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을 하면서 대학 강단에 딱 한 학기 동안 서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 4년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군요. 대학교수인 친구가 “후배 기자들 가르치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꼬시는 바람에 덜컥 맡긴 했지만 제 한계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3시간짜리 수업을 무슨 내용으로 채울지 처음에는 진짜 막막했습니다. 글쓰기라는 게 무슨 대단한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고살기 위해 글을 써온 처지에서 내세울 것도 별로 없어 결국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 많이 쓰게 하고, 많이 고쳐주자는 심정으로 학생들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단순무식해 보이는 수업 방식이 의외로 학생들에게 먹혔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시작 때마다 제가 빨간펜으로 빽빽하게 수정한 답안지를 받아들면서 무척 환하게 웃더군요. 꽤 많은 학생들이 “글을 보여준 사람도 처음이고, 고쳐준 사람은 더더욱 처음이에요”라고 말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학생들이 이 정도이니 우리나라 작문 교육의 현실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더 사명감에 불타 학생들 글 다듬느라 땀깨나 흘렸는데, 그게 학생들 글쓰기 실력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날 때 학생들로부터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받으면서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에 젖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 강단에 서본 짧은 경험으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행위에는 분명 희열이 따르는 듯합니다. 저는 그런 희열은 제 몫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직접 가르쳐본 결과 제가 가르치는 데 얼마나 자질이 부족한지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죠. 찬찬히 설명을 하는 쪽이 아니라 먼저 흥분해서 말이 빨리지기 때문에 교사로서는 꽝입니다. 밥벌이로 갈고닦은 글쓰기 덕분에 가르침의 희열을 잠시 맛보는 행운을 누려본 셈입니다.

요즘 대학 강단에서 보람과 희열을 느껴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얼어붙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대학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일명 ‘강사법’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네요.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법이 오히려 시간강사들을 대학에서 내몰고 있으니, 딱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꼴입니다.

제가 최근에 만난 시간강사들은 정부와 국회에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내년 신학기 준비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대학으로부터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여기서도 누군가가 분신이라도 해야 귀를 기울이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은 대학대로 죽을 지경인 듯합니다. 적립금이 많은 소수의 대학은 예외겠지만 10년간 등록금이 동결된 입장에서 법대로 시간강사 대우를 해주자면 시간강사 숫자를 줄이는 것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울상입니다. 결국 피해는 학생들의 몫입니다. 일부 대학은 시간강사를 줄이고 강의를 통폐합하다 못해 졸업 이수학점조차 줄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상아탑조차 스산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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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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