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관 | 오늘은 소리 없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버나움’(Capernaum·감독 나딘 라바키·2018)을 다뤄 보겠습니다.

배종옥 | 레바논·프랑스 합작영화로, 우리 코너에 레바논 영화는 처음 등장합니다.

신용관 | 감독 나딘 라바키(Nadine Labaki·45)는 레바논에 있는 대학 영화과 출신인데, 졸업 작품으로 1998년 파리의 IMA가 개최한 ‘아랍 영화 비엔날레’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배종옥 | 영화과 졸업 작품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정도면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셈이네요.

신용관 | ‘가버나움’ 이전에도 나딘 라바키는 베이루트에 살고 있는 레바논 여성들의 유쾌한 로맨스를 그린 ‘카라멜’(Caramel·2007)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배종옥 | 감독으로서 세 번째 작품인 ‘가버나움’으로는 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지요. 제72회 영국 아카데미, 제91회 미국 아카데미와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신용관 | 이 영화는 무엇보다 포스터에 쓰인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카피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배종옥 |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베이루트 슬럼가에서 태어난 12세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 분)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되기까지 겪게 되는 가출, 구걸, 불법체류자 모자(母子)와의 동거생활 등 기구한 사연이 기본 스토리입니다.

신용관 | 우선 타이틀인 ‘가버나움’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이스라엘의 갈릴리 바닷가에 있던 마을로 신약성경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인데,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기에 예수가 그 멸망을 예언했고 실제 6세기에 퇴락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배종옥 | 영화를 보고 나면 단번에 알게 되지만 결국 수많은 ‘자인’들이 살고 있는 레바논의 현재를 빗댄 것이라 볼 수 있겠군요.

신용관 | 레바논은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2차대전 이후 1944년에 독립한 나라인데 친(親)서구적이며 보수적인 그리스도교도와 아랍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급진적 이슬람교도, 두 세력의 대립 위에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정치가 안정을 잃게 되었습니다.

배종옥 | 저런, 서로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부딪치는 곳이라니. 하필 위치도 이스라엘과 시리아에 둘러싸여 있던데요.

신용관 | 친미 노선의 대통령 취임과 헌법 개정으로 촉발된 정부군과 반군의 길고 긴 내전(1975~1990)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지요. 또한 1970년 이후 30년 넘도록 계속된 팔레스타인 및 이슬람교 게릴라들과 이스라엘의 무장투쟁 등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배종옥 | 영화 러닝타임 120여분 내내 너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말 그대로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 명치 끝이 답답하기 그지없었지요. 나라가 그 모양이니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어느 누구보다 고통을 받는군요.

신용관 | 주인공 자인은 대체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아이들이 득시글거리는 방 안에서 뒤엉켜 성장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은 채 거리에서 음료수와 껌을 팔거나 구걸을 하게 시키지요.

배종옥 | 그야말로 온갖 오염물이 난무하는 좁은 뒷골목에 아이들이 방치돼 있는 거지요. 무엇보다 무식하고 폭력적인 부모가 가장 치명적입니다. 딸 사하르(하이타 아이잠 분)가 초경을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까요.

신용관 | 오빠 자인이 동생의 생리 시작을 알고 동네 점포에서 훔친 어른용 생리대를 입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영화를 보던 50대 아주머니들이 “어휴, 저걸 어째…”라며 혀를 끌끌 차더군요.

배종옥 | 부모는 월세를 깎기 위해 갓 초경을 한 어린 사하르를 집 주인에게 시집보냅니다. 온몸으로 이를 저지하던 자인은 엄마에게 두들겨맞은 뒤 집을 나오지요. 그리고 거리에서 에티오피아 출신 불법체류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 분)을 만나 그녀의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분)를 돌보게 됩니다.

신용관 |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는 가버나움이 그 숱한 이른바 ‘앵벌이’ 영화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TV 방송국에 “부모를 고발하겠다”고 제보한다는 기발한 스토리 외에, 이 불법체류자 모자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자인의 ‘어른보다 나은’ 모습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종옥 | 맞아요. 동생 사하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 때문인지 자인은 위조 체류허가증을 만들러 외출했다가 검문에 걸려 돌아오지 않는 라힐의 어린 아들을 안고 다니며 먹이고 재웁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에서 말이지요.

신용관 | 거리의 부랑아인 자인을 집으로 데려가 더운 음식을 내주는 라힐의 존재감도 아무리 픽션임을 감안해도 무척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괴로움을 더 잘 이해한다”고 할까요.

배종옥 | 라힐 모자와의 관계가 빠진 채 자인의 스토리만 풀었다면 ‘가버나움’ 또한 “당신이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써는 동안 이 지구촌 한쪽 구석에선 이렇게 불쌍한 아이들이 배를 곯고 있다”라고 외치는 고만고만한 영화에 그쳤을 겁니다.

신용관 | 무엇보다 자인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의 연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종옥 | 그건 연기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저 어린 비쩍 마른 아이가 그냥 넋 놓고 거리를 쳐다보기만 하는데도 내 가슴이 먹먹해지지?” 싶더라니까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여겨졌어요.

신용관 | 이 영화의 출연진 대부분은 영화 촬영이 처음인 아마추어들이었다고 합니다. 자인 알 라피아와 사하르 역의 여자 아이는 베이루트 빈민가에서 캐스팅됐고, 라힐 역의 하이타 아이잠도 실제 불법체류자였다고 합니다.

배종옥 | 영화의 각본이 좋고, 카메라 워킹도 스토리 진행에 걸맞게 적절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영화의 화면이 쓸데없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어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감독 마크 허만·2008)이라고 나치 수용소 얘기를 푸는 영화가 있는데, 끔찍한 정황만 간접적으로 묘사할 뿐인데도 그 감정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신용관 | 우리나라 영화가 대개 그렇지만 직접 다 보여주는 게 더 하수(下手)지요.

배종옥 | 제 별점은 ★★★★. 한 줄 정리는 “아이의 표정이 연기 아닌 실제 같아 마음이 쓰리다”.

신용관 | 저는 ★★★★☆.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조금씩이라도.”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배종옥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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