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IDOL’ 티저 캡처 화면.
방탄소년단 ‘IDOL’ 티저 캡처 화면.

남성 힙합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고 있다. 지난 9월 11일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이 한·미·일 차트를 모두 석권했다고 한다.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 일본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 우리나라 공인 음악 차트인 가온차트의 8월 월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빌보드는 새 앨범과 신곡 ‘IDOL’을 소개하면서 “방탄소년단은 명백히 2018년 음악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고 극찬했다. ‘IDOL’의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 65개 국가에서 최고의 히트곡으로 사랑받는 현상을 보면 빌보드의 칭찬이 단순한 립서비스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가수로서는 처음 있는 현상이다.

이들의 인기는 공연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9월 5일에 시작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연을 앞두고 티켓 40만장이 모두 매진됐고 암표 가격은 두 배가량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표를 사지 못한 일부 팬들은 서서 보는 구역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3일 전부터 줄을 서는가 하면 텐트까지 쳐놓고 밤을 새운 사람도 부지기수다. 2017년 칠레 공연 때는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에서도 티켓을 사전 구매해 칠레행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인기는 바야흐로 비틀스를 능가하고 있다. 1960년대에 영국의 비틀스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한국의 방탄소년단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의 인기 비결 혹은 성공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니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아주 사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몇 달 전이었다. 올해 64세가 된 언니가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방탄소년단을 아느냐고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진짜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연거푸 되풀이했다. 뭐가 그렇게 “진짜 정말 대단하냐”고 되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그 이유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유명기획사 출신도 아닌데 국내뿐 아니라 미국까지 제패했다는 것. 방탄소년단의 래퍼인 RM이 유학파가 아니고 순 토종인데 외국에서 인터뷰를 할 때 현지인처럼 영어를 능숙하게 잘한다는 것. 노래가사가 마치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듯 실감난다는 것 등등 64세 된 광팬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흙수저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노래 때문이 아니라 노래 외적인 요소 때문에 팬이 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노인네가 열정도 넘치네. 어떻게 저 나이에 젊은 애들 음악에 빠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전화를 끊으려는데 언니가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런데 진짜 대단한 것은 노래를 아주 잘한다는 거야. 춤은 물론 더 끝내주고. 방탄이가 춤추고 노래하는 거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니까.” 그래서 나도 한마디 했다. “원래 우리 민족이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춰. 그 진가를 이제야 비로소 세계가 알게 된 거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즐긴 민족

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방탄소년단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노래하고 춤추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飮酒歌舞)에 아주 능해 그 율동의 역사가 자못 깊다. 주특기가 음주가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음주가무라 하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을 뜻한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과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이 쓴 역사책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종합해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음주가무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부여(夫餘)는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영고(迎鼓)라 했다. 영고는 국중대회(國中大會·한 나라의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제천행사)로,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날마다 크게 모여서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며, 행인(行人)들도 노래 부르기를 즐겨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고구려(高句麗) 백성들 또한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 안의 촌락마다 밤이 되면 ‘으레 남녀가 떼 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유희를 즐겼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큰 모임을 갖는데 그것을 동맹(東盟)이라 불렀다. 예맥(濊貊)에서는 해마다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것을 무천(舞天)이라 하였다. 삼한(三韓)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제사를 지내고 ‘주야로 술을 마시면서 비파를 타며 노래하고 춤추며’ 땅을 밟음으로 박자를 삼는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는 또 이와 같이 한다. 마한국(馬韓國)에서는 항상 5월에 파종(播種)을 마치면 곧 귀신에게 제사하고 ‘밤낮으로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땅을 밟으면서 몸을 굽혔다가 젖혔다가 하고 손발로 가락을 맞추기를 마치 탁무(鐸舞)와 같이 한다. 농사가 끝나면 또 그와 같이 한다.

이런 문헌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국가체제를 갖추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그 바탕에 음주가무를 기본으로 깔고 있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아니, 날밤을 새가면서 문명을 일으켜도 시원찮을 판에 음주가무에 절어 살다니 조상님들 너무 노셨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우리 시대에 음주가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일탈의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문란한 이미지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행락철에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뽕짝’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는 아줌마, 아저씨가 떠오르기도 하고, 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신 후 아무 데서나 토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의 음주가무는 그렇게 퇴폐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퇴폐와는 거리가 먼 신성한 의식이었다.

