주말을 지내곤 한다. 가장 유명한 호수는 노벨상 수상자인 가수 밥 딜런의 고향 둘루스(Duluth)가 접해 있는 5대호 가운데 하나인 슈피리어호다. 미시시피강이 시작되는 아이타스카호(Lake Itasca)도 잘 알려져 있다. ‘미네소타’의 ‘미네’라는 말이 원래 원주민 말로 ‘물’이라는 뜻이라는데, 어딜 가나 물이 많아 수상스키, 보트, 카누 등 수상스포츠가 많이 발달되어 있다.

어디나 있는 호수와 강가에서 미네소타 인구의 36% 이상이 낚시를 즐긴다. 겨울에는 꽁꽁 언 호수 위로 집채만 한 여행용 차량을 운전해 들어와 얼음에 구멍을 뚫고 밤새 얼음낚시를 해야 미네소타 주민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다.

미네소타 나이스

미국에는 ‘중부 사람들의 환대(Mid western Hospitality)’라는 표현이 있다. 중부 지역 사람들이 새로 만난 사람들도 친절히 반기고 맞아주며 잘 대접해주는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부에서도 가장 북부에 위치한 미네소타에는 이에 더하여 ‘미네소타 나이스(Minnesota Nice)’라는 말이 있다. 미네소타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공손하면서도 친근하다. 말수가 적고 과장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시끄럽게 나서지 않고 감정을 잘 다스린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태도로 대한다. 한마디로 함께 살기 좋은 사람들이다. 가끔은 이 사람들의 조상이 1000년 전에는 그 난폭했던 바이킹이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최고의 육군 정예부대를 자랑하던 독일계 후손이 많은데도 그렇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루터교 계통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한국에서 말로만 듣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실한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한 예로, 우리 쌍둥이들 아기 시절 베이비시터를 했던 사라(Sarah)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노르웨이 및 독일계 후손으로 학업 성적이 대단히 우수했던 날씬한 금발의 여대생이었던 사라는 만 20세일 때부터 생후 8개월이던 우리 아이들을 3년 동안 돌보아주었다. 사라는 언제나 약속시간보다 15분 먼저 도착해서 아이들 돌볼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조교수였던 내가 월급을 잘 줄 만한 형편도 못 되었는데, 우리가 지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자기가 알아서 집안 청소도 해주고 아이들 빨래도 맡아 해주었다. 사라가 대학을 졸업할 때 우리는 2800㎞ 떨어진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가 있었는데,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서도 우리가 부탁하자 직장 취직을 미루고 우리 아이들을 계속 돌봐주겠다고 했다. 사라는 우리 가족이 있던 노스캐롤라이나주로 내려와 아이들을 1년간 더 맡아 주었다. 사라의 약혼자도 함께 노스캐롤라이나로 내려와 직장에 다니며 틈날 때마다 우리 아이들과 놀아주곤 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고 정든 사람들을 이렇게 대한다.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에 미네소타 나이스까지 갖춘 사람들이다.

한국 고아를 가장 많이 입양한 곳

미네소타 사람들은 많이 베풀면서 산다. 미국 내에서 한국 고아를 가장 많이 입양한 곳이 미네소타다. 현재 약 2만명 정도 된다는데, 주변 친척이나 친구들 가운데 한국 고아를 입양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현재 사는 집의 전 주인도 한국 고아를 입양한 유대인이었다. 베트남 패망 후 미군에 협력했던 멍(Hmung) 난민도 처음에 1만명 정도 받아주었다. 미네소타 사람들이 이들을 워낙 잘 대해주어서 그런지 다른 주에서 살던 멍들도 미네소타로 이주해와 현재 5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회교도라고 꺼리는 소말리아 난민도 미국 내 최대인 5만7000명을 받아주었다. 친절하고 관대하면서도 내세우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다.

미네소타에 오래 사는 한인들은 동부나 서부 해안가가 아니라 미네소타가 바로 미국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20년을 산 나 또한 한국 사람들이 와서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 철학과 교수. 브라운대 철학 박사. 미네소타주에서 20년째 거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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