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천국의 의복-패션과 가톨릭의 상상력’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 교황의 성의를 본뜬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이브닝 드레스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천국의 의복-패션과 가톨릭의 상상력’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 교황의 성의를 본뜬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이브닝 드레스다.

계기는 뉴욕타임스 문화면에 실린 ‘레드카펫’ 기사였다. 눈에 익은 스타들이 등장하는 현란한 패션 화보가 신문 전면에 실려 있었다. 연예계 스타들을 모델로 등장시킨 패션쇼는 21세기 모바일 셀피 시대의 단골 눈요기다. 수백만 팔로어를 거느린 스타들이 연출하는 나르시시즘 퍼포먼스의 광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무대에 서는 스타도, 팔로어들도 자기에 도취해 사진을 찍어댄다. 이런 패션쇼를 심드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특별히 의상 디자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특별할 것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쇼라고 느낀다.

레드카펫 관련 기사를 대충 넘기려는데, 특이한 패션 사진들이 눈에 띈다. 예상 못한 사진들이다. 성형으로 10년은 젊어진 듯한 여자 배우가 40㎝ 높이의 금제(金製) 모자를 쓰고 있다. 드레스도 전부 금빛 수제(手製) 패션이다. 모자 모양이 비잔틴시대 교회 형상이다. 아예 왕관을 쓰거나, 로마 바티칸에서 본 교황 미사복 차림의 스타들도 있다. 교회 목회자 패션의 남성 흑인 래퍼도 눈에 띈다.

20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특별전 기념 갈라쇼라고 한다. 5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이어질 특별전의 제목은 ‘천국의 의복-패션과 가톨릭의 상상력’. 기묘한 패션의 배경에 가톨릭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드카펫에 올라선 여성 모델들의 노출이 심하지 않은 이유도 종교 관련 패션쇼라는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패션과 가톨릭.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뭔가 통하는 접점도 있을 듯하다. 곧바로 특별전이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으로 향했다.

‘천국의 의복전’ 드레스의 재료는 실크다. 천사의 날개를 상징하는 듯하다.
‘천국의 의복전’ 드레스의 재료는 실크다. 천사의 날개를 상징하는 듯하다.

토요일 밤의 메트로폴리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하 메트)에 들른 것은 토요일 오후 6시다. 루브르나 영국박물관처럼 메트도 토요일은 ‘심야영업’이 이뤄지는 날이다. 메트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한해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오후 5시30분에 끝나는 평일보다 금·토요일의 늦은 밤 관람이 이상적이다. 자동차 주차도 쉽고, 비교적 한산한 공간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천천히 즐기면서 ‘독점’할 수 있다. 집단지성의 시대라지만, 예술만은 혼자 느끼는 고독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한층 더 적막한 토요일이다. 특별전 주무대는 메트 305호실과 주변의 중세 상설관이다. 메트 1층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공간이다. 1층 오른쪽이 고대 이집트, 왼쪽이 고대 그리스 상설관이다. 비잔틴에 뿌리를 둔 중세 기독교 상설관이 메트의 중심이란 의미다. 잊기 쉬운데, 미국은 청교도, 즉 기독교 국가다.

305호실 주변은 4세기 말부터 15세기에 이르는 유물과 유적들의 공간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과장되거나 환상적인 기독교 예술과 달리 원론적·원초적 전시물이 주류다. 얼마나 신에게 절대적이고 절실한지 여부가 당시 유물 유적의 존재 근거다. 인간이 창조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속(俗)의 상상력’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한층 더 신비롭다. 보통 메트의 다른 특별전은 특설 전시관에서 열린다. 기존의 상설관에서 이뤄지는 특별전은 극히 드물다. 상설관, 그것도 메트의 핵인 성(聖)의 한가운데서 특별전이 열린다는 점에서 아주 예외적인 이벤트다. 흥미로운 것은 특별전 스폰서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Versace)가 주역이다. 입고, 보여주고, 즐기는 속(俗)의 대명사가 메트 기독교 전시관을 점령한 셈이다.

