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벌가의 이른바 갑질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타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아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이러한 비극은 비단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으로 인해 망가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나 권력을 마다하기는커녕 변함없이 갈망한다. 도대체 권력이 뭐길래 이러는 것일까. 최신의 뇌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바로 권력의 그런 속성을 집중적으로 파헤쳐본 것이 아일랜드의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67)의 ‘승자효과’(The Winner Effect·2012)다. 이 책은 우리말로는 ‘승자의 뇌’(2013)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승자효과’란 한번 이겨본 개체는 그 다음 시합에서도 이길 확률이 높다는 생물학적 개념이다. 복싱 프로모터인 돈 킹은 3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마이크 타이슨을 두 차례나 약한 상대와 맞붙여 무난히 승리를 거두게 했다. 그리고 나서 챔피언과 대결시켰다. 결과는 타이슨의 승리였다. 이런 경우가 승자효과를 적절히 활용한 전형적 사례다.

승자효과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을까. 아침에 주식거래인들을 상대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검사해 본 결과 그 수치가 높은 사람이 그날 높은 수익을 올렸다. 테스토스테론은 사람을 모험적이고 공격적으로 자극하는 남성호르몬이다. 그런데 시합에서 승리한 사람이나 동물에게 바로 이 호르몬 수치가 크게 향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말미암아 승자는 다음 시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자효과는 단순히 시합 직전의 마음가짐이나 호르몬 상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쥐를 상대로 승자효과가 작동되는 동안 뇌의 핵심 부분에서 남성호르몬 수용체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해부학적으로 밝혀냈다. 이 수용체가 많을수록 남성호르몬이 뇌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가 그만큼 증대된다. 이처럼 승자효과는 뇌 속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흔히 우리는 승자가 타고나거나, 또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승자효과 이론은 어떠한 결정론도 거부한다. 이 이론은 하나의 승리가 발판이 되어 사다리의 칸 수를 점점 늘려가는 역동적 과정을 주목한다. 사다리가 길어질수록 승자효과도 증폭된다. 그 과정에서 승자의 뇌는 또 다른 승리에 적합하도록 화학적·물리적으로 재구조화된다.

그렇게 승리를 되풀이하면 누구나 불패불멸의 존재가 될까.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승리의 지표인 권력의 속성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권력은 자신과 주변을 좀 더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우리는 권력을 추구한다. 하지만 거기에 취하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기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또한 자신이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역사적으로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생명체는 진화에 필요한 일, 즉 먹고 마시고 섹스를 할 때 짜릿한 흥분으로 보상을 받는다. 권력, 마약, 도박, 알코올 등도 마찬가지다. 이때 뇌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물질이 도파민이다. 그런데 승리를 통해 테스토스테론이 증대될 때 도파민 분비도 촉진된다. 이처럼 권력의 쾌감과 섹스·마약·알코올 등의 쾌감은 동일한 생화학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갑질의 심리 구조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코올중독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저런 관습의 규제를 받거나 자신만의 기호(嗜好)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런 구속들이 사라지고 그저 취하려고 많은 양을 마시면 중독이 된다. 이런 현상은 권력에도 똑같이 일어난다. 권력도 규제를 받고 절차에 따라 행사된다면 중독현상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은 어떤 충격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강렬한 권력욕을 가진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현실적으로 권력은 우리의 뇌를 변화시켜 우리를 더 용감하고 더 집중력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장차 훨씬 더 많은 성공을 거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따라서 권력욕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규제와 감시를 벗어나 폭주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권력은 본질적으로 취약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단순한 실험조건에서 약간의 권력을 행사하는 역할만 부여해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그는 사람들을 인격체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이 오로지 개인적 목적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클랜드는 권력을 p권력욕(오로지 개인적 목적을 위한 권력욕)과 s권력욕(집단이나 사회를 위한 목적에 초점을 맞춘 권력욕)으로 구분했다. 실험 결과 p권력욕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욕구를 독단적으로 충족하려고 했다. 반면 s권력욕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타주의적 경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권력중독 기제 마약중독과 같다

어떤 동일한 승리를 상상해보라고 요구받았을 경우 주로 p권력욕을 가진 사람은 p·s권력욕을 균형적으로 가진 사람보다 남성호르몬을 두 배나 더 많이 분비했다. 반면 두 권력욕을 균형적으로 가진 사람은 의미 없는 경쟁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다. 이런 사실은 s권력욕이 p권력욕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보여준다.

권력이 건강하게 작동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권력의 폭주를 감시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다. 또한 권력자는 항상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지금 권력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엄격한 감시와 성찰을 통해 우리는 권력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순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우리의 뇌는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

오남용된 권력은 주변 사람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파탄으로 몰아넣는다. 놀랍게도 권력중독을 야기하는 뇌 속의 생화학적 기제는 섹스, 마약, 알코올 등의 중독과 동일하다. 반면 바르게 사용된 권력은 도전적 과제를 해결하며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떻게 행사되느냐에 따라 권력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승자효과’는 승리의 결과물인 권력에 환한 빛을 비추어 그 속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이로부터 우리는 여러 가지 유익한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흔히 권력은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크든 작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지렁이의 ‘하찮은’ 권력도 권력의 일반적 속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는 권력을 바르게 행사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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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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