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 오늘은 영화 매니아 사이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로마’(Roma·감독 알폰소 쿠아론·2018)를 다뤄볼까 합니다. 이 영화는 오는 2월 24일 열리는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10개 부문 후보로 오르며 주목받는 작품입니다.

배종옥 | 오랜만에 만나는 멕시코 영화네요. 게다가 흑백이고요. 감독 이름이 낯설지 않은데요.

신 | 알폰소 쿠아론은 샌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의 호연이 빛났던 ‘그래비티’(2013)를 만든 감독입니다. 일찍이 ‘이 투 마마’(2001)로 멕시코 영화계의 저력을 보여준 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등 블록버스터를 만든 장인(匠人)이지요.

배 | 100% 에스파냐어 대사에 멕시코 배우들로만 화면을 채운 ‘로마’에 대해 감독은 “멕시코 출신인 나의 유년 시절을 반영하고 있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영화”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신 | 제목 ‘로마’ 때문에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로 선입견을 갖기 십상인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안에 있는 ‘콜로니아 로마’라는 주거지역을 배경으로 1970년대 멕시코 사회를 담고 있습니다.

배 | 언제부턴가 멕시코 감독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할리우드를 누비고 있는 듯해요.

신 | 맞습니다. 이른바 ‘멕시코 3대 감독’이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지요. 알폰소 쿠아론(1961년생) 외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1963년생)와 기예르모 델 토로(1964년생)를 엮어서 그렇게 칭하고 있습니다.

배 | 이냐리투 감독은 우리 코너에서도 얼마 전 다뤘던 ‘버드맨’(2014)과, 코너 첫 영화였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를 만든 이잖아요.

신 | 브레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바벨’(2006)도 있었지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으로 제90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각본·여우주연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감독·음악·미술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지요.

배 | 사실 저는 하도 사람들이 ‘로마’가 좋다고 해서 이른 아침 극장을 찾아갔는데, 영화를 다 본 뒤 첫 느낌은 ‘뭐지? 그래도 인생은 계속 된다인가?’ 싶었어요.

신 |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초에 개봉해서 지금도 몇몇 예술전용 극장에서 상영 중인데 누적 관객수가 3만4455명(1월 28일 기준)에 불과하거든요.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여~엉 심심한 영화’인 거지요.

배 | 물론 베스트셀러 소설이 수준 높은 소설과는 거리가 멀 수 있듯 일반 대중이 외면한 영화들 가운데 빼어난 수작(秀作)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기자인 저로서는 어찌됐든 보라고 만든 영화를 관객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과연 그 영화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거든요.

신 | 대중과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이번 아카데미에 감독·촬영·작품·각본·외국어영화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단연 화제작입니다. 권위 있는 전미(全美)비평가협회상에서 감독·촬영·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1932년에 시작되어 국제 영화제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식 경쟁 부문의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니까요.

배 |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1970년 멕시코시티의 상류층 가정이 무대입니다. 인디오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 분)는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분) 가족을 아침에 깨우고 그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일상을 책임지는 입주 가사도우미입니다. 엉망인 운전 실력을 가진 소피아와 외도를 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클레오는 아이 넷을 보살피고 집안일을 하며 눈코 뜰 새 없는 와중에도 동료 하녀 아델라와 수다를 떨고 남자친구 페르민과 데이트를 하는 등 소소한 즐거움을 갖고 있습니다.

신 | 영화의 주인공이자 극 중 모든 내러티브의 중심에 서 있는 클레오의 존재는 지금 한국의 50~60대 중년층이 어린 시절 집에서 함께 지냈던 ‘식모’를 떠올리면 딱 맞습니다. 가난한 시골 부모, 무작정 상경(上京), 교육의 부재, 순박함, 주인집의 눈칫밥, 근면 성실, 전망 없는 앞날….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쩜 그렇게도 우리네 1960~1970년대 모습과 유사한지 모르겠더군요. 개발도상국의 과도기적 전형이라고나 할까요.

배 | 나름 안정된 가사도우미 생활을 하던 클레오가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하면서 여러 일들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합니다. 마침 주인 소피아도 남편과 갈라서고요. 일상에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이지요. 영화는 갈등의 전개 과정, 클라이맥스와 그 이후를 무덤덤히 보여줍니다.

신 | 무엇보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가 투자한 영화로 공식적으로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은 TV나 PC, 태블릿,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렇게 되면 ‘로마’가 가장 역점을 둔 ‘사운드’의 감동을 거의 느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배 | 그래요. 영화의 내용이나 흑백필름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이 투자를 꺼렸을 겁니다. 감독으로선 넷플릭스가 유일한 대안이었을 거고요. 바닥 물청소를 4분여 보여주는 영화 인트로는 물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빨래를 널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클레오의 모습을 6분간의 롱테이크로 잡는 엔딩 부분도 그 미묘한 사운드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화면의 감동이 급감할 수밖에 없어요.

신 | 효과로 쓰인 사운드는 대부분 우리가 흔히 듣는 ‘화이트 노이즈’입니다. 아이들의 웃음, 차량 경적, 배수구로 흘러드는 물줄기, 비행기 엔진, 멀리서 들리는 반정부 시위대의 구호…. 쓸데없는 소리들 같지만, 분명 쿠아론 감독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매개체인 것이지요.

배 | 이 영화의 진수(眞髓)일 마지막 해변 신 또한 그 놀라운 화면 못지않게 파도 소리와 거기에 묻힌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관건이었지요.

신 |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하녀 주제에”라며 일순간 표변하는 인간쓰레기 페르만을 비롯, ‘로마’는 영화의 메인 테마와 별도로 일부 남성들의 가식과 허세를 매우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배 |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이란 참. 어쨌든 제 별점은 ★★★. 한 줄 정리는 “감독의 뚝심을 본 영화”.

신 | 저는 ★★★★. “자신의 어린 시절에 보내는 37.5° 러브레터.”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배종옥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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