기대했던 토요일 밤의 여유와 자유는 305호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라졌다. 사람들로 ‘엄청’ 북적인다. 절반은 고성능 대형 카메라를 멘 중국 관광객들이다. 전시회를 보러온 것이 아니라 전시회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주 목적이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뉴욕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중국 관광객으로 메워져 있다. 메트 주변 풍경 중 하나가 길게 늘어선 중국인 관광객 버스행렬이다.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관광 영순위 도시는 뉴욕이다. 뉴욕 관광 코스에서는 1위가 자유의 여신상, 2위가 월스트리트의 황금소라고 한다. 자유와 돈에 대한 중국인의 심리를 읽을 수 있지만, 메트도 관광 필수 코스 중 하나다.

특별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스러운 옷들을 걸치고 있는 마네킹들의 표정이다. 입은 닫혀 있고, 눈도 감겨 있다. 수동적 입장의 마네킹을 통해 의상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시신에 덮인 패션을 감상하는 느낌도 든다. 마네킹의 몸매는 10등신에 이를 정도로 기형적이다. 흑인이나 동양인들이 보면 불만일 듯하지만 전부 백인 얼굴이다. 305호 특별전에는 대략 60여개의 마네킹 입상이 들어서 있다. 20m 높이의 벽에 걸린, 비잔틴시대 예수의 벽화를 중심으로 한 구도다. 예수를 우러러보면서 마네킹들이 종횡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자상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비잔틴시대의 예수다.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신이여 자비를)’은 중세 기독교인들이 내내 읊조리던 성구(聖句)다. ‘감히’ 축복을 원하기보다, 신의 천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당시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 벽화의 바로 밑에는 천사 마네킹 21개가 늘어서 있다. 보통 예수를 에워싼 천사는 21이란 숫자로 표현된다. 모두 흰 드레스 차림이다. 조명이 아래에서 위로 펼쳐지기 때문에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1950년대 스페인 산세바스찬에서 활동한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날개가 없는 천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드레스의 재료인 실크가 날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예수 벽화 바로 밑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천사 마네킹 21개가 늘어서 있다.
예수 벽화 바로 밑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천사 마네킹 21개가 늘어서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벽에 ‘천국의 의복전’ 안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5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벽에 ‘천국의 의복전’ 안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5월 10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다.

305호실의 주역

305호실 중간에 들어선 두 개의 작품은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이다. 곳곳에 들어선 신부용 결혼예복도 눈길을 끌지만, 명품 브랜드인 레드 발렌티노의 붉은색 이브닝 드레스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이브닝 정장이 특별전의 주역이다. 먼저 발렌티노의 이브닝 드레스를 보자. 긴 머리카락과 심하게 노출된 여성의 가슴, 붉은색 드레스가 인상 깊다. 잠자기 직전에 입는 편하고도 가벼운 옷이란다. 그렇지만 잠자기 전에 붉은색 옷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체 분위기를 조합해보면, 드레스의 주인이 막달라 마리아란 생각이 들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참회와 헌신의 대명사다. 성화에서 보면, 눈물과 함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거의 반라로 기도하는 모습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제에서 보듯,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묘사한 중세의 상식은 일방적 편견일지 모른다. 부활한 예수를 가장 먼저 만났던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세의 상식이 의문시된다. 드레스가 붉은색으로 표현된 것은, 예수를 향한 막달라 마리아의 일편단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다르게 보인다. 홍등가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뭔가 건강하지 못한 왜곡이 느껴진다. 모두 주변에 몰려들어 사진 찍기에 열심이지만,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예수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가슴을 노출한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의구심부터 든다. 이를 종교적 상상력에 기초한 예술이자 아름다움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디오르의 이브닝 정장은 패션쇼에서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작품으로 느껴진다. 재료 하나하나에 새겨진 정성이 피부에 와닿는다. 레드카펫 행사 때 입고 온 모델들의 의상 가운데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성스러운 치장이 깃들었다. 미사 때 입는 교황의 성의(聖衣)를 염두에 두고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었다. 가톨릭의 상징인 하트형 모자도 인상 깊다. 그러나 가까이서 볼수록 이 역시 찜찜하다. 성의를 입은 마네킹의 정체 때문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기 어려운 모습이다. 워낙 옷이 두껍기 때문에 가슴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허리가 가늘다는 점에서 여성처럼 느껴지지만, 헤어스타일이나 얼굴의 모습은 남성이다. 자세히 살펴본 뒤 내린 필자의 결론은 중성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 교황 성의의 주인이다.

