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편론이 뜨겁다. 그런데 이런 재정문제만큼 투명한 세상사도 드물다. 왜냐하면 숫자를 통해 정확히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문제를 고치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이미 고갈된 공무원연금을 세금으로 메워주면서 30년 후 국민연금의 고갈에 대비하자고 하면 누가 선뜻 승복하겠나.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담대한 리더십이다. 지도자는 당당하게 실상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진지하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하여 내키지는 않아도 받아들여야겠구나 하는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더구나 지금 우리에게는 연금문제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국가적 과제가 도처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우리가 반드시 곱씹어보아야 할 지도자가 있다. 바로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다. 그는 국가를 살리기 위해 지지층이 반대하는 개혁도 불사했다. 이로 인해 자신은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독일은 유럽의 강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이야기는 그의 자서전 ‘결단: 정치에서의 나의 삶’(Entscheidungen: Mein Leben in der Politik·2006)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우리말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2017)으로 소개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슈뢰더가 태어나고 6개월 만에 전사했다. 당연히 그는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꿈은 오로지 ‘어엿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했다. ‘한쪽 부모를 여읜’ 사람에게 주는 정부 지원금이 큰 힘이 되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며 사민당의 청년당원으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며 정당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갔다. 1980년 연방의원에 당선되면서 전업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1986년 한 차례 패배를 딛고 1990년 니더작센주 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사민당이 승리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녹색당과 적록(赤綠)연정을 구축해 주정부를 이끌었다. 이것은 나중에 적록연정으로 연방정부를 이끄는 밑바탕이 되었다.

1998년 연방선거에서 그가 대표로 나선 사민당은 콜 총리의 기민기사연합을 물리치고 녹색당과 적록연정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서방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하여 러시아나 중국과도 적극적인 관계를 모색했다. 그는 미국의 대테러전쟁 원칙에는 적극 찬성했지만, 이라크 침공 등 명분 없는 군사행동에는 프랑스나 러시아와 연대하여 단호하게 반대했다. 또한 전쟁 중 독일 기업에서 강제노역한 동유럽인들에 대한 배상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최대 업적은 과감한 국정개혁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의 통일은 예기치 못한 지진과도 같이 불쑥 찾아왔다”. 그가 집권했을 때 “통일에 따른 단기적 경제 호황은 소진되었으나, 통일을 이룬 국가답게 성숙한 제도를 갖춘 복지국가로서 연금과 실업수당, 건강보험의 잠재적 신규 수급자를 1400만명이나 더 떠안아야 했다.”

실제로 독일은 당시 실업률이 치솟았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한 국가 재정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었다. ‘유럽의 병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었다. 전통적으로 사민당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연금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금기를 타파하는 과감한 개혁이 절실하다고 확신했다. 2002년 선거에서 재집권하자마자, 그는 대대적인 개혁안을 구상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완전히 바뀐 국제적·경제적·사회적 조건하에서… 보건과 연금보험 분야 그리고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사회보장 지급액 삭감과 보험료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개인의 자기보장 강화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사회보장 시스템의 효율성 확보, 보조금 축소 그리고 감세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국가의 미래투자를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개혁안은 ‘어젠다 2010’으로 명명되어 분야별로 구체화되었다. 그중에 노동시장에 관한 것이 유명한 하르츠 개혁이다. 거기에는 정부지원금의 통폐합, 고용지원기구의 효율화, 해고조건 완화, 단체교섭권의 일부 약화, 일자리 형태의 다양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어젠다 2010’은 그밖에도 사회보장제도 축소, 세제개혁, 경제활성화 대책 등을 망라하고 있다.

‘어젠다 2010’은 무엇보다 노동자와 사회보장 수혜자들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그런 집단이 바로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다. 하지만 슈뢰더는 그런 문제를 놔두고는 독일이 전진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우선 각급 당 대회를 개최하며 당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내 일부 좌파세력이 이탈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어젠다 2010’은 당 정책으로 승인되었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 야당, 언론 등의 반대는 여전히 거셌다. 국정수행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그는 연방선거를 1년 앞당겨 2005년 9월에 실시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또한 선거 캠페인을 통해 ‘어젠다 2010’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각오를 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는 비관적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사민당이 메르켈의 기민기사연합에 15% 이상이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투표결과는 예상을 깨고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사민당 34.2%, 기민기사연합 35.2%). 양 진영은 자신이 주도하는 소연정을 통해 각각 집권을 모색했다. 그러나 대소 각 정당들의 의석분포상 소연정은 불가능했다. 결국 메르켈이 총리를 맡고 사민당이 주요직에 참여하는 대연정을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어젠다 2010’은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지만, 슈뢰더는 연방의원직을 사임하고 현실정치를 떠났다. 아쉽지만 멋진 퇴장이었다.

메르켈 역시 ‘어젠다 2010’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정적이 피를 흘려 만들어준 값진 선물이었다. 이를 통해 독일은 단시간 내에 독일병을 고치며 활력을 되찾았다. 그리하여 메르켈은 지금도 13년째 집권 중이다. 그 바탕에는 슈뢰더의 땀과 희생이 깔려 있다. 단순히 권력 차원에서 보면 슈뢰더는 패자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진정한 승자다.

나라야 골병들건 말건 지지층에 집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슈뢰더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지지층에게 희생을 호소했다. 또한 개혁안이 벽에 부딪히자, 다시 한 번 정치적 생명을 걸고 조기선거를 결단했다. 1% 차로 석패했지만, 일방적으로 불리하던 전세를 만회하며 ‘어젠다 2010’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했다. 이로써 그는 권력은 내놓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성취한 것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이 보여준 지도자의 자질은 간단하다. ‘올바른 신념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가.’ 슈뢰더야말로 이 질문에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신념에 근거해 ‘어젠다 2010’이라는 종합설계도를 그리고, 자기희생을 통해 그 실천을 담보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리더십의 빈곤에 시달려오고 있다. 과실을 거두는 것은 내가 아니라 국가라고 확신하는 슈뢰더식 리더십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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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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