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허머스키친’의 후무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광화문 ‘허머스키친’의 후무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찍어 먹는 소스인가 하다가도 완성된 요리마냥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 먹지” 고민하게 될 법하다. 곱게 갈아진 노란색 콩 위에 올리브오일이 듬뿍 올려져 있는 이 음식의 이름은 후무스(Hummus), 중동에서 온 음식이다. 들어간 재료는 간단하다. 이름도 낯선 병아리콩(Chickpea)과 마늘, 레몬즙을 기본으로 타히니(참깨페이스트)와 질 좋은 올리브오일이 재료다.

편의상 후무스가 ‘중동’ 음식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집트를 포함한 레반트(Levant) 지역과 터키, 그리스 일부 지역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다. 레반트는 세계지도에서 볼 때 터키와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부터 남쪽으로 이집트까지 지중해 동쪽을 둘러싼 나라를 가리킨다. 이 지역에서 후무스는 마치 김치 같은 존재다. ‘중동 음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음식이 후무스다. 밥에 곁들여 먹는 반찬일 뿐 하나의 독립된 요리는 아닌 김치처럼 후무스도 빵에 발라 먹거나 다른 음식에 소스로 넣어 먹는다.

또 김치처럼 후무스도 언제나 이 지역 미식가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새우젓을 넣느냐 멸치액젓을 넣느냐를 두고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후무스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셰프 데이비드 리보비츠에 따르면 “후무스를 제2의 종교로 삼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누가 최고의 후무스를 만들어내는가를 판별하는 일이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콩비지 같은 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병아리콩을 써야 하고, 잘 삶아야 하며, 누구나 인정할 만한 올리브유에 담아 올바르게 저장해야 한다. ‘잘’ 삶고 ‘올바르게’ 저장하는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 정답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피타(Pita 혹은 Pitta)빵이라고 부르는 납작한 발효빵은 그냥 떼어 먹기도 하고 재료를 싸서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 지중해와 중동 지역의 밥 같은 음식이다. 김치 같은 후무스를 밥 같은 피타빵에 발라 먹는 게 제일 간편하게 후무스를 즐기는 방법이다. 더러는 샌드위치를 만들 때 소스처럼 쓰기도 한다. 후무스의 사촌 같은 음식이 팔라펠(Falafel)인데 병아리콩을 갈아 동그랗게 말아 튀긴 것이다. 팔라펠이나 치킨 요리, 생선 요리에 후무스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맛만 두고 보자면 한국 사람들도 쉽게 즐겨 먹을 만한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나지 않는 병아리콩이라는 식재료가 낯설어 그렇지 콩을 마늘과 함께 갈아 만든 후무스를 맛보고 ‘콩비지 같다’고 평가하는 기성세대도 많다. 질 좋은 올리브오일을 듬뿍 담아 빵에 발라 먹는다면 금세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을 정도다.

병아리콩과 올리브오일의 하모니

레반트 지역에서야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온 음식이지만 사실 후무스는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주류 식탁에서 언제나 소외받아왔다. 프랑스의 미식 전문 기자 프랑수아 레지스 고드리가 시리아 출신의 문화 전문가 파루크 마르담 베의 말을 빌려 인용한 문구가 있다. “병아리콩이 문학작품이나 신화에서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프랑스에서 병아리콩은 마른콩류 중 가장 관심도가 낮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소외된 식재료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민자가 많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한동안 병아리콩으로 만든 음식은 이민자나 먹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동 음식, 특히 후무스는 최근 서구 사회에서 대안 음식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인구의 3~4%가 채식주의자다. 미국 인구가 2억5000만명이니 미국에 사는 채식주의자만 해도 800만~900만명이 된다. 건강상의 문제만큼이나 이념적인 이유, 즉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기업화된 식단이 싫어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채식주의자 중에는 이국적인 식단에서 정답을 찾아내려는 경우도 많다. 한식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도 그런 흐름 중 하나다.

