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마틴 파이플레의 ‘산수’. 경주를 둘러싼 산맥을 표현했다.
독일 작가 마틴 파이플레의 ‘산수’. 경주를 둘러싼 산맥을 표현했다.

천년고도 경주에 지난 9월 중순 세계 각국 예술가들이 속속 도착했다. 독일, 체코, 이탈리아, 폴란드, 베트남 등에서 날아온 이들은 경주의 한곳으로 모였다. 이들에게 미션이 주어졌다. ‘경주를 작품으로 만들어내라. 단 현지에서 구한 재료를 활용할 것. 기간은 보름’.

이들은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에 초대된 작가들이다.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로 6개국 13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보름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경주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숙소에 돌아오는 이들의 손에는 벽돌, 폐타이어, 나무조각, 삼베, 풀 등이 들려 있었다. 모두 경주에서 구한 재료들이다. 이들은 그 재료들로 특별한 실험에 도전했다. 보름 후, 이들이 작품으로 풀어낸 경주는 어떤 모습일까.

독일 베를린에서 회화와 조각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말테 케벨은 첨성대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경주의 벽돌을 이용해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었다. 설치 작품에 화려한 색을 입혀 마치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져 녹아내리는 듯하다.

폐타이어를 활용한 금탑은 ‘금의 나라’인 경주를 상징한다. 독일의 설치미술 작가 마틴 파이플레의 작품이다. 경주 시내를 둘러싼 산맥을 표현한 ‘산수’는 황룡사지 주변의 푸른 들판을 옮겨놓은 것 같다. 목재 구조물 위에 녹색 그물을 덮어 마치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 같다.

폴란드의 나타샤 니지올카는 실과 자수 기법을 활용하여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에도 한국의 실과 삼베를 활용해 ‘제로’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제로’는 시간의 제로라는 의미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한다.

<strong></div>01</strong> 식물을 활용한 크리스틴 웬의 작업 장면.<br /><strong>02</strong> 설치미술 작가 콴리의 작품 ‘말의 탑’. 세계 최초로 소리로 조형 작품을 만드는 제작기술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br /><strong>03</strong> 폴란드 작가 나타샤 니지올카는 자수를 이용한 작업으로 경주를 표현했다.<br /><strong>04</strong> 체코의 사진작가 아담 바카. ⓒphoto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2018
01 식물을 활용한 크리스틴 웬의 작업 장면.
02 설치미술 작가 콴리의 작품 ‘말의 탑’. 세계 최초로 소리로 조형 작품을 만드는 제작기술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03 폴란드 작가 나타샤 니지올카는 자수를 이용한 작업으로 경주를 표현했다.
04 체코의 사진작가 아담 바카. ⓒphoto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2018

미국 이민 2세인 베트남 작가 크리스틴 웬은 경주의 식물을 활용했다. 필름을 사용해 기발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는 이번에도 화초들을 납작하게 말려 고도 경주를 표현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은 도시의 동식물도감, 고대 무덤의 시각적 지도이다. 경주의 능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신비롭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후 세계의 유토피아 같다”고 전했다.

천대광, 이세현, 케이티 김 등 한국 작가들도 이들과 함께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는 가로 4m가 넘는 대형 화면에 ‘천년의 빛’을 담아냈다. 1000년의 시간에 갇혀 사라진 신라의 유물들이 빛을 만나 되살아난다.

설치미술 작가 천대광은 황룡사 절터에서 발굴된 주춧돌과 바위를 품은 3m 높이의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천장이 뻥 뚫린 건축물 내부에는 바위만 덩그러니 있다. 바위에 앉아 현재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지난 천년의 세월을 느껴볼 수 있게 했다.

홍보대사인 배우 이광기도 작가로 참여해 ‘피스핀’ 작품을 설치했다. ‘피스핀’은 이광기씨가 오랫동안 후원하고 있는 섬나라 아이티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 이다. 임진각평화누리공원에도 붉은색의 ‘피스핀’이 설치돼 있다.

김윤섭 전시감독은 “이번에 초대된 예술가들은 전쟁, 분단 등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지닌 국가 출신들이다. 현재 한국은 중요한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화합의 꿈을 펼쳐보자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천년 전 국제도시였던 경주에 다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모여 평화와 천년의 영광을 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이 아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 2018’은 한수원아트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들의 작품 50여점은 경주 황룡사역사박물관에 전시된다. 페스티벌은 10월 3일 개막해 9일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경주를 방문하면 전시를 비롯해서 아트토크, 음악축제 등 가을하늘 아래 문화 향기를 가득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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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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