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을 앞두고 이런저런 뉴스가 쏟아진다. 그중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단신(短信)이 하나 있다. 바로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의 3월 방북설이다. 오래전부터 그는 머지않아 개방에 나설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호언하며 대북 투자 ‘대박론’을 외쳐온 인물이다. 현재 미국 및 북한 당국과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박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그해 3월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하여 대박론을 재천명했다. 그 어휘의 통속성으로 인해 ‘대박’은 한동안 유행어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때 북한에 대해 대대적인 SOC 투자 등이 제안되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북한은 아예 처음부터 통일대박론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노동신문은 “어리석은 망상에 사로잡혀 체제 통일의 헛된 꿈을 실현하려는 흉심이 깔렸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해 5월에는 ‘통일대박론,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소책자까지 발간하여, 관공서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까지 배포했다. 북한이 이처럼 극렬하게 통일대박론에 반발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대박론은 박 전 대통령의 고유한 창작물이 아니다. 대박론이라는 용어와 개념의 뿌리에 해당하는 독특한 통일 제안서가 있다. 바로 신창민 중앙대 명예교수의 ‘통일은 대박이다’(2012)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통일이 우리에게 커다란 경제적 이득, 즉 대박을 안겨준다고 주장하며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어떠한 대비가 필요한지를 거시적으로 살펴본다.

통일비용은 대충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식량·의복·피복·약품 등의 조달에 소요되는 일시적 위기관리 비용이다. 둘째는 정치·행정·군사·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체제 단일화 비용이다. 이 두 가지에 소요되는 비용은 2011년 기준으로 약 170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것은 정부 비축물자, 통상적인 정부 예산, 향후 통일특수 및 북한 주민 소득향상에 대한 과세, 차관 등으로 어렵지 않게 감당할 만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비용이다. 그것은 “통일 직후 북측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현실적인 입장에서 적어도 남한의 절반 정도까지 이르도록 한 다음, 통일된 단일경제로 혼합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소요되는 생산 실물자본을 확충하는 데 소요되는 투자자금”이다. 이처럼 저자는 북한 지역의 경제를 분리, 관리하는 일정 기간의 과도기를 제안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투자이고 이것이 경제적 대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과도기는 10년이 적당하다. 그보다 짧으면 비용이 증가하고 더 길면 투자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10년 동안 북한 주민의 소득이 남한의 절반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매년 우리의 GDP 대비 7% 정도의 실물자본이 북측에 필요하다. 이는 군비 감축 2%, 차관 1%, 국채 발행 3%, 세금 1%로 무리 없이 조달할 수 있다. 물론 적절한 여건이 형성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대북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이 코리안 정책(Buy Korean Products Policy)’이다. 주변국들을 설득하여 우리가 대북 실물자본(GDP 대비 7%) 가운데 80% 이상 생산·조달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GDP 대비 5.6%에 해당하는 실물생산량 증가를 의미한다. 여기에 추세적 성장잠재력(3%)과 부분적인 군 병력의 산업인력화에 따른 생산량 증가(2.4%)를 합하면, 우리 경제는 통일 후 10년 동안 연 11%의 고도성장이 기대된다.

이러한 특수(特需)에 따라 혜택을 보는 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특별기여금을 내게 한다면, 통일비용의 확충은 더욱 용이해진다. 현재 과도한 군비 지출 및 군 인력 보유로 인한 분단 비용은 GDP 대비 4.4% 정도다. 더구나 이 비용은 계속 지출되는 비용이다. 반면 10년 동안 GDP 대비 7%를 투자하면 바야흐로 통일된 선진부국이 탄생한다는 것이 바로 대박론의 요체다.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다양한 교훈을 던져준다.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론을 한데 모으고, 동독 주민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반면 통일 후 동서독 간에 화폐를 1:1로 교환하고, 임금을 통일하고, 동독 지역 토지를 원소유주에게 실물반환한 것은 실책이다. 그런 실책을 피하기 위해 10년간의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북한 토지의 국유화 유지(소유권과 사용권의 분리)를 제안한다. 나아가 통일을 계기로 남한 토지의 소유권 제한도 고려해볼 만하다. 우리는 인구에 비해 너무 제한적인 토지로 인해 경제 정의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따라서 올바른 시장경제 창달을 위해서라도 획기적인 토지정책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견해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북한의 토지 문제는 통일 과정에서 분명히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통일대박론은 보기 드물게 수치로 뒷받침된 경제중심적 방안이다. 거기에는 정치적으로 북한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저자도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정치나 경제가 어느 절충 형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완전히 남측 체제로 단일화해야 한다.” 한마디로 통일대박론은 북한 체제를 배제하고 북한을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통일대박론에 극렬하게 반발했던 이유다.

북한은 체제우위를 바탕으로 연방제 통일 방안을 주장해왔다. 남한이 연방의 그물에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하지만 차츰 체제우위가 역전되자 오히려 흡수통일을 강하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의 우위가 돌이킬 수 없이 확고해지면 언젠가 우리 중심의 통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통일은 아무리 아름다운 수사(修辭)로 치장하더라도 결국에는 체제 문제와 관련된다. 저자의 주장대로 ‘절충’ 형태로는 될 수 없다.

따라서 체제 문제를 외면하고는 어떠한 통일 방안도 제대로 논의되기 어렵다. ‘통일은 대박이다’는 아예 북한 체제를 배제한 전통적 통일론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상당 기간 그런 장밋빛 환상에 취해 있었다. 반면 요즘 우리는 또 다른 대박론에 들떠 있다. 그것은 북한 정권의 지선(至善)에 근거해 ‘우리끼리’ 자주공영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무조건 불신이나 무조건 신뢰는 그 어느 것도 전략적이지 못하다.

북핵의 현실화에 따라, 지금 한반도는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이런 대전환기에는 경제적 역량보다 외교적·군사적 역량이 더 결정적 힘을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열세다. 더구나 집권 엘리트 집단은 뿌리 깊은 대북 콤플렉스에 얽매여 수세적(守勢的)이다. 그 결과 트럼프와 김정은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신세다. 또한 조그만 틈만 보여도 로저스 같은 국제 투기꾼들이 강대국을 등에 업고 기웃거린다.

이로 말미암아 이미 끝난 것 같았던 체제 경쟁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더구나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험난한 현실을 외면하고 어설프게 대박이나 환상만 좇다가는 자칫 동북아의 미아가 될지 모른다. 당면과제는 대박이 아니라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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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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