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카투사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에게 주한미군은 매우 복잡 미묘한 존재입니다. 내가 좋아서, 편하게 군대생활을 하려고 선택한 곳이지만 다들 궁금해하는 담장 안의 경험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비군복을 입고 미군 부대를 나서면서도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의 실체와 실력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양키 고 홈”의 외침 속에 미군 부대 안으로 걸어 들어갔던 586세대들은 특히 더 그랬습니다.

카투사로 복무한 제 또래의 경우 첫 훈련을 마친 논산을 떠나 미군 교육대가 자리 잡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다들 문화 충격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고 입고 자는 수준이 한국군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막사에서 끓여먹는 라면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지만, 번듯한 식당에서 고기를 썰던 그들의 식사 장면은 군기가 바짝 든 신병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수영장에 수북하게 쌓인 김장 배추를 절인다면서 훈련병들이 뛰어들어가 군홧발로 짓밟던 논산 훈련소의 기억 탓인지 너무나 깨끗한 캠프 험프리스의 식당과 음식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신병 시절 이런 놀라움은 수시로 찾아왔습니다. 야외 훈련 나가 실탄 걱정 없이 실컷 총을 쏴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논산 훈련소에서 탄피를 주우러 다니던 시간을 떠올리며 놀랐고, 용산 미8군의 주소가 캘리포니아의 우편번호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진짜 한국 속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하루 근무를 마친 병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영내를 한국인 용역 경비원이 지킨다는 사실을 안 순간에는 놀라움과 함께 “이게 군대냐”는 황당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다 카투사로 들어온 친구들은 미군들과 생활하며 싸움도 자주 했습니다. 미군 전체로 보면 매뉴얼과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일류임이 분명하지만 개개인의 미군들은 이류, 삼류로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군 복무 때의 기억을 떠올린 건 이번주 배용진 기자가 쓴 커버스토리 덕분입니다. 배 기자는 제가 30여년 전 경험했던 캠프 험프리스 앞의 풍경을 기사에 옮겼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 거의 세 배가 커진 세계 최대의 미군 부대 앞은 짐작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갈등의 현장이었습니다. 올해 들어서자마자 ‘미군 철수’를 외치는 세력이 몰려들어 캠프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이에 맞서 태극기 부대들이 매일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2월 27~28일로 확정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어떤 역사적 합의를 이뤄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미군 철수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불만인 세력은 어렵게 합의된 방위비 분담에 대해서도 당장 ‘굴욕성’ 운운하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도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완화와 평화에로 지향되고 있는 오늘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은 곧 ‘전쟁비’의 증액으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며 맹비판을 가했다고 합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커지는 요즘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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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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