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 사이에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그리고 식당에 멍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장 매대엔 탐스럽게 빨간 멍게가 통째로, 마트 진열대엔 투명 포장 속, 주황빛 멍게 속살이 빛을 낸다. 식당에선 회부터 국·찜까지 다양한 멍게 요리가 미감을 자극한다. 경계의 맛이랄까. 까딱 잘못하면 “이걸 왜 먹지?”란 반응이 나올, 비릿한 바다 향, 바다 맛이다. 그 위태롭고도 절묘한 맛에 탐닉하기 전, 멍게의 정체성이랄까 그런 얘기부터 잠깐.

해삼·말미잘과 같은 취급은 NO!

멍게는 해삼·말미잘과 함께 아이들이 곧잘 얕잡아보는 대상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상대가 답답하게 느껴지면 ‘넌 이제 끝났어!’란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이 소리친다.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아!”

기분이 많이 상하는 욕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 막 열을 내 싸우다가도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개·돼지도 아니고 해삼, 멍게, 말미잘이라니…. 해삼·멍게·말미잘이 그렇게 단번에 아이들을 풀 죽게 하는 건 물론 그들의 생김새 때문이다. 머리도 없고, 손발도 없고, 눈 같은 감각기관도 따로 없다. ‘지적 수준’에 따라 동물을 줄 세우는 건 지극히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뇌도 없고, 뇌에 전달할 정보를 만들어내는 감각기관도 없는 게 사실이니, 바보·멍청이 취급한다고 무조건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렇긴 해도 해삼과 멍게와 말미잘이 싸잡아 같은 대우를 받을 건 아니다.

해삼·멍게·말미잘은 동물 분류학상 나름의 위치를 갖는다. 셋 중 가장 하등할 것으로 보이는 말미잘 얘기부터 하자. 말미잘은 강장동물이다. 화려한 촉수는 ‘바다의 아네모네’란 별명까지 가져다주었지만, 촉수 아래로는 ‘텅 빈 창자(강장)’만 하나 있을 뿐이다. 말미잘은 그 원통형의 빈 창자를 바위에 붙이거나, 모래에 파묻고 살아간다.

해삼은 극피동물이다. 석회질의 가시가 돋친 피부(극피)를 갖는다. 해삼은 가시라기보다 돌기에 가까운 쪽으로 봐줘야겠다. 어쨌든 해삼도 단순하게 생긴 몸통 하나로 삶을 영위한다. 모래나 바다 밑바닥의 흙을 삼켜, 그 안의 유기물을 소화하고 나머지는 다시 바다로 내보내는 단순한 방식이다.

그런데 멍게는 무척추동물인 말미잘·해삼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척추동물의 삶이 무척추동물의 삶보다 나을 거라 판단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래도 척추동물인 인간의 입장에서 말미잘과 해삼을 하등동물로 보겠다는 걸, 또 뭐라 할 건 아니다. 어쨌든 멍게는 해삼·말미잘보다는 덜 하등하다.

모양으로 보자면 멍게는 ‘바다의 칼집(鞘·초)’이라고 ‘해초류’인데, 계통으로는 강장(말미잘)이나 극피(해삼)동물보다 척추동물에 훨씬 가까운 척삭동물이다. 척삭은 동물의 몸을 지지하는 끈 같은 것으로, 이게 발전해 딱딱한 뼈가 되고, 그리 되면 그게 척추다. 인간의 성장이 그런 식이다. 사람의 형상을 갖춰가면서 배아 시절의 척수가 척추로 변한다. 멍게도 그럴 뻔했다.

어린 시절의 멍게는 올챙이처럼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데, 그 시절 멍게의 구조나 모습은 인간의 배아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성체가 되면서 척수가 척추로 변하지 않고 퇴화한다. 척수만 퇴화하는 게 아니라, 눈에 해당하는 안점, 뇌의 역할을 하던 신경계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역(逆)진화라 해야 할까. 멍게는 성체가 되면서 고등동물의 특성을 스스로 버린다. 제 몸에 남겨놓는 건, 빨갛게 울퉁불퉁한 껍질과 껍질에 달라붙어 있는 주황빛의 툭툭한 근육과 근육 안쪽의 노란색 내장이다. 그리고 우리는 건강하고 탄탄한 주황의 멍게 근육을 껍질로부터 떼어내고 썰어서는 회로도 먹고, 끓여도 먹고, 구워도 먹고, 찜으로도 먹는다.