음주가무가 신성한 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앞글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부여, 고구려, 예맥, 삼한 등의 사람들이 언제 음주가무를 했는가에 방점을 두면서 말이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부분이다.

5세기 후반 고구려 ‘춤무덤’에 있는 벽화 ‘춤추는 사람’.
5세기 후반 고구려 ‘춤무덤’에 있는 벽화 ‘춤추는 사람’.

원시시대의 음주가무는 종합예술

이들의 음주가무는 모두 파종을 마칠 때나 수확을 끝낸 후에 행해졌다. 파종을 마칠 때는 올해 농사가 잘되도록 하늘이 보살펴달라는 기원이었고, 수확을 끝낼 때는 하늘의 도움으로 풍성한 가을걷이를 할 수 있게 해준 은혜에 대한 감사였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광란의 밤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지상의 인간들이 하늘의 신들을 위해 바치는 제천행사(祭天行事), 즉 위문공연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한 부족이나 씨족이 신비스러운 자연현상이나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나 절대자가 있다고 믿는 의식에서 출발한 행위다. 이런 믿음은 문명이 시작된 역사시대 이전에 이미 탄생했다. 그 결과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경외감이 제사로 표현되었고 그 제사가 때로는 그 부족의 생존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삼국시대의 음주가무는 리쩌허우가 ‘미의 역정’에서 주장했듯 ‘후세의 노래, 춤, 극, 그림, 신화, 주문 등은 상고시대에 미분화되어 하나로 뒤엉킨 무술의례(巫術儀禮) 활동 속에서 완전히 혼합’되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노래하고 춤추고 술을 마시는 모든 행위가 융합된 표현이 바로 제천행사, 제사였다. 부족들이 전부 모여 두려움의 대상인 신을 달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 토템 가무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이었다. 이것이 나중에 시, 노래, 춤, 무대미술 등 독립적인 분야로 분화되었고 각자 다른 발전 경로를 갖게 되었다. 음주가무가 동반된 원래의 제사는 우리가 어렸을 적 큰집에서 본 엄숙하고 근엄한 형식이 아니라 서양의 추수감사제에 가까울 정도로 시끌벅적하고 요란스러운 축제였다. 그러니까 원시시대의 원초적인 행위의 제사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격식을 갖추고 예가 첨가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점잖은 형식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시사회의 구성원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자신들이 숭배하는 동물이나 식물 혹은 자연물 등을 재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춤을 출 때 깃털을 꽂거나 가면을 쓰고 제사에 참석함으로써 뱀이나 새의 토템신앙을 반영한 것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계속된 울주 반구대 암각화(巖刻畵)의 춤추는 인물을 봐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암각화의 인물을 보면 두 손을 위로 올리고 다리를 구부리고 있는데 그의 허리 앞뒤로 뾰쪽한 것이 밖으로 나와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것을 남자의 성기를 표현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보다는 꿩의 깃털이나 동물 뼈 같은 장식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원시시대의 가무가 삼국시대의 제사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이어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벽화가 그려진 고구려 고분은 현재까지 90여기가 알려져 있다. 고분벽화는 350년부터 시작해 고구려가 망한 668년까지 지속적으로 그려지면서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상과 의식세계를 보여준 중요한 자료다.

그중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춤무덤(舞踊塚)에는 ‘춤추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치마와 바지를 모두 점박이 무늬로 통일한 남녀가 서서 악기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같은 점박이 무늬지만 누군가는 흰색을, 누군가는 붉은색을, 또 누군가는 바지나 윗도리에만 붉은색을 넣어 변화를 주었다. 무동과 무녀들은 모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두 팔은 모두 왼쪽을 향해 들어올렸다. 두 팔이 한쪽 방향으로 향한 모습을 그리기가 만만치 않았던지 두 팔이 모두 왼쪽 어깨에 달린 것처럼 그려졌다. 치기 어린 모습이 오히려 정감이 가는 작품이다. 가운데 선 두 무녀의 치맛자락이 왼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 이들이 지금 몸을 한껏 움직이고 있는 상황임을 암시한다. 발끝을 살짝 들고 선 맨 왼쪽 무동의 머리에는 새 깃털이 꽂혀 있다.

