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일상과 예술의 기막힌 공존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의외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대중목욕탕과 슈퍼마켓, 복권방을 지나 만나게 되는 세련된 회색톤의 건물.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발걸음이 느려지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1970년대 풍경 속 저 혼자 감각적인 외관으로 존재감을 뿜어대는 대안공간 챕터투(chapter Ⅱ)다. ‘이런 곳에 이런 곳이’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지만 2016년 11월에 문을 연 이곳은 벌써 미술계의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명소가 됐다.

챕터투는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카페와 무료 전시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거주하는 레지던스. 무료전시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설치미술가 양혜규, 화가 노충현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이곳을 거쳤다. 길을 향한 쇼윈도 전시실에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고, 고개 들어 건물 위를 보면 푸릇한 옥상 조경과 영국 작가 조르제 오즈볼트의 ‘백설공주와 난쟁이’ 조형물이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한다. 오가는 이들을 위한 열린 전시다.

챕터투는 의료기기전문기업 ㈜케이시피메드(KCPMED) 최춘섭(77) 회장의 꿈이 하나둘 실현된 공간이다. 현대미술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최 회장은 기업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육성하고 지역사회에 문화의 향기를 심고 있다.

지난 3월 9일, 최 회장의 꿈이 하나 더 이루어졌다. 챕터투 맞은편에 일상예술서점 ‘스프링 플레어(spring flare)’를 연 것. 오픈 당일 만난 최 회장은 “그저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했다.

“연세대나 이화여대 앞에 서점이 없어지는 걸 보고 가슴 아팠다. 우연히 직원들과 대화하다가 책방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책방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너무 즐거웠다. 상상 못 할 정도로. 젊은 화가들이 찾아와 책을 고르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막 가슴이 뛴다.”

스프링 플레어에서 다루는 책은 크게 세 부류다. 예술, 일상의 행복, 그리고 종교. 최 회장이 북큐레이터에게 요청한 사항이라고 한다. 베스트셀러 한 권 없고 종수도 몇 권 되지 않지만 최 회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상예술서점 ‘스프링 플레어’, 전시공간 챕터투, 옥상 조형물(위부터). ⓒphoto 챕터투
일상예술서점 ‘스프링 플레어’, 전시공간 챕터투, 옥상 조형물(위부터). ⓒphoto 챕터투

젊은 작가 육성 프로젝트

최춘섭 회장은 미술에 대한 열정에 뒤늦게 눈떴다. 그 시절 개척자들이 그렇듯, 맨손으로 시작해 20여개의 지점을 거느린 탄탄한 의료기기 회사로 일구느라 밤낮없이 일했지만 늘 예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클래식음악과 현대미술에 점점 빠져들었고, 60대 후반에 들어서는 대학교 문을 두드렸다. 홍익대 현대미술 최고위 과정에 등록해 수험생처럼 공부했다. 그제서야 “그림을 보기만 해도 그저 좋았다”던 최 회장은 왜 좋은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됐다.

“챕터투는 예술을 통해 사회와 이웃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유망작가를 발굴해 무료로 전시공간을 내주고, 마음껏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그 일환이다.”

챕터투는 명칭부터 사회 기여의 의미를 담았다. 학교를 졸업한 미술학도들이 이곳에서 예술활동의 제2장을 열기를 바라는 열망에서 지은 이름이다. 레지던스에서는 매년 3명에게 1년간 무료로 작업 공간을 제공한다. 주로 20~30대의 신진작가 위주다. 1기에는 윤석원·오유경·배윤환 작가가 입주했고, 지난 3월부터는 2기 작가들이 새롭게 입주해 있다. 입주 작가들에게는 챕터투 전시 공간에 개인전을 열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카페 운영에는 매년 수억원이 든다. “셋 다 모두 돈이 되는 일은 아니죠?”라는 질문에 그는 “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카페 총 매출은 직원 인건비도 안 된다. 하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원들의 즐거움과 자부심은 왜 값으로 환산하지 않나. 보이지 않지만 큰 가치가 있다. 직원들이 신나서 일을 하는 게 눈에 보인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이익은 잊고 사는 경향이 있다. 가족 간 화목, 직원의 행복 등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인터뷰하면서 최 회장이 가장 많이 한 표현이 있다. “내가 즐거워서 했다”는 말. 젊은 작가 지원이나 책방 운영은 물론 회사 경영, 40여명 직원에게 하와이 여행경비 지원 등도 즐거워서 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떨 때 즐거우냐”고. 그는 “아주 단순하다”면서 자신만의 행복론을 폈다.

“남이 잘되는 걸 보면 즐겁다. 누군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즐겁고,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작품을 보는 것도 즐겁다. 챕터투 윈도 전시실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면서 잠시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옥상 조형물도 그렇다. 고개 들어 하늘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 눈에는 보인다. 발견하는 순간 얼마나 즐겁겠나. 이런 상상을 하면 너무 즐겁다. 그저 난 내가 즐거운 것을 해왔을 뿐이다.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13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어머니가 돈암동 시장에서 고사리며 도라지 같은 나물을 팔아 자식들을 건사했다. 가난했지만 없는 사람 배려하는 법을 일찌감치 익혔다. “아버지는 논에 떨어진 이삭도 못 줍게 하셨다. 우리보다 없는 사람들 가져가게 두라고.”

최춘섭 회장에게는 남은 꿈이 많다. 아니, 꿈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세 개의 꿈이 있다. 하나는 책방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실비로 작품 도록을 프린트할 수 있는 작은 프린트 가게를 여는 것, 나머지 하나는 회사 창고로 쓰던 공간을 비워 넓은 갤러리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참, 책방 이름 ‘스프링 플레어’는 그의 이름 춘섭(春燮)에서 따왔다. 직원들에게 권한을 주고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그는 “직원들이 그렇게 이름을 지어왔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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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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