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뉴스에 시달리면서 이번주 지면을 짜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도 생각이 머물렀던 대상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이 노 의원과의 추억을 얘기했지만 저에게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2004년, 노 의원이 책을 한 권 냈습니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그때 전화로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조선왕조실록 전문가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이 한글로 번역돼 CD로 나온 후 그걸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10년 이상 틈만 나면 들여다봤다고 하더군요. ‘세종대왕의 두 번째 며느리는 레즈비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남편도 육아 휴가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흑인병사가 참전했다’…. 실록 사이사이 박혀 있는 사실(史實)들이 ‘노회찬식 제목’을 달고 발굴돼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닌 리더의 지침서로도 여기고 있더군요. 당시 썼던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왕이 무제한의 절대권력을 갖는 게 아니었습니다. 무엇 하나를 하려 해도 관례와 선대(先代)의 사례를 근거로 들어야 했고 그게 없으면 중국에서라도 근거를 따와야 했습니다. 아무리 왕이지만 설득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끝까지 아래서 말을 안 들으면 하라고 하지 못합니다. 합당한 얘기라야 통하는 세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탐독하고 냉면을 즐겼던 노 의원이 저세상에서는 편안했으면 합니다.

노 의원과 조선왕조실록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이번호의 세종 논쟁 4라운드에도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박현모 여주대 교수가 주간조선 지면을 통해 펼치고 있는 논쟁입니다. 요즘 이렇게 길게 논쟁을 이어가는 예를 별로 못 봤거니와 세종대왕이 이런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편집장으로서 논쟁을 이어가는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주 커버스토리는 어찌 보면 ‘진부한’ 얘기입니다. 또 낙하산 논란입니다. 그런데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친구들이랍니다. 과도한 비판인지 아닌지는 기사를 읽어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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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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