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교회의 바울 대리석 입상. 보통 장대를 들고 있으며 수염이 긴 모습이다.
“유럽, 남미를 포함해 전부 17개국, 10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일단 파리에 모여 1박 한 뒤 곧바로 터키 이즈미르(Izmir)로 떠나 10박11일의 일정이 시작된다.”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프랑스 남성이 이렇게 얘기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터키의 아나톨리아(Anatolia)로 향하는 성지순례단의 일원이라고 소개했다. 이 남성의 말을 듣고 보니 비행기 안이 세계 각국 언어로 북적인다. 이 성지순례의 주된 테마는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대 교회’라고 한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요한이 띄운 편지 속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다. 서기 1세기 아나톨리아에 있던 7개 도시는 로마황제를 비롯한 우상숭배로 점철된 곳이다. 요한은 이 7개 도시 내 기독교도를 격려하고 예수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일생을 보냈다. 유배지 밧모(Patmos)섬에서 쓴 요한계시록은 그 같은 ‘편지 선교’의 결과물이다. “늙은이나 시골 출신자들의 관심사로 전락한 것이 프랑스의 가톨릭이다. 아나톨리아에 가서 내가 걷는 길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7대 도시의 흔적을 살피면서 2000여년 전의 성력(聖歷)을 재확인하고 싶다는 것이 파리 출신 청년의 포부이자 꿈이다.
   
   
   요한계시록의 7대 교회
   
   어두워질수록 작은 빛에 한층 더 민감해진다. 태양 아래서는 안 보이던 빛이지만, 동굴에 들어가 출구가 막히는 순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느낄 수 있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언제부턴가 초기 교회의 설계사에 해당하는 사도 바울(Paul)이 주변에 넘실댄다. 독실한 기독교도도 아닌데 곳곳에서 바울이란 이름이 들려온다. 이를테면 레스토랑에 가서 웨이터의 이름을 물으면 ‘바울’이라는 식의 우연이다. 유튜브에서 괜찮은 노래를 들은 뒤 살펴보면 가수 이름이 바울이다. 로마 최고 중심지, 콜로나광장(Piazza Colonna) 기둥 위 인물이 누구인지 묻자 “바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로마는 베드로(Peter)의 도시다. 예수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은 12제자의 맏형 베드로의 무덤이 바티칸 지하에 들어서 있다. 그런데 왜 레스토랑에서, 유튜브에서,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는지 스스로가 궁금했다. 약하지만 강렬한 빛이라고나 할까. 프랑스 청년의 성지순례단 얘기를 들으면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바울을 만나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요한계시록의 7대 교회는 요한만이 아닌, 바울이 행한 포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바울은 21세기 터키 경제를 유지시켜주는 주된 ‘관광 아이콘’이다. 성지순례 관광단이 넘쳐난다. 요한이 가톨릭 개신교의 아이콘인 데 비해, 바울은 그리스·러시아 정교의 주인공이다. 예수가 처형된 뒤 아나톨리아를 순회하며 기독교 포교에 앞장선 인물이 바울이다. 로마가 베드로라고 할 때, 그리스와 아나톨리아는 바울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동안 터키에 가서도 정작 바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성지순례단을 만난 뒤의 작은 결심이라고나 할까. 향(香)에 주목하려던 당초의 아나톨리아 여정(旅程)을 곧바로 수정했다. 아나톨리아 곳곳에 흩어진 바울 행적에 관한 탐구를 하기로 했다.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발견된 바울 관련 기록이 담긴 비잔틴 석상.

   16만㎞ 대장정한 오지여행가
   
   ‘길고 긴 여정’은 바울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비교적 단기간에 끝나거나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 트래블(Travel)이나 투어(Tour)가 아니다. 기약도 없고 살아돌아올지 여부도 불확실한 채 떠나는 ‘저니(Journey)’가 바울의 여정에 어울리는 단어다. 바울은 전부 3번에 걸친 장기 포교여행을 떠난다. 예수의 계시에 따라 그리스 지역 포교에 나서면서 최소한 16만㎞에 달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결론은 로마에서의 순교다. 고대 로마시대의 여행은 21세기 상황과 전혀 다르다. 내륙의 경우 넓고 평평한 길이 없다. 말을 타고 여행을 하는 낭만적인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다. 고대 유적답사를 하면서 이미 절감했지만, 산 너머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거의 등산하듯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깎아지른 바위산은 지중해에 인접한 아나톨리아 지형의 공통분모다. 옛날에는 잠잘 곳은 물론 음식과 신발도 변변찮고 곳곳에 도적들이 출몰했을 것이다. 그 같은 악조건을 넘어 바울은 초인간적인 포교활동에 나섰다. 아마도 당대 인물로는 여행 경력이나 여행 거리 면에서 최고였을 듯하다. 더불어 체력 또한 남달랐을 듯하다.
   
