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나무가 바로 ‘구상나무’입니다. 구상나무는 20세기 초 유럽으로 유출된 한국 토종입니다. 그런데 2010년까지 구상나무 원산국인 한국은 아무런 이익도 취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종자를 통해 발생한 이익은 원산국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판매한 나라만이 가질 수 있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자 2010년 국제사회에서 자원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는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세계는 지금 우수한 종자를 쟁탈하기 위한 치열한 종자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종자강국이 되기 위해 2012년부터 ‘골든 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김제민간육종단지에서 종자전쟁에 뛰어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먹는 상추, 고추 등 수많은 채소들이 수십 년에 걸쳐 개발된 종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반평생 우수한 종자 개발에만 매달리는 이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습니다.

농촌진흥청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해외에 지급한 원예작물 종자 로열티는 무려 1456억원에 달합니다. 아직은 종자강국으로 가야 할 길이 아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며 만났던 한 종자연구원의 말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한국 아닙니까.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농사를 짓기에도 유리하고, 토종 종자의 품질도 우수합니다. 지금은 무시당할지 몰라도 좋은 무기를 갖췄으니 종자전쟁에서 보란 듯이 이길 겁니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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