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툼페아언덕에서 바라본 구시가 전경.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툼페아언덕에서 바라본 구시가 전경.

발트3국은 발트해에 면하여 나란히 이웃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3개국을 말한다. 이 나라들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국가들로 국제사회에 새롭게 등장했다. 이들은 면적이나 인구 수에서 작은 나라들이다. 각 나라의 면적과 인구는 리투아니아가 6만5300㎢에 287만명, 라트비아는 6만5000㎢에 200만명, 에스토니아는 4만5000㎢에 120만명 수준이다. 유로화 사용국과 나토 가맹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들이다. 하지만 소련 시절 억눌렸던 자유로운 도시국가적 전통이 되살아나면서 힘차게 번영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수도들은 모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하여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발트3국은 또 러시아·독일·스웨덴 등 주위 강대국들에 지배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하여 독립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에게는 동질감도 선사한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위치한 검은머리형제단 길드 건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위치한 검은머리형제단 길드 건물.

번영의 역사, 리투아니아

발트3국 가운데 리투아니아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는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14세기에는 현재의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까지 지배했던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1569년에는 폴란드와 함께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을 구성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은 국왕선출제 등의 민주적 제도를 비롯 초등학교 의무교육제까지 실천하며 번영했던 선구적인 자유주의 전통의 나라였다.

수도 빌뉴스의 구시가에 가면 그러한 번영의 흔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톨릭 성당인 베드로와 바울 성당을 통해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신앙심과 미적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1701년 건축된 이 성당은 밖에서 보면 소박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로크양식의 정밀하고 사실적인 조각들과 부조들로 가득하다. 다른 유럽국가들 성당의 경우 성경의 내용을 프레스코화로 나타낸 경우는 많다. 그러나 빌뉴스의 베드로와 바울 성당처럼 성경의 내용과 천국의 모습을 순백의 부조로 입체화시켜 표현한 성당은 드물다.

성안나성당은 가톨릭 성당치고는 드물게 붉은 벽돌로 건축된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러시아를 침공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철군할 때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프랑스로 가져가고 싶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 나라 사람들의 가톨릭 신앙은 뿌리 깊고 경건하다. 필자가 찾았던 4월 초의 주일에도 빌뉴스의 모든 성당은 미사를 드리는 남녀노소 신도들로 가득했다. 2차대전 후 재건한 대성당에서 중심가인 게디미나스 거리까지는 구시가가 이어진다. 골목 담벼락에는 작은 예술작품들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리투아니아는 서쪽으로 프로이센, 동쪽으로 러시아가 강성해지면서 18세기에 분할점령되어 나라를 잃게 되었다. 1차대전 직후 독립했지만 소련의 침공을 받아 강력하게 저항했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침공해오자 소련에 저항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협력했지만 나치 독일은 유대인은 물론 리투아니아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저질렀다. 당시 나치를 피해 리투아니아를 탈출한 유대인의 후손들 가운데에는 유명 인사들이 아주 많다. 현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 영화 ‘아이언맨’의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지난해 사망한 캐나다의 가수 레너드 코언 등이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의 후손들이다.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던 구역에는 현재 예술가들이 모여 ‘우주피스공화국’을 건설하였다. 건국절은 매년 4월 1일 만우절이다. 3대 국시(國是)는 ‘싸우지 말라! 승리하지 말라! 항복하지 말라!’이다. 공화국 중심에는 뿔나팔을 부는 천사상이 세워져 있다. 우주피스공화국 골목길을 산책하면 예술가들의 현대적인 작품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의 영혼들이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리투아니아는 2차대전 이후 소련에 점령되었지만 끝까지 저항했다. 청년들은 숲속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게릴라 투쟁을 벌였으며, 도시에서는 시민들의 저항이 지속되었다. 미국의 작가 톰 클랜시 원작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붉은 10월호’라는 영화가 있다. 핵잠수함 ‘붉은 10월호’를 이끌고 소련을 탈출하려는 라미루스 함장 역을 숀 코네리가 맡아 열연하였다. 라미루스 함장이 바로 리투아니아 출신이다.