   바울의 길고 긴 여정의 흔적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곳은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of Pisidia)’이다. 아나톨리아 지중해에 인접한 터키 최대 항구도시 안탈리아(Antalya)에서 200㎞ 북쪽에 위치한 내륙도시다. 흔히 안디옥이라고 하면 초기교회의 대명사인 시리아의 고대도시를 떠올릴 듯하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시리아 안디옥에서 서북쪽으로 70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고대도시다. 오해하기 쉬운데 기독교 교회가 제일 먼저 세워진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다. 외환(外患)보다 내우(內憂)가 더 잔인하고 오래간다. 예수를 처형하는 데 앞장선 유대교 지도부가 이단의 성전을 예루살렘 안에 허용할 리가 없다. 기독교 교회가 제일 먼저 들어선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무려 800㎞나 떨어진 안디옥이다. 시리아 안디옥은 원래부터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던 곳이다. 기독교 초기 포교의 대상자는 언어도 같고 예수와 피를 나눈 유대인들이었다. 바울은 유대인 집단거주지 안디옥을 기독교 전파의 전초기지로 삼는다.
   
   
   로마 시민권자였던 유대인
   
   비시디아 안디옥은 바울만의 ‘특별한’ 능력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곳이다. 유대인도 조금 있지만 우상숭배에 익숙한 사람들로 이뤄진 도시가 비시디아 안디옥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인 동시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이한’ 인물이다. 당시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19세기 말 조선인으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격이다. 예수 12제자 중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바울이 생존해 있을 때 기준으로 보다면 ‘세계=로마’다. 로마 시민권자는 여러 가지 특권이 많았다. 예수처럼 유대인에 의해 심판받을 가능성도 없다. 사법권은 유대법이 아니라 로마법에 속한다. 십자가형은 로마인이 아닌 비(非)로마인에게만 적용된 최악의 형벌이다. 따라서 순교로 끝난 바울의 경우 예수와 달리 십자가형에서 제외됐다. 서서히 고통 속에 죽어가는 십자가형이 아니라 단칼에 참수되는 이른바 ‘클린 처형(Clean Execution)’이 바울의 최후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예수와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2제자가 아닌 것은 물론 거꾸로 기독교도를 탄압하는 데 앞장선 골수 유대교도가 바울이었다. 기독교 최초 순교자 스테반(Stephen)에 대한 처형도 바울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 탄압자로서의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Saul)이다. 예수가 처형된 이후 늘어난 기독교도를 탄압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중 갑자기 시력을 잃으면서 말에서 떨어진다. 순간 예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울아, 왜 나를 탄압하느냐.” 사울은 3일간 치료를 받고 시력을 회복한다. 이후 기독교 탄압자 사울에서 예수 포교자 바울로 변하게 된다. 이후 3번에 걸친 포교여행이 바울 생애의 전부다.
   
   바울이 예수로부터 특별히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신학적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 판단으로는 그리스어가 중심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바울은 그리스어가 유창한 인물이었다. 1세기 당시 그리스어는 지식인의 상징이다. 황제를 비롯한 로마 지도층의 대부분은 라틴어보다 그리스어를 한층 더 ‘숭배’했다. 당시 그리스 예술에 대한 이해 정도는 지식인의 교양 척도였다. 유대인 집단거주지 안디옥에서는 히브리어가 통하겠지만, 로마의 다른 지역으로 갈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여러 언어가 난립하는 세상에서 그리스어 하나면 어디에서든 통할 수 있었다.
   
   내륙의 비시디아 안디옥도 마찬가지다. 로마 시민권자 바울은 그리스어를 앞세워 기독교 포교에 나설 최적의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3번에 걸친 바울의 여행 가운데 첫 번째 행선지였다. 이유는 아나톨리아 내륙의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교도 이민족의 도시 비시디아 안디옥은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의 도전정신과 종교적 정열을 이해하고 싶었다. 종교·문화·언어·풍토 면에서 전혀 다른 이국(異國) 비시디아 안디옥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베르게(Perga)는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해안도시라서 접근하기 쉽고 교통편도 좋다. 베르게는 서기 46년 바울이 들렀던 첫 번째 아나톨리아 도시다. 시리아 안디옥에서 배로 출발한 뒤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들어가기 위해 들른 항구다. 지중해에 인접한 고대도시로, 현재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15㎞ 정도 떨어져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이 열리는 관광도시로, 개선문을 비롯한 로마 당시 유적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항상 겨울철에만 들렀기 때문에 차가운 바다 모래 바람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곳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넓은 해안선이 인상적이다. 2000여년 전 작은 배를 타고 전혀 낯선 곳에 내렸을 때의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비시디아 안디옥의 바울교회 전경. 현재 복원 공사 중이다.