후무스는 미국과 프랑스의 채식주의자들이 발견해낸 대안이다. 최근 몇십 년 사이 미국과 유럽으로 이주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이민자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중동 음식 유행의 한복판에 후무스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후무스를 소개하는 요리책을 검색해보면 건강한(healthy), 대안적인(alternative), 채식주의자(vegetarian) 같은 단어가 따라온다.

우리나라에서도 후무스는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맨 처음 후무스를 접한 것은 서울 광화문 한복판 D타워 4층에 번듯하게 자리 잡은 허머스키친(02-2251-8400)이 이태원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이태원에서 광화문으로 옮긴 지 대략 3년쯤 됐다. 허머스키친은, 베트남 요리 전문점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고 태국 요리나 인도 커리도 흔해 멕시코 요리쯤은 먹어야 ‘오늘 독특한 음식 먹었다’고 말하던 시기에도 매우 드문 중동 음식 전문점이었다.

허머스키친은 중동 음식을 그저 먹어볼 만한 낯선 음식으로 알리지 않았다. 당시에 한창 열기를 더하던 웰빙 바람을 타고 대안적이고 이국적인 식단으로 중동 음식을 소개했다. 서울 광화문 D타워나 여의도 IFC몰, 삼성동 코엑스몰 같은 유명 쇼핑몰에 잇따라 입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강한 향신료, 낯선 식감을 강조하기보다 채식주의자가 즐겨 먹는 건강식품으로 후무스와 팔라펠 같은 메뉴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후무스는 중동의 김치가 아니라 채식 식단의 대표 메뉴가 됐다. 서울 강남의 도산공원 인근 음식점 사뜨바(070-4193-9144)는 유제품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들인 ‘비건(vegan)’을 위한 곳이다. 이곳의 후무스는 다양한 재료와 어울려 샐러드처럼 제공되는데 후무스 자체로도 맛이 있다. 서울의 대표적 비건 레스토랑 중 하나인 이태원의 플랜트(02-749-1981)에서도 후무스 샐러드를 먹어볼 수 있다. 병아리콩, 단호박 같은 야채가 곁들여 나오기 때문에 샐러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집에서 직접 후무스를 만들어 먹는 사람도 많다. 후무스 자체가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 아닌 데다 한 번 만들어두면 일주일은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식사를 하기에 좋다. 채식 요리책에서 쉽게 후무스 레시피를 구할 수 있다. 간혹 프랑스 요리책에서 후무스 레시피가 발견되기도 한다. 후무스는 프랑스로 이주한 북아프리카·중동 이민자들의 낡은 식탁에서 발견해낸 ‘서구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후무스 만들기

모든 요리가 그렇지만 맛있는 후무스를 위해서는 좋은 재료가 필요하다. 병아리콩은 인도, 파키스탄에서 주로 생산되고 남아메리카, 호주, 중동에서도 자란다. 대형마트에 가면 아메리카 대륙이나 인도에서 대량생산된 병아리콩을 주로 판다. 셰프 데이비드 리보비츠가 이스라엘에서 직접 확인한 바로는 불가리아산 병아리콩이 최고급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올리브오일은 좋은 품종으로 쓰자. 후무스를 만들 때는 반드시 후무스 위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올려야 하는데 올리브오일의 풍미와 병아리콩이 섞이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정통 후무스에는 타히니라는 참깨페이스트의 일종이 들어가는데 중동 식재료 전문점에서 구해야 하는 만큼 그냥 참깨로 대신해도 된다.

재료: 마른 병아리콩 80g, 병아리콩 삶은 물 1/2컵, 참깨·레몬즙 1Ts, 다진마늘 1ts, 올리브오일

1) 병아리콩을 하룻밤 불려 삶고 삶은 물은 따로 덜어둔다. 껍질을 벗길 필요는 없다.

2) 나머지 재료와 함께 믹서에 넣고 간다. 농도는 삶은 물로 조절한다. 타히니를 이용할 때는 50g 정도 사용하고 베이킹소다를 약간 넣는다.

3) 식탁에 낼 때는 후무스 위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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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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