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한국에서 처음 식당에 갔던 때를 잊지 못한다. 그때는 2005년으로, 내가 처음 아시아 대륙을 밟은 때이기도 했었다. 내 평생 첫 장거리 비행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한국인 친구들에 이끌려 서울 사당동 인근의 횟집으로 갔다. 한국 친구들은 공항에서 나를 픽업했는데 내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횟집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이 유럽이나 미국의 식당에서 크나큰 문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미국이나 유럽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들은 서구인들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보아왔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는 미국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직접 목격했고 미국인들이 군용식량으로 어떤 음식을 가져왔는지도 지켜봤다. 1950년대 미국인들이 갖고 온 통조림 고기와 밀가루는 부대찌개나 면요리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한국의 현대적 요리로 자리 잡아 갔다. 내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10여년 전에도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미국 스타일의 식당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한국인이 서구 음식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한국 혹은 아시아 음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영국에서도 대중적이던 너무나 서구화되어버린 중국 음식이 내가 아는 동양 음식의 전부였다. 나는 런던에서 한국 유학생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한국 음식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 유학생들이 권하던 소주와 김치를 먹어보기도 했었다. 어느날 그들은 닭볶음탕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런던의 부엌 식탁에서 맛본 한국 음식들은 영국산 재료로 만든 것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런 한국 음식을 포크와 나이프로 먹었던 것 같다. 맛과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내가 1년쯤 뒤에 사당동 횟집에서 경험하게 될 진짜 한국 음식과는 한 100만마일쯤 떨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14년 전 사당동 횟집에 도착했을 때 다른 나라가 아니라 마치 다른 별에 온 듯한 기분이 든 이유다. 모든 것이 정말 낯설었다. 우선 서양인들은 어떤 이유로든 맨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경우가 드물다.(요가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먹기 위해 맨바닥에 바로 앉는다는 생각은 우리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이다.

그날 정말로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스테인리스 잔에 따라 먹는 물과 식사에 앞서 일회용 물휴지로 손을 닦는 일부터 이상했다. 주요리가 나오기 전에 작은 접시들에 담겨 나오던 반찬들은 또 어떤가. 게다가 이 반찬을 무료로 리필해주기까지 했다. 금속 젓가락과 스푼으로 음식을 먹는 일, 모든 사람들이 한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나눠 먹는 것도 이상했고, 날생선을 먹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매운탕, 식사 시간 내내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돌솥이나 뚝배기에 담겨 나온 음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순서의 제일 마지막에 탄수화물(밥)을 먹는 것도 무척 이상했다.

그리고 신기한 맛들이 있었다. 짠 간장과 매운 고추, 생마늘, 풍미가 강한 참기름, 날깻잎에서 나는 아니스 향, 발효된 채소에서 나는 깊은 맛 등등이 나에게는 정말 생경했다. 이런 맛들이 아주 미묘한 날생선의 맛과 함께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지하세계에서 일생을 살아오다가 갑자기 지상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과 마주친 개미가 된 느낌이었다.

요즘은 한국에 온 서양인들이 2005년의 내가 겪었던 경험을 똑같이 하기가 어려워졌다. 한국 음식은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이제 꽤 유행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한국 음식이 주류가 된 곳들도 있다. 많은 서양인이 이제 한 번쯤은 김치를 경험해보았거나 ‘한국 바비큐 식당’으로 부르는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해보았을 것이다. 눈물이 쏙 빠지게 매운 한국의 컵라면은 젊은 학생들이 서로에게 도전을 부추기거나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기 위해 먹어보는 음식이 되었다. 요식업계의 유행을 주도하려는 서양의 셰프들 중에는 퓨전 스타일의 서구 요리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첨가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음식의 비밀, 소금

하지만 한국 음식의 한가운데로 깊이 빠져버린 나의 경험은 한반도의 음식문화가 내가 겪은 서구유럽의 음식문화와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이 내가 한국 맛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12년간 한국에 살면서 많은 시간을 음식저널리스트로 일했고 한국 음식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이곳에서 나의 맛기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남은 인생을 한국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국의 독특한 음식들 전부를 맛보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도 들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이미 많이 맛보았지만 말이다. 평생 한국 음식을 탐구해온 토종 한국인도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한국 음식을 다 맛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음식이 서구 음식과 구별되는 특징은 짠맛, 매운맛, 그리고 다양성 세 가지라고 본다.

