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디엔피코퍼레이션 회장. 계간지 ‘21세기 문학’과 김준성문학상, 증평 21세기문학관을 후원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김상철 디엔피코퍼레이션 회장. 계간지 ‘21세기 문학’과 김준성문학상, 증평 21세기문학관을 후원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쯤해서 그만두면 어떨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질문이 건너왔다. 채 자리에 앉기도 전이었다. 진지한 눈빛에 도리어 말문이 막혔다. 답할 시간도 벌 겸 주위를 둘러봤다. 지난 3월 16일, 김상철(71) 디엔피코퍼레이션 회장을 만나러 온 참이었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집무실은 소박했다. 회의용 테이블과 업무용 책상 정도다. 책장에 단행본 몇 권이 보인다. 거개가 경영에 관한 실용서다. 그 아래칸에 나란히 꽂힌 ‘21세기 문학’이 보인다. 계간 문예지다. 김 회장을 만나러 온 이유이기도 하다.

21세기 문학은 1997년 탄생했다. 올해로 21년째, 이달에 80호가 나왔다. 21세기 문학을 창간한 이는 김준성 전 이수그룹 명예회장이다. 김상철 회장은 그의 장남이다. 2007년 타계한 부친을 대신해 21세기 문학을 뒷바라지해왔다. 올해로 11년째다. 그런 그가 고민 중이다. 문예지 발간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두고서다.

그의 고민을 이해하려면 김준성 회장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였다. 기업인으로 시작해 관료를 거쳐 문학인으로 눈을 감았다. 1920년 대구 출생, 대구고보(현 경북고)를 거쳐 경성고등상업학교(현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광복 직후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시작했다. 양말기계 2대로 시작한 칠복섬유공업사는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양말공장으로 성장했다. 1967년 지역상공인들과 함께 대구은행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지방은행이었다. 대구은행 초대 행장부터 시작해 제일은행, 외환은행, 한국산업은행에서 수장을 맡았다. 1980년엔 한국은행 총재도 지냈다. 첫 외부 출신 총재였다.

1982년,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취임했다. 1987년 기업인으로 돌아왔다. 삼성전자 회장(1987년)과 ㈜대우 회장(1988년)을 맡았다. 1995년부턴 이수그룹을 이끌었다. 틈틈이 쓴 소설을 모아 2007년에 전집을 냈다. 미수를 기념해서였다. 그에게 문학은 단순한 ‘여생의 소일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그의 이력에선 금융인, 관료보다 소설가가 먼저였다. 서른둘이었던 1952년, 문예지 ‘협동’에 ‘닭’을 발표했다. 1955년엔 정식으로 등단했다. ‘현대문학’에 ‘인간 상실’을 발표했다. 김동리 선생의 추천이었다.

문예지, 문학상, 문학관

김준성 회장이 1997년에 문예지를 만든 건 ‘아쉬움’ 때문이었다. “우리 문학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장을 마련해, 문학에만 전념하지 못한 아쉬움을 얼마만이라도 보상하기로 결심했다.” 창간 당시 김 회장이 한 말이다. 사실 기업인의 관점에선 아무리 따져봐도 밑지는 장사였다. 창간 당시 실무를 맡았던 이제홍씨에게 창간 배경을 물었다. 이씨는 당시 이수그룹의 기획팀장이었다. 지금은 퇴직 후 소설을 쓰고 있다. “순전히 문인들을 도우려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저 돈을 나눠줄 순 없으니 글 쓰는 문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다른 문예지와 비교했을 때 원고료를 파격적으로 높게 책정했다. 사업성은 전혀 없었다. 팔 곳이 있었겠나. 발간한 후엔 재고를 소진하느라 힘들었다.” 창간 이듬해엔 문학상도 만들었다. ‘이수문학상’ ‘21세기문학상’이라는 이름이었다가 현재는 ‘김준성문학상’으로 매년 수상자를 선정한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김상철 회장은 기존의 후원에 한 가지를 더했다. 문학관을 연 것. 21세기문학관이다. 2013년 충청북도 증평군에 지었다. 디엔피코퍼레이션의 증평공장 내 공간을 활용했다. 21세기문학관은 작가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다. 한 번에 11명이 머무를 수 있는데 매번 30명 이상이 신청한다. 입주하면 두 달 반 동안 매일 세끼 식사를 제공받으며 집필에만 전념할 수 있다. 문학관엔 5000여권을 소장한 도서실도 있다. 2013년부터 3월 현재까지 198명의 문인이 거쳐갔거나 머무르는 중이다. 은희경·권여선 작가, 장석주 시인, 김석희 번역가도 한때 문학관 입주자였다. 문인에게 잠잘 곳까지 제공하는 문학관은 전국에 6군데 있다. 증평 21세기문학관, 원주 토지문화관,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청송 객주문학관, 담양 생오지문예창작촌, 하동 평사리문학관이다. 문학관은 아니지만 서울 명동의 프린스호텔도 문인에게 객실을 제공한다. 원래는 10곳 가까이 있었는데, 운영난으로 하나씩 문을 닫았다.