고구려 사람들의 토템은 삼족오(三足烏), 봉황이었다.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복식도 제각각이다. 춤을 추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 너무나 고요해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원시시대의 광적인 축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5세기만 하더라도 의례가 상당히 경건해졌다는 것과, 가무가 의례에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전통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종묘제례악이나 사직대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울주 반구대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춤추는 인물’.
울주 반구대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춤추는 인물’.

방탄소년단은 현대판 제사장

방탄소년단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 단순히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가 인정할 만큼 아주 잘한다. 이미 3000년 전부터 그들의 선배들이 춤추고 놀았으니 그 유전자가 어디 가겠는가.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난다’는 속담이 들어맞는다. 격세유전(隔世遺傳)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춤과 노래를 단순한 볼거리, 즐길거리로 머물러 있는 차원을 넘어 원시시대부터 행해진 가무 본연의 의미를 인식하고 전달하는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 못한 윗세대보다 훨씬 ‘웃질’이니 청출어람이다. 제사 혹은 축제의 가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제사를 지내는 목적을 하늘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목적에 형식과 절차가 붙으면서 제사와 놀이는 완전히 분리되어버렸다. 제사는 죽은 자들을 위한 고리타분한 형식으로, 놀이는 참여한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잊어버리는 단순한 오락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간극을, 이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운 의례와 놀이 사이의 틈을 방탄소년단이 메워주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늘에 빌던 제천행사를,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제인행사(祭人行事)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제인행사 또한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동학사상에 비추어보면 제천행사나 다름없을 것이다. 원시시대의 가무가 생존을 위해 하늘에 기도하는 몸짓이었다면, 우리 시대의 가무는 현대인이 겪어야 하는 소외, 불안, 공포, 고독 같은 정신적인 고뇌를 위로해주고 들여다보는 것이 급선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가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가무로 치유해준다. 현대판 제사장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제사장은 제사장이되 뻣뻣한 권위 대신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전달해주는 대변자로 나섰다.

게다가 이번에 발표한 ‘IDOL’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분출하는 에너지 위에 한국인의 정체성까지 가미했다.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비트에 정신이 혼란할 즈음, ‘지화자’ ‘얼쑤’ ‘덩기덕’ 하는 추임새가 느닷없이 등장한다. 아프리카 초원에 온 듯 화려한 원색이 현란할 즈음, 북청사자가 등장하고, 보름달 안에 토끼가 나오고, 부채가 보이고, 한옥을 배경으로 농악의 판굿에서 보던 상모 돌리는 춤사위가 나온다. 마지막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까지 출동하는 진풍경을 이룬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그들 속에서 춤추는 무리들과 함께 뒤섞여 노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런 놀이방식은 농악놀이를 할 때 관객과 놀이패의 구분 없이 함께 어우러져 노는 형식에서 따온 것으로 방탄소년단이 솔로가 아니라 그룹이라는 점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빌보드에서 “방탄소년단이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글로벌한 축제를 시작했다”고 말한 평가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그림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오윤의 ‘대동세상’과 이응로의 ‘군상’ 등에서 농악놀이 같은 어울림이 등장했다. 오윤의 ‘대동세상’이 관객과 놀이패 모두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어깨춤을 들썩이며 신명 나게 노는 모습을 새긴 채색판화라면, 이응로의 ‘군상’은 오직 먹 한 가지 색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해냈다. 두 작품 모두 혼자나 솔로가 아닌 군중을 동원함으로써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강조했다. 그룹으로 형성된 방탄소년단의 몸놀림처럼 말이다.

이 글은 방탄소년단을 칭찬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나의 글이 아니라도 그들에 대한 찬사는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던 시대를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추석 같은 명절에는 가슴에 슬픔이 하나 가득한 사람이 더 많아진다. 이럴 때 우리 함께 어깨를 겯고 서로가 서로의 제사장이 되어주면 어떨까. 우리 또한 방탄소년단과 마찬가지로 춤추고 노래하던 자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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