여행이 가르쳐주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지리가 그 지역 음식에 끼치는 역할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지리는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데 아마 그것이 음식문화가 서로 다른 이유일 것이다. 내 고향 영국은 녹색 풀로 뒤덮인 완만한 구릉지대 그리고 진흙이 가득한 들판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다 바닷가에 이르면 갑자기 가파른 절벽이 등장한다. 이 절벽들은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씻겨져왔다. 이런 토양은 밀과 감자를 키우기에 제격이다. 또 소와 양을 기르기에도 좋고 차가운 바다를 좋아하는 물고기를 잡기에도 제격이다. 이것이 영국인들이 엄청난 양의 양고기와 빵, 치즈, 감자와 대구를 소비하는 이유이다. 영국에서 소금은 중요하지 않은, 그저 선택적인 양념일 뿐이다. 밍밍한 음식에 약간의 맛을 보태기 위해 집어넣는 것이다. 심지어 소금이 아예 없는 가정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해안선은 많이 다르다. 많은 지역이 뻘인데 여름에는 따뜻하고, 조개와 게와 낙지들로 가득하다. 많은 갯벌생물들은 계절 먹거리인데 꼬막이 대표적이다. 이런 먹거리는 사시사철 구할 수 없다. 한국의 가파른 바위산들은 밀이나 감자를 키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봄이나 초여름 나물을 캐러 돌아다니기에는 제격이다. 나물과 해산물은 일 년 중 딱 한 번만 캘 수 있기 때문에 과거 한국인들은 이런 신선한 식재료를 어떻게 대량으로 보관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만 했다.

그들이 발견한 답이 바로 소금이었다. 소금은 한국의 음식을 특징 짓는 요소로, 한국 음식에서 소금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연이나 기이한 것이 아니다. 염장은 생존기술이었다. 소금이 없었으면 한국 음식문화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취재차 많은 간장, 고추장 명인들은 만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나이보다 더 오래 묵힌 간장을 나에게 자랑하곤 했다. 장의 오랜 수명을 보장하는 것은 약간의 노하우와 규칙적인 관리, 그리고 바로 많은 양의 소금이다. 냉장하지 않고도 소금을 사용해서 음식을 이처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한국인을 특별하게 만들고 한식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은 양념이다. 내가 눈을 감고 한국 음식을 떠올리면 붉은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생각난다. 냄비의 가장자리는 잘게 자른 붉은 색종이 조각처럼 고춧가루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고춧가루 한 움큼과 함께 몇 주일씩 밀폐용기에 담겨 있다가 나온 벌건 야채들이 담긴 하얀색 접시들도 떠오른다.

영국에도 매운 조미료들이 있긴 하다. 후추나 강한 머스터드를 음식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맛으로, 매운맛을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나 선호하는 맛이다. 한국에서는 매운 음식이 마치 공장에서 이미 세팅돼 나오는 것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안 맵게 해주세요”는 살기 위해 배워야

만약 당신이 예민한 위를 가진 서양인으로 한국에 살고 있다면 가장 유용한 한 문장을 배워야 한다. “안 맵게 해주세요.” 매운 양념은 중독성이 있고 많은 요리들에 풍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나는 매운 양념이 종종 은은한 맛을 가린다는 것도 발견했다. 고춧가루가 배어 있는 배추김치를 먹으면 활력이 나지만 나는 백김치의 신선하고 은근한 맛을 더 좋아한다. 탕 요리의 조리법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개 ‘빨간 것’ 대신 지리를 주문한다. 지리가 메뉴에 있다면 말이다. 서울 충무로 부산복집에서 맛볼 수 있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복지리는 찬 날씨에는 진짜 마법의 국물과도 같다.

한국 음식의 짜고 매운 맛과 사랑에 빠지게 된 만큼이나 나는 이 나라 음식들의 다양함에 경탄한다. 아무리 유별난 입맛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한국에서라면 독특한 맛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은 고기를 사랑하고 비린 해산물을 싫어한다. 흰살생선과 연어, 냉동새우를 제외하고 영국에서 해산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는 정반대다. 나는 붉은 살코기를 싫어하고 비린맛을 좋아한다. 한국 음식들은 나의 별난 입맛과 내 나라 사람들의 평범한 입맛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다.(불고기와 냉면을 좋아하는 일반적인 입맛 말이다.)

조금만 둘러봐도 당신이 원하는 재료를 당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요리해줄 곳을 이 나라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다. 나에게는 부산 자갈치시장 부둣가 좌판에서 파는 곰장어 소금구이나 목포의 양파김치, 제주도의 갈치구이, 상주 곶감, 제피 한 숟가락을 듬뿍 넣은 추어탕 같은 음식들이 그렇다.

2005년으로 돌아가 한국 여행에서 제일 즐거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음식”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12년간 살아온 나에게 지금 같은 질문을, 즉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역시 그때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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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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