대표적인 멍게 레시피

술, 특히 찬 소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멍게는 횟감이다. 껍질 안쪽에서 살(근육)을 떼어내고 흐르는 물에 두어 번 헹군 뒤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 썬다. 그리고 옆에 만들어놓은 초고추장에 날로 찍어 먹으면 그만이다. 소주 한 잔에, 멍게 한 점. 애주가들이 쉽게 잊지 못하는 환상의 조합이다. 뭉근한 초고추장에 멍게살을 날로 찍어 입에 넣고, 그 위로 소주를 한 모금 머금을 때의 아릿함…. 멍게가 해삼·개불과 함께 단품 요리로 횟집의 메뉴판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 있는 이유다. 거나하게 취하기라도 하면 황금빛으로도 보이는 밝은 주황(멍게살)과 짙은 빨강(초고추장)의 강렬한 대비도 멍게의 지속적 인기를 뒷받침한다. 맛으로만 먹는 건 아니니까.

술이 없을 경우, 멍게비빔밥과 멍게미역국이 대표적 멍게 레시피로 등극한다. 두 경우 모두 멍게 특유의 비릿하고 알싸한 향을 요리의 끝까지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그게 관건이 된다.

비빔밥의 경우 흰 쌀밥에 멍게와 함께 얹을, 여릿한 봄나물을 준비한다. 해안에서 바닷바람 맞고 자란 세발나물도 좋고, 그보다 훨씬 더 야들야들한 데다가 멍게 못지않게 독특한 향을 지닌 돌나물을 넣어도 좋다. 채 썬 오이나 무순을 추가해도 좋다.

고추장을 넣을지 간장을 넣을지 선택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론 간장 쪽이다. 그것도 아주 조금만. 고추장이나 초고추장은, 단단한 껍질 속으로 멍게가 오랜 시간, 꽁꽁 감추어온 바다 향을 덮어버리기 십상이다. 사실 멍게 자체의 짭쪼름한 맛으로도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신선한 멍게 속살에, 봄나물 서넛을 얹는 정도에 그쳐야 바다 맛이 산다. 물론 약간의 참기름은 필수다. 마지막으로, 숟가락보다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는 점. 따뜻한 쌀알과 찬 멍게살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 보잔 것이다.

미역국은 재료와 관계없이 요리 방법이 엇비슷하다. 단백질을 담당할 재료(소고기, 바지락, 황태 등등)와 불린 미역을 간장·참기름으로 잘 버무린 뒤, 빈 냄비 위에서 볶는다. 충분히 볶고 나서 물을 넣어 한참을 끓이는 것으로 진한 국물을 끌어낸다. 멍게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멍게 전체를 처음부터 그렇게 사용하진 않는다. 남겨두었다가 국이 다 끓은 뒤, 불을 끄고 나서 투하한다. 국그릇에 담아내기 전, 냄비 뚜껑을 잠깐 닫아 설핏만 익히면 된다.

이유를 짐작하실 게다. 볶고 끓인 멍게는 고소할진 몰라도, 특유의 향과 맛을 잃는다. 국을 다 끓인 후 넣어, 익히는 듯 마는 듯해야 바다의 향과 맛이 살아난다. 충분히 끓은 미역국에 나머지 절반의 멍게를 붓는 건 “싱싱한 바다 향아, 살아나라, 살아나라!” 주문을 거는 일이다.