   초기교회의 설계자 바울
   
   터키 내 고대도시 대부분이 그러하듯 비시디아 안디옥은 조용하고도 고독하다. 찾는 사람들도 드물고 겨울 길목이기에 전체 이미지가 ‘잿빛’ 그 자체다. 도굴꾼들로부터 유물이나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길고도 긴 녹슨 철창이 눈에 띈다. 좁은 출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약 15도 정도의 낮은 경사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주변에는 부서진 대리석 기둥과 장식물 100여점이 누워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의 대부분은 높은 언덕 위에 들어서 있다. 높은 지형을 이용해 적의 침략을 막자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고대 로마시대로 들어서면서 도시의 중심은 언덕이 아닌 평지로 이동한다. 전성기의 고대 로마는 장소 불문하고 하루 만에 로마 지원군을 파견할 수 있었다. 적의 공격이 있더라도 근처 로마군이 곧바로 달려와 퇴치할 수 있었다.
   
   서기 120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높이 12m, 폭 24m에 이르는 서쪽 성문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경계선이 성문일 뿐, 안팎의 구별은 전혀 없이 평원으로 이어져 있다. 바울 생존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은 ‘이우스 이탈리쿰(Ius Italicum)’이란 특별도시였다. 직역하자면 ‘이탈리아 법’이란 의미다. 이민족이 거주하는 식민지 도시지만 로마법에 의해 직접 통치되는 특별시란 의미다. 세금도 적고, 사법권도 로마법을 따르고, 이곳에서의 출생자는 전원 로마 시민권자가 될 수 있는 엄청난 특권도시다.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고 거주를 원하는 자유의 도시이기도 했다. 정치·경제·문화는 물론 종교적으로 아나톨리아 내륙지방의 중심도시가 비시디아 안디옥이었다. 바울이 왜 첫 번째 포교여행지로 이곳을 잡았는지 알 수 있다.
   
   서쪽 성문에서 약 500m 정도 걸어가자 고대건물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터키인 10여명이 모여 공사를 하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바울의 교회다. 전체 높이가 약 20m 정도로, 바울이 처음 비시디아 안디옥에 와서 설교를 했다는 당시 유대교 시나고그(Synagogue) 교회당 터에 들어선 교회다. 초기교회의 모습이 그러하듯 둥글고 좁은 제단이 들어서 있다. 엄청난 세월 때문이겠지만 현재 바울 교회의 대부분은 10m 정도의 퇴적물 아래에 파묻혀 있다. 터키인들이 벌이는 공사는 퇴적물을 하나씩 치우고, 흙 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를 유물을 찾아내는 데 있다고 한다. 바울 교회의 흔적을 좀 더 크고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작업이다. 기독교도가 아닌 이슬람교도에 의한 성지 복원이다.
   
   바울은 건축물로서 기독교 교회의 모습을 구체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설교를 통한 포교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종교 설계자였던 셈이다. 기독교도를 유대교도와 구별해 크리스천(Christian)으로 규정하고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만든 주인공도 바울이다. ‘십자가=죽음’이 아니라 ‘십자가=부활’로 해석한 것이다. 유대교도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비유대인들에게는 쉽고도 편한 율법을 만들어 기독교를 편한 종교로 진화시킨 인물이 바울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은 설교에 실패했다. 비유대교도를 위해 설교하다가 유대인들의 반발에 직면해 쫓겨난다. 예수만이 아니라 바울도 같은 유대인들로부터 파문을 당한 인물이다. 설교가 실패로 끝나자 바울은 이후 비시디아 안디옥을 두 번 더 방문한다. 비시디아 안디옥 내의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제단보다 더 큰 교회가 들어선 것은 바울 사후 300여년 뒤다. 바울은 생활로서의 기독교, 유대교를 넘어선 비유대교에 주목했다. 바울이 없었다면 현재의 기독교도 없었을 듯하다. 바울은 기독교 포교자만이 아니라 2000여년 전의 오지여행가로도 기록될 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여행가 바울과, 예수에 대한 그의 정열을 느낄 수 있는 신성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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