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한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과 최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임원은 “우리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지만 흔들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그는 “무서운 건 전 정권에서 회장에 충성했던 사람들이 언제부턴지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회사 꼴이 말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임원의 말대로 과거 공기업이었던 몇몇 대기업들은 아직도 정부의 손아귀에 갇혀 있는 꼴입니다. 이들 기업들도 시장과 주주보다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데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와 만났던 임원은 “정부를 비판하는 멘트에 우리 회사 이름이 나가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겁먹은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의 문제만은 아닌 듯이 보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더 큰 문제로 보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권들은 이들 대기업들을 전리품 취급해왔습니다. 외국인 주주들이 버티고 있고 막대한 이익을 내는 세계적인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손을 뻗쳐왔습니다. 역대 정권이 기업 경영권에 입김을 행사하는 그 내밀한 구조도 비슷합니다. 투서가 등장하고 노조가 나서고 검찰 수사가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 경영진을 향한 온갖 의혹들이 제기됩니다. 정권이 기업을 흔드는 이유도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결국은 돈과 자리 때문입니다.

‘관치의 유혹’이라는 이번주 커버스토리를 읽어 보면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기업들의 몸부림이 느껴집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이것이 큰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현 정권도 세상을 진짜 바꾸려면 관치의 유혹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타성과 관습을 스스로 바꾸지 못한 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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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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