썰어 놓은 멍게는 한입에 먹기 좋아 다양한 레시피에 응용된다. 파스타에도, 리조토에도 맛보지 못한 풍미를 스며들게 한다. 통영 등지의 멍게 전문 식당에 가면 멍게가스, 멍게만두, 멍게그라탕, 멍게샐러드까지, 허를 찌르는 요리들이 등장한다. 그렇긴 해도 멍게 요리의 본령은 회와 비빔밥, 미역국 정도까지가 아닌가 싶다. 멍게는 아무래도 육질보다 향이다.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3대 저칼로리 수산물

씹어 보고 삼켜 보는 걸로도 바로 느껴지지만 멍게에는 단백질이 많고 지방은 적다. 100g 기준으로 단백질 9.2g, 지방 2.6g의 함량이다.(국립수산과학원 수산물 성분표) 해삼·해파리와 함께 ‘3대 저칼로리 수산물’로 꼽힌다. 살 빼자고 멍게 찾아 먹을 일은 아니지만, 다이어트 식품이 맞다.

당뇨병과 피부미용에 좋다는 얘기도 한다. 당뇨병에 대한 효능은 멍게에 포함된 미량 금속 바나듐 얘기를 하면서 주로 나오는데, 바나듐이 사람 몸에서 어떤 생물학적 기능을 하는지에 관해선 확실한 연구결과를 찾기 어렵다. 멍게가 바닷물에 녹아 있는 바나듐을 자기 몸에 농축시키는 능력이 탁월해, 바나듐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건 맞다. 피부미용을 얘기하는 건 콘드로이틴 황산이란 성분 때문이다. 피부에도 좋고, 뼈에도 좋아 화장품의 원료로 쓰이는 물질이다. 해삼에도 풍부하고, 홍어 연골에서도 추출한다.

글리코겐을 빼놓을 순 없겠다. 멍게를 먹으면 쌉싸름한 맛 뒤로 달콤함이 오래 묻어나는데, 글리코겐 때문이다. 글리코겐은 동물의 간이나 근육에 풍부한 탄수화물이다. 우리가 먹는 멍게살이 근육질이다 보니, 멍게에도 글리코겐이 많다. 글리코겐은 탄수화물 중 다당류에 해당한다. 사람 몸이 포도당을 필요로 할 때, 적시에 공급해줄 수 있다. 봄철에 피로하고 노곤할 때 멍게를 먹으면 힘이 바로, 마구 난다는 얘기다.

초봄 지나 4~5월은 돼야 멍게가 제 맛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글리코겐 덕이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글리코겐 함량이 높아지고, 멍게의 달콤한 맛은 날이 추울 때에 비해 훨씬 강해진다.

경상도 사람들의 “이기 멍기요?”

멍게란 이름, 참 희한하다. 그런데 일상에선 멍게, 멍게 하지만, 학술논문 같은 데선 ‘우렁쉥이’란 용어가 주로 쓰인다. 원래는 우렁쉥이가 표준어, 멍게는 사투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장에서 죄다 멍게, 멍게 하니까 멍게도 표준어로 인정했다. 우렁쉥이도 표준어로 남겨두긴 했다.

다른 이름들도 그렇지만 멍게란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불분명하다. 우둘투둘, 멍게의 생김새가 워낙 일상적이지 않다 보니 경상도 사투리를 끌어들인 우스개 해설도 등장한다. 생긴 게 하도 희한하니까 사람들이 “이기 멍기요(이게 무언가요)?” 자꾸 물었고, 그러다가 ‘멍기’가 ‘멍게’가 됐다는 설(說)이다. 멍~하게 생겼으니 멍게 아니겠냐고 별 생각들 없이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이들이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아!” 하는 거나 같은 수준이다.

멍게는 그렇게 자주 희화화된다. 하지만 바위나 해초에 달라붙은 채 고요히, 해류에 몸을 내맡기고 살아가는 5~6년의 생이 우스운 것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복잡한 생각(신경계)과 감각(안점)과 자유(헤엄치며 살았으니)를 스스로 퇴화시키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멍게의 삶은 달관과 초연에 가깝다. 멍게 특유의 비릿함이 어쩌면 숙성된 인생의 쓴맛 아닐까, 가끔 생각하는 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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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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