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우기 대통기획 대표, 신채은 팀장, 이병길 팀장, 전영인 대리, 김동균 과장, 배기수 기업문화연구소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왼쪽부터) 조우기 대통기획 대표, 신채은 팀장, 이병길 팀장, 전영인 대리, 김동균 과장, 배기수 기업문화연구소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일본에는 수백 년씩 된 장수기업이 참 많아요. 이렇게 기업이 오래 이어지려면 직원들이 창업정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기업문화가 발달해야 하죠. 창업주의 정신과 철학을 계승하고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사사(社史)를 제작하는 것만 한 게 없습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중구 남학동 대통빌딩 사옥에서 만난 조우기 대통기획 대표의 말이다. 1976년 설립된 대통기획은 국내 사사출판기업 1세대에 속한다. 주력 사업 분야는 사보와 사사 제작. 2007년 사사제작 전문 사내 조직으로 출범한 기업문화연구소는 올해로 11년째 운영되고 있다.

기업의 역사를 뜻하는 사사는 국내 기록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사사에는 기업의 성장 비결과 각 기업들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담겨 있다. 기업을 창업한 이가 창업 초에 어떤 경영 이념을 내세웠는지, 이후에 경영 철학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도 드러난다.

사사를 보면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 패러다임 변화도 읽을 수 있다. 기업은 국가 경제의 부침에 따라 흥망성쇠를 겪기 때문이다. 배기수 대통기획 기업문화연구소장은 “사사를 편찬하는 것은 회사의 창업정신을 되새김과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환기시켜주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했다.

단권에서 분권으로, 두께는 얇게

사사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아무도 읽지 않는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활자매체는 독자층 감소로 인한 장기적 위기를 겪고 있다. 사사를 편집하는 회사들도 이러한 고민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대통기획은 이런 큰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통기획 기업문화연구소는 사사를 편찬하면서 최대한 많은 이에게 ‘읽히는 사사’를 모토로 내세운다. 언제나 효율성과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특성상,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사는 만들 유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기획은 사사를 제작할 때 여러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사사 구성 측면에서의 변화다. 두께는 줄이고 사진, 인포그래픽 등 시각적 수단을 다양하게 활용해 최대한 독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같은 책이라도 요즘은 여러 권의 얇은 책으로 나누는 분권화가 대세다. 신채은 팀장은 “예전엔 역사로서의 사사를 편찬하는 것 자체에 목적을 뒀다면 요즘은 단순히 편찬해 책장에 꽂아만 두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고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전의 단순한 책자 일변도 형식에서 벗어나 E-book, 홈페이지에 내용을 가독성 좋게 변환해 올린다. 디지털역사관 등 사사를 여러 채널로 변환하는 것도 최근의 트렌드다. 사사를 제작하는 데에는 보통 1년을 기준으로 짧게는 8개월, 길게는 1년4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 대통기획 측의 설명이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사를 편찬할 때 기업의 역사를 빼놓지 않고 싣는, 기록으로서의 측면을 중시했었다. 통사와 부분사라는 기본 구성을 바탕으로 두꺼운 한 권의 역사책을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현재는 직원 인터뷰, 인포그래픽 등 최대한 가볍고 잘 읽히는 콘텐츠를 활용해 별책을 제작하는 추세다. 직원 혹은 외부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통기획 기업문화연구소의 이런 사사 편찬 노력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가 스티비 국제비즈니스대상(IBA)에 출품해 지난 6월 은상을 받은 면도기 제조 기업 ‘도루코’의 60년사다. 국제비즈니스대상은 미국 스티비 어워드(Stievie Awards)사가 선정하는 세계적 권위의 산업 대상 프로그램이다. 대통기획은 도루코의 60년사를 편찬하면서 ‘1분을 위한 60년’이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6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기업의 특성상 장인정신을 콘셉트로 잡았고, 여기에 일반적으로 아침에 남성이 면도하는 시간이 1분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모토다.

도루코의 60년사는 두 권의 책으로 나왔는데, 첫 번째 책은 도루코의 60년 역사를 콤팩트하게 줄인 본책이다. 김동균 대통기획 기업문화연구소 과장은 “두꺼우면 사람들이 읽지 않기 때문에 본책의 분량도 고객사와 협의해 절반가량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별책은 ‘하이라이트로 본 도루코 60년사’로, 창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스토리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중 결정적인 장면들을 뽑아내 따로 제작한 책이다. 면도기를 제조하는 회사인 만큼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까지의 내용을 테마 형식으로 담아냈다.

마찬가지로 대통기획 기업문화연구소가 편찬한 ‘인천항만공사 10년사’의 경우는 책을 4권으로 만들었다. 1권은 역사, 2권은 테마책, 3권은 스페셜북, 4권은 화보집이다. 테마책은 역사의 핵심이 되는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구현한 것이고, 스페셜북은 인천항만공사 간부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좌담회, 설문조사, 인터뷰, 인포그래픽 등을 제작해 직원들이 함께 공유하면서도 회사를 홍보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4권은 인천항의 경우 시설의 구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항만 화보집을 별도로 구성했다. 김동균 과장은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하게 구현했다”며 “10년밖에 안 된 기관이라 고객사 측이 젊고 새로운 느낌을 원해 최대한 부합하는 방향으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인천항만공사 10년사’ 역시 2015년 국제비즈니스대상에서 은상을 받았다.

조우기 대통기획 대표는 “갈수록 우리 기업들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세상에는 항상 새로운 것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가끔은 초심으로 돌아가 가치관과 초심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서구화되고 합리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가끔은 보수적인 것도 챙겨가면서 그런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래야 100년, 200년된 기업들이 꾸준하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사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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