리투아니아의 두 번째 도시인 카우나스는 반소련 저항의 중심지였다. 카우나스는 20세기 초 리틀 파리(little Paris)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구 시청사 광장 가장자리에는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의 카페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다. 카우나스의 반소련 항쟁의 중심지는 대성당이었다. 반소련 항쟁의 가장 극적인 사태는 1972년 국립음악극장 앞 공원에서 19세 노동자 로무스 칼란타가 반소련 독립국가 건설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1972년 한 해에만 13명이 분신으로 칼란타의 뒤를 따랐다. 현재 국립극장 앞 공원의 분신 현장에는 그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철로 만든 화염이 리투아니아 대지를 영원히 불태우는 듯한 처절함이 느껴지는 기념물이다.

리투아니아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트라카이성(城)은 지금은 박물관이다. 갈베호수의 섬에 위치한 트라카이성은 천혜의 요새이다. 원래는 1409년 리투아니아의 국부인 비타우타스 대공(1350~1430)이 건설하였다. 잇단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19세기부터 복원하여 지금은 거의 완공되었다. 붉은색 원뿔 지붕을 얹은 탑과 높은 장벽이 아름답고도 강인한 인상을 준다. 빌뉴스 시민들의 자부심이자 휴양시설이기도 한 트라카이성을 바라보며 리투아니아의 영광과 저항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베드로와 바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광경.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베드로와 바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광경.

저항의 역사, 라트비아

라트비아에 유럽 문화가 도달하게 된 것은 십자군 덕분이다. 12세기에 로마 가톨릭 교황은 이교도 지역이던 라트비아에 중동에서 귀환한 십자군을 보냈다. 주로 독일 기사단이 이곳에 가톨릭을 전파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독일 루터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현재의 수도로 쓰이는 도시 리가는 1201년에 독일 브레멘 출신의 알버트 주교(1165~1229)가 독일 상인들과 함께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리가의 대성당에는 알버트 주교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리가는 유럽의 다른 어떤 중세 도시들 못지않은 아름다운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중 아르누보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은 거리는 알버트 거리로 명명되어 있다. 아르누보란 19세기 말부터 유행했던 장식이 아름다운 건축양식이다. 현재 리가에는 53채의 아르누보 건물이 있다고 한다.

리가는 중세부터 교역을 이끌었던 독일 상인들의 조직 한자동맹에 속했던 도시이다. 독일 상인 길드가 만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브레멘의 동물음악대 조각. 평생토록 주인을 위하여 일하다 늙어서 쓸모없다고 버려진 뒤 음악대를 조직한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의 조각상이다. 리가에서 활동했던 브레멘 상인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브레멘시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리가 구도심에서 의미 깊은 3형제 건물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100년의 터울을 두고 16, 17, 18세기에 각각 지어진 건물 세 채가 나란히 붙어 있다. 4층 건물이지만 외관상 5층이다. 새로 지은 것일수록 바닥면적이 좁아진다. 갈수록 부동산값이 비싸졌다는 이야기일 듯하다. 조금 가다 보면 스웨덴문이 나타난다. 문 양옆으로 대포 포신이 거꾸로 박혀 있다. 문 위에 스웨덴을 상징하는 사자의 얼굴도 어리벙벙하다. 1698년 스웨덴이 불침을 선언한 징표라고 한다.

길드 건물 구역에 가면 푸른 지붕 꼭대기에 고양이상을 설치한 노란색 4층 건물이 나온다. 대상인들의 건물 구역 앞에 소상인 길드가 지은 건물이다. 그런데 대상인 길드가 이들을 무시하자 건물 꼭대기에 고양이상을 설치하고 조롱의 의미로 엉덩이를 대길드 구역으로 향하게 하였다. 결국 시당국에서 개입하여 고양이 엉덩이를 180도 회전시켜 엉덩이가 아닌 얼굴을 대길드 구역으로 향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이다.

