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끝나고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과 사석에서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의 활로가 잘 보이질 않는다”며 괴로운 표정을 짓다가 “요즘처럼 YS와 DJ가 커 보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인즉슨 YS와 DJ가 한창 시절 서로 경쟁하듯 벌였던 ‘젊은 피 수혈’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는 뜻이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YS와 DJ는 젊은 피 수혈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치권 밖에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 정치 참여를 설득했다는 등 관련 일화는 부지기수입니다. 정치평론가들은 “정치 9단이라 평가받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치수명을 연장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 젊은 피 수혈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의 젊은 피 수혈 노력은 파격적인 공천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공천 경쟁이 우리나라 정치를 그나마 업그레이드시켜온 원동력일지 모릅니다. 지금도 여야 진영에서 맹활약 중인 주요 정치인들이 YS와 DJ의 손에 이끌려 정치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이런 두 사람과 비교하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망스럽습니다. 두 사람 집권 10년 동안 보수진영은 이렇다 할 젊은 피 수혈을 하지 못했습니다.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막장 공천 싸움만 했지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신선한 공천은 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피 수혈이 10년간 끊긴 것이 지금 자유한국당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일지 모릅니다.

젊은 피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번호 영국에서 보내온 커버스토리에서도 잘 나옵니다. 영국 보수당이나 노동당이나 결국 위기에서 당을 구한 것은 신선한 사고로 무장한 젊은 인재들이었습니다. 보수당 집권 18년을 끊어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나 총선 3연패에서 보수당을 구해낸 데이비드 캐머런 모두 타성과 기존 이념을 뒤집어버린 젊은 개혁가들이었습니다. 커버스토리를 쓴 재영칼럼니스트 권석하씨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집권을 한 나이가 똑같이 44세였다”는 사실을 짚어내면서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는 정당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아침”이라고 썼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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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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