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 애플망고로 만든 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 ⓒphoto 신라호텔
제주산 애플망고로 만든 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 ⓒphoto 신라호텔

‘애망빙’의 계절이다. 여름이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의례적으로 ‘애망빙’ 사진이 올라온다. ‘애플망고빙수’의 약자다. 미식을 즐기는 이들 사이엔 여름이면 으레 한 번쯤은 먹고 넘어가야 할 계절별미가 돼버렸다. 젊은 여성들의 보양식이라고 할까. 애망빙의 고향은 제주도이고, 성지는 서울 남산자락이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제주신라호텔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서울신라호텔 1층 라운지 더 라이브러리(The Library)에서 대중과 만난다. 기간한정으로 판매한다. 매년 망고 당도가 가장 올라가는 기간을 골라 판매하는데 올해 제주신라에선 3월부터, 서울신라에선 6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첫 등장한 지 올해로 11년, 이번 여름 기준 한 그릇에 5만4000원이다. 가격만 얼핏 보면 그들만의 ‘하이엔드’ 음식으로 볼 수도 있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그릇에 담긴 의미가 만만치 않다.

애플망고의 공식 품종명은 어윈(Irwin)이다. 껍질이 사과처럼 빨개 흔히 애플망고라 부른다. 사과와 접목하거나 한 건 아니다. 망고 중에선 비교적 나무의 키가 작다. 하우스에서 키우기에 적합하다. 한국에선 제주도가 주산지다. 평균 온도가 높고 일조량이 많아서다.

제주산 애플망고로 디저트를 만들자고 제안한 건 제주신라 요리사들이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자재를 발굴하던 참이었다. 2007년 제주신라에 ‘애망빙’이 첫 등장했다. 한 번, 두 번 요청이 이어졌다. 서울에서도 애망빙을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제주에서 빙수 맛을 본 이들이었다. 3년 후인 2011년 여름, 애망빙이 바다를 건넜다. 서울신라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제주 농가에도 의미 있는 육지 상륙이었다. 이유를 알려면 제주의 열대과일 역사를 봐야 한다.

애망빙 먹으려 호텔 묵는 일본인

1980년대 초 제주도 농가들은 바나나를 들여왔다.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2500여 농가가 재배에 나섰다. 1982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주산 바나나가 유통됐다. 한 해 3000t, 감귤과 함께 제주도 특산물로 자리 잡는 듯했다. 1991년 바나나가 수입자유화됐다. 값싼 외국산 바나나가 쏟아져 들어왔다. 국산 바나나의 절반 가격이었다. 농민들은 바나나 재배를 포기했다. 결국 제주산 바나나는 식탁에서 사라졌다. 재배를 계속해온 농가가 요즘도 가끔 천연기념물처럼 언론에 소개될 정도다. 제주 농가들이 ‘포스트 바나나’로 택한 것이 바로 애플망고다. 대만에서 묘목을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다. 애플망고 재배 농가는 점점 늘고 있다. 최근엔 통영이나 여수 등 일부 남부지방에서도 재배를 시작했다. 망고뿐 아니라 파파야, 구아바 등 열대과일 재배가 전반적으로 늘고 있다. 친환경 재배로 차별화하며 제주산 바나나도 다시 시장에 등장했다. 농촌진흥청은 아열대작물 재배면적이 2020년엔 1000㏊를 넘어설 걸로 예상한다. 국산 열대과일의 수요와 공급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은 경쟁적이다. 애플망고만 해도 대만과 페루산, 최근엔 브라질산도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산은 배에 오르기 전 해충을 없애기 위해 ‘증열처리’를 한다. 과일에 고온의 수증기를 씌운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과일 특유의 향기가 사라진다. 물러지기도 한다. 국내산 애플망고는 나무에서 충분히 익힌 다음 따지만, 외국산은 채 익지 않았을 때 수확해 후숙한다. 국산과 외국산을 단순 비교하기 힘든 이유다.

올해 초 애망빙이 없어질 뻔했다. 판매량 탓은 아니었다. 올여름에도 서울신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평일 기준 150~200그릇, 주말 200~250그릇이 팔리고 있다니 말이다. 문제는 원가였다. 애플망고 자체가 저렴한 과일이 아니다. 손이 많이 가는 데다 키우는 데 돈도 많이 든다. 과실이 무거워지면 가지가 꺾이지 않게 집게로 일일이 고정해야 한다. 유류비도 많이 들어간다. 하우스 안을 연중 내내 열대기후처럼 데우기 위해서다. 20~25도가 적정온도다. 3300㎡(1000평)의 하우스를 유지하려면 면세유를 이용한다 해도 겨울 동안 연료비가 매달 1000여만원이 든다고 한다.

흔히 외식업계에서 ‘333’법칙을 말한다. 음식 가격에서 30%는 식재료비, 30%는 인건비, 30%는 임대료, 나머지 10%가 수익이란 얘기다. 신라호텔 애망빙 한 그릇엔 망고 한 개 반이 들어간다. 팥과 우유, 아이스크림은 별도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검색해 보면 제주산 애플망고는 특상품 기준으로 1수에 2만원이 넘는다. 호텔 같은 곳은 아무래도 대량 구매를 하기에 구입단가가 그보단 낮겠지만, 여전히 만만한 식재료비는 아니겠다. 참고로 애플망고 수급 방법은 이렇다. 매해 호텔 구매팀 총괄자가 제주도 농장을 방문해 당도 테스트를 한다. 최소한 14브릭스는 넘어야 한다. 브릭스는 당도를 표시하는 단위다. 식품에서 추출한 시료 100g 속에 당도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측정해 표기한다. 테스트 후 그해의 계약 농가를 정한다.

더군다나 올해는 애플망고 가격이 작년보다 올랐다. 판매가격 인상을 검토해야 할 상황이었다. 여름 디저트를 기획하면서 아예 없애자는 얘기도 나왔다. 애망빙이 올해부터 없어질지 모른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자 직원들이 나섰다. ‘애플망고빙수 출시를 기다리는 고객을 저버릴 수 없다’ ‘애플망고의 효시로 20~30대 여성 고객들에게 일종의 성지 같은 곳으로 알려지면서 호텔 빙수를 선도해왔는데 판매를 중단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가격이 비싸고 이익이 남지 않더라도 시그니처 메뉴를 계속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 등등.

결국 해법은 가격연동제

‘망존심’. 신라호텔 직원들 사이에 쓰이는 말이다. 신라호텔표 망고빙수에 갖고 있는 자존심, 자부심을 뜻한다. 직원들의 망존심과 고객들의 기대를 고려해 결론이 나왔다. ‘가격연동제’다. 망고 가격과 빙수 가격을 연동하기로 결정했다. 제주신라에선 지난 3월 말부터 애망빙을 5만7000원에 판매하다가 4월 20일부터는 5만2000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본격적인 출하 시즌엔 망고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서울신라에선 6월 1일부터 5만4000원에 판매 중이다. 제주와 서울 두 곳 모두 8월 말까지만 판매한다.

에피소드도 쌓여간다. 고객게시판엔 매년 여름이 오기 전 같은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2012년 여름이 첫 문의였다. ‘작년에 맛본 더 라이브러리의 애플망고빙수를 잊지 못합니다. 올해 이걸 먹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언제 판매가 시작됩니까?’ 일본인 투숙객이었다.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출시 날짜에 맞춰 신라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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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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