구시가에서 가장 화려한 길드 건물은 검은머리형제단의 건물. 16세기에 건축된 것이었다. 검은머리형제단은 리가에서 활동하던 독일 출신의 독신 남자 상인들의 길드였다. 검은머리형제단 길드 건물은 2차대전으로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소련군은 이 건물을 독일인들이 세웠다는 이유로 완전히 부숴버렸다. 현재의 모습은 20세기 초에 남아 있던 사진을 근거로 라트비아 독립 이후에 재건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건물 바로 오른편에 소련의 가혹한 점령기간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점령박물관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소련점령박물관은 컨테이너 형태의 검은색 구조물이다. 화려한 검은머리형제단 길드 건물에 비해 무의미하고 비정해 보인다.

구시가 인근 자유의 거리에는 라트비아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라트비아가 소련, 독일 등을 상대로 싸운 라트비아 독립전쟁 중에 사망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5년 세워졌다. 원래 있던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동상은 철거되었다. 소련은 자유의 여신상을 철거하려 하였지만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포기했다고 한다. 소련에 저항하던 시민들의 시위가 빈발했던 곳이다. 라트비아 국민에게는 성역화된 장소이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구시가의 시청광장.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구시가의 시청광장.

IT 최강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가에서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거리는 약 400㎞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정도이지만 고속도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서울~부산을 달릴 때보다 시간은 더 걸린다. 탈린에 도착하기 전에 한 번쯤 들러 보는 곳이 합살루이다. 합살루는 발트해의 온천도시이자 휴양도시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앉아서 쉬었다는 벤치가 있다. 현재 합살루역은 철도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16세기 주교가 통치하던 성이 위치해 있다. 현재 이 성은 복원 중이다. 탈린에 도착하면 발트3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만나게 된다.

에스토니아는 국제적으로도 IT 최강국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최초로 온라인 투표를 실시하고, 온라인 시민권도 부여한다. 수도 탈린은 유럽에서도 많은 창업이 이루어지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통신업체인 스카이프도 탈린에서 창업했다. 와이파이도 가장 잘 터지는 도시이다.

이 도시에는 대형 선박터미널도 4곳이나 있다. 겨울에도 바닷물이 잘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 바닷길로 핀란드 헬싱키와는 80㎞,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는 350㎞ 거리이다.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나라들과 늘 대형 유람선이 오간다. 터미널에는 대형 유람선이 한두 대씩 정박해 있다. 여름 시즌에는 구시가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에스토니아의 빠른 발전의 원인으로 과감한 IT정책을 꼽지만, 발트해 물류의 중심지라는 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발트3국 가운데 전쟁의 참화를 가장 크게 입은 나라가 리투아니아라면, 가장 피해가 적었던 나라는 에스토니아다. 탈린의 구시가는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탈린도 역시 한자동맹에 속한 상업도시였다.

구시가는 발트해를 바라보는 ‘뚱뚱한 마거릿 포탑(砲塔)’에서 꼭대기의 툼페아언덕까지 경사면을 타고 형성되어 있다. 16세기 초에 건설된 지름 25m, 높이 20m 크기의 ‘뚱뚱한 마거릿 포탑’은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된다. 눈여겨볼 것은 그 앞에 설치된 추모비 ‘브로큰 라인(The Broken Line)’. 1994년 9월 29일 발트해에서 발생한 에스토니아호 침몰사고로 인한 852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세운 조형물이다.

‘뚱뚱한 마거릿 포탑’과 성문을 지나면 높이가 123m에 달하는 성 올라프 교회가 나온다. 그 다음 시청 건물이 나오는데, 지붕 꼭대기에는 탈린 경비병이던 토마스 아저씨 모습을 한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다. 시청 앞에는 1422년 문을 연 약국이 있다. 이곳에서 툼페아언덕까지 가는 길은 아름다운 중세 건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마침내 툼페아 언덕에 다다르면 19세기 말에 건설된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이다. 그런데 이 성당은 외관이나 내부 벽화 등의 수준이 좀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이 성당 철거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툼페아언덕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탈린의 구시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발트3국은 주위 강대국들에 핍박받고 저항하는 역사를 거듭해왔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에게는 동질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 이 세 나라를 여행할 때에는 이러한 피지배와 저항의 역사가 담긴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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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영 인터넷뉴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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