남성지상주의, 페미니즘, 동성애, 양성애 문제와 관련해 필자는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사회적 차원의 일률적 대응보다 개인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지도, 엉망이지도 않다. 무책임하다고 말하겠지만, 필자의 관심을 끄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세상에 넘치고 넘친다. 성의의 주인이 반드시 남성이어야만 하고, 중성이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여운은 남는다. 신의 관점이다. 과연 예수는 그같은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간이 흘러 언젠가 나타날 현실일 수는 있겠지만, 21세기 현 시점에서 예수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예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세상의 흐름이 ‘교황의 성의를 빼닮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중성 모델’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거의 반년 만에 들러 발견한, 메트의 작은 변화도 그 증거다. 전에 없던 새로운 화장실이다. 남성 여성 구별이 없는 ‘올 젠더(All Gender)’라는 타이틀의 화장실이 등장했다. ‘가족용’이란 말도 함께 붙어 있지만, 특히 양성을 고려한 화장실이라 볼 수 있다. 아예 후진국 스타일의 남녀공용 화장실이라면 이해하기 쉽다. 남녀가 뒤엉킨 올 젠더 화장실 행렬은 ‘작은’ 문화적 충격으로 와닿는다. 국제공항에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필요하듯, 공공장소에서의 올 젠더 화장실 설치도 곧 의무화될 것이다. 이력서에서 고향·학력·나이 기재란이 사라지듯, 성별 삭제나 무시 현상도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는 그같은 세상의 흐름을 어떻게 지켜볼까?

‘천국의 의복전’에는 디자이너들의 작품뿐 아니라 로마 바티칸에서 공수되어온 교황의 성의, 모자, 장신구들도 전시돼 있다.
‘천국의 의복전’에는 디자이너들의 작품뿐 아니라 로마 바티칸에서 공수되어온 교황의 성의, 모자, 장신구들도 전시돼 있다.

聖으로 화장한 俗의 화신

특별전은 305호 주변만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 상설관 주변의 980호와, 뉴욕 교외에 있는 메트 야외전시장에서도 열리고 있다. 주 무대 격인 305호 관람을 마친 뒤 980호로 향했다. 980호는 로마 바티칸에서 공수되어온 교황의 진짜 성의와 모자, 장신구들이 전시돼 있다. 305호 전시관에 비하면, 관람객의 수가 극히 드물다. 교황의 성의와 장신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이탈리아 시에나(Siena)에서 접했던 성 프란체스코의 누더기 성의와 전혀 다르다. 거의 금으로 도배를 한 느낌이다. 초기 교회는 ‘성의=청빈과 검소의 상징’으로 풀이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갔다. 천국행 티켓을 팔던 중세 교황의 모자와 망토, 장신구는 사치의 극단으로 치닫는다.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을 신에게 바치는 심정으로 최고급 성의를 입었다고 말할 듯하다. 하늘의 신은 과연 그같은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신에 대한 예의와 찬미가 아니라 속세의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바티칸의 레드카펫’쯤으로 해석하지 않았을까? 종교혁명 이전의 바티칸은 성(聖)으로 화장을 한 속(俗)의 화신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305호의 중성 교황과, 붉은 드레스 마리아에서 느껴지던 씁쓸함이 980호 바티칸 특별전에서도 느껴진다.

그러나 고맙게도 토요일 밤에 보낸 3시간의 의미를 되새겨줄 ‘등불’이 메트를 떠나기 직전 나타났다. 구석 작은 공간에 들어선 성의·신발·모자 전시관이다. 한눈에 봐도 따뜻한 영혼이 느껴진다. 오래 쓸 수 있는 기능성에 충실한 성구(聖具)라고나 할까? 간단 소박하지만, 결코 싸구려라는 느낌은 안 든다. 누구의 물건인지 살펴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축포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구의 주인공이다. 역대 교황사를 통틀어 전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이다. 한국도 두 번이나 방문했던 교황으로, 1984년 방문 당시 공항 아스팔트에 입을 맞추며 “순교자의 땅”이라 외친 장면은 기억에도 선하다.

바티칸이 속세의 패션 특별전에 등장한 것은 속세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천박한 세상을 통해 그 반대편의 성스러움을 보라는 것이 패션쇼에 내려온 이유일 것이다. 황금빛 성의와 무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구는 그같은 메시지의 작은 단초다. 빛과 그림자가 그러하듯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일지 모른다. 어디를 향할지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를 뿐이다. 뉴욕 메트 특별전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확인, 재점검할 수 있는 작은 실험공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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