한 기업이 문예지, 문학상, 문학관을 모두 후원하는 것은 국내에선 디엔피코퍼레이션이 유일하다. 부친을 닮아 문학에 관심이 있는 걸까. 김상철 회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문학에 개인적으론 별 취미가 없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었기에 지금까지 온 거지.” 김 회장이 고민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문예지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5년만 해야지,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다 11년째까지 왔다. 처음엔 능력이 닿을 때까지 하자는 생각이었다. 최근 와선, 과연 몇 명이나 읽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문예지라는 게 전문서적이더라. 의학책, 철학책과 같다. 파는 건 포기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겐 무료로 나눠주다시피 한다. 과연 몇 명이나 읽는지 의문이다.”

문예지들의 잇따른 폐간을 지켜보며 고민은 더 깊어졌다. 지난 2015년 ‘세계의 문학’이 폐간했다. 민음사가 내던 잡지다. 1970~1980년대에는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현 문학과 사회)과 함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3대 문예지로 평가받았다. 40년 전통의 문예지가 하루아침에 문 닫는 걸 보며 김 회장은 적잖게 충격을 받은 듯하다. “민음사라면 주요 출판사 아닌가. 그런 곳에서도 이제 포기한다는 얘기 아닌가 싶었다.”

문단 권력에 신경 쓰지 않는 잡지

이후로도 굴지의 문예지들이 줄지어 문을 닫았다. 지난해 여름엔 ‘문예중앙’이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사실상 폐간이다. ‘작가세계’는 1년간 휴간한 후 다시 문을 연다고 발표했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김 회장의 말이다. “작가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준다는 건 좋다. 그런데 보지 않는 책을 애써 만들어서 버리는 것 아닌가. 읽은 흔적 하나 없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보면 회의감이 든다. 자원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싶어 어떤 때는 죄책감마저 든다.”

문예지 중 21세기 문학은 독특한 유에 속한다. 대부분의 주요 문예지들이 출판사에서 발간된다. 책을 낼 작가를 발굴하고, 관리할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일종의 관련 사업인 셈이다. 21세기 문학은 문학과 관련 없는 기업이 순수하게 후원하는 경우다. 21세기 문학을 통해 등단했거나 잡지 발간에 참여해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김 회장은 꽤 좋은 후원자’라고 평가했다. 편집위원인 신용목 시인의 말이다. “김 회장님은 ‘문학을 잘 모른다’며 편집엔 일절 간섭하지 않고 지원만 해주신다. 11년 동안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후원을 해주셨다. 기업이 후원하는 문예지로는 유일하지 않나. 웹진 대산문화도 있지만 교보에서 설립한 재단인 대산문화재단에서 내는 거라 21세기 문학과는 좀 다른 경우다.”

후원 기업이 문학계와 영 상관없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갖게 된 미덕이 있다. 소위 ‘문단 권력’에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2016년 가을호가 대표적인 예다. 김현 시인의 ‘질문 있습니다’를 실었다. ‘어디서 뭘 배웠기에 문단에도 이렇게 씨발 새끼들이 많을까요? 차례대로 적어보겠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발간 후 큰 화제가 됐다.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과 여성 혐오 등에 문제 제기를 해서다. 김준성문학상도 마찬가지다. 일부 문학상들이 인기 작가에게 몰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며 상을 주는 것과 달리, 이제 갓 데뷔작을 낸 신인작가에게만 상을 준다.

인터뷰 도중 김 회장의 장남 세훈씨가 사무실에 들렀다. 김 회장이 고민하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아들이다. “이 고민을 내 대(代)에서 끝내야 하지 않겠나 싶다. 할아버지가 시작한 걸 손자가 없애는 게 더 힘들지 않겠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지났는데 문예지와 문학상이 여전히 있는 걸 아시면 놀라시지 않을까.”

지난해 김준성 전 명예회장 10주기를 기념해 선집이 나왔다. 읽으며 문득 야마사키 도요코의 ‘불모지대’가 떠올랐다. 일본의 한 종합상사가 커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실제 인물인 ‘세지마 류조’를 모티브로 했다. 선집에 실린 작품 중 ‘흐르는 돈’을 읽으니 ‘서울판 불모지대’의 한 장면을 읽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재계와 관계, 정치의 얽히고설킴을 그만큼 잘 아는 소설가가 또 나올 수 있겠나 싶다. “아버지가 위대한 소설가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담백하게 평했던 김 회장도 ‘흐르는 돈’에 대해서는 “최근에 다시 읽어 보니 요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명예회장이 생전에 산업 현장이란 소재에 천착했더라면 꽤 흥미로운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부친이 문학계에 뿌린 씨앗에, 그 아들이 열심히 물을 대왔다. 21년, 대가를 바라지 않는 후원이었다. 증평 문학관에 입주했던 작가들은 문학관을 떠난 이후에도 연락을 해오는지 궁금했다. 김 회장은 잠깐 떠올려 보다 답했다. “명절이면 연하장이나 인사 메시지를 보내온 작가가 몇 명 있었다. 그럴 땐 참 반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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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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