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침대 머리맡에는 늘 몇 권의 책이 ‘잠자고’ 있습니다. 읽는다고 갖다놓고는 먼지만 쌓이는 책들을 쳐다보면 책이 아니라 잠자리 도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머리맡 책 중에는 신작들이 별로 없습니다. 한 번 읽었던 책들 중에 또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머리맡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작들이 그 무리에 섞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침대에서 편하게 읽기에는 한 번 읽었던 내용을 다시 음미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것도 약간 이상한 저만의 독서 취향입니다.

요즘 머리맡을 차지한 책 중 자꾸 손길이 가는 책은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이란 책입니다. 물론 이 책 역시 한 쪽도 읽지 못하고 잠들기 일쑤지만 일단 누우면 습관처럼 집어듭니다. 2006년에 발간된 어찌 보면 그렇고 그런 여행기인데 묘하게 재미있습니다. LA에서 잘나가던 미국 방송작가가 50대 중반 퇴물이 된 후 우연히 부인과 함께 이탈리아 토스카나 시골 마을에 정착하면서 겪는 얘기입니다. 이 책에 묘사된 토스카나 사람들이 무엇보다 매력적입니다. 시끄럽고, 감정적이고, 내일은 모른 채 오늘만 즐기는 사람들이 벌이는 에피소드가 유쾌합니다. 몇 대목을 읽으며 낄낄거리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몇 년 전 이사를 오면서 처음으로 서가의 책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했습니다. 10상자가 넘는 분량의 책들을 버리거나 중고로 팔았습니다. 숱하게 이사를 다니면서도 끌어안고 있던 책들을 뭉치로 처분하자 내 속의 뭔가가 뭉치로 잘려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내 자신의 엄격한 기준 같은 걸 깨달았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버리고 ‘중세의 가을’은 남기기로 한 그 기준 말입니다. 옛날에 탐독했던 책들이 더 이상 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자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내 나름의 그 ‘분서갱유’ 때 살아남은 책들은 흔히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대학 시절 이념서적들을 탐독하기 전에는 소설에 빠져 살았습니다. 모친이 소설가인 덕분에 제 대학 시절 방은 온통 소설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특히 거의 모든 문학잡지들이 창간호부터 꽂혀 있었습니다. 만화책을 읽듯이 그 책들을 빼서 아무데나 펼쳐 읽던 것이 그 시절의 독서 습관이었습니다.

지금 소설은 상당히 진화한 형태로 제 독서권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세계문학전집 앱이 수년 전 출시됐을 때 초기 구매자들에게는 앞으로 발간될 모든 책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꽤 큰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 결단 덕분에 숱한 고전소설들이 지금 제 스마트폰에 들어와 있습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뉴스 읽기가 지겨워지면 앱으로 소설을 읽습니다.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등이 그런 지하철 독서 목록들입니다.

요즘 분명히 느끼는 건 책들이 제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탓에 옛날처럼 다독이 쉽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한계뿐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감도 있습니다. 숱한 지식을 쌓았을 법한 사람들이 어리석은 처신과 언행을 일삼고, 책이란 걸 접해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촌철살인의 지혜를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독서와 지식의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래도 저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아직은 믿는 쪽입니다. 독자님들, 책 읽기 좋은 가을이 깊어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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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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