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서 ‘할리우드 통신’을 보내오는 박흥진씨가 매주 저에게 선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장으로서 선물이 좋은 기사 말고는 뭐가 있겠습니까. 지난주에는 영화 ‘그린북’의 주연배우 비고 모텐슨 인터뷰를 보내오더니 이번주에는 ‘로마’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인터뷰가 날아왔습니다. 두 영화 다 2월 24일 열리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유력상 수상이 점쳐지는 수작들입니다. ‘로마’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 외국어로 된 영화로는 첫 수상이라고 합니다.

‘할리우드 통신’의 인터뷰들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긴 하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상당합니다. 이번주 게재한 쿠아론의 인터뷰에는 곱씹어볼 대목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영화 ‘로마’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들 궁금해하던 ‘그 지루한 흑백 장면과 소리’들이 어떤 장치인지를 짐작게 했습니다. 쿠아론은 ‘기억은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고독한 존재인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통해 애정으로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인 듯합니다. 그에게 어릴 적 그런 공간은 부엌이었고, 칼 가는 소리 등이 고향인 멕시코시티의 기억을 불러오는 장치였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제 어릴 적 기억을 영화로 찍으면 ‘로마’처럼 흑백일지, 총천연색일지부터 궁금해지더군요. 제 기억을 재창조해내는 공간과 시간, 소리가 무엇일지도 곰곰이 떠올려봤습니다. 그 시공간의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듯도 합니다. 그 시공간 속에서 저는 누구랑 어떻게 엮여 있는 걸까요. 일단 주말에 영화를 본 뒤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박흥진씨가 소속된 단체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The 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라는 곳입니다. HFPA라는 약자로 잘 알려진 이곳은 상당히 유명한 단체입니다. 1943년 결성돼 올해로 역사가 76년이나 됩니다. HFPA는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골든글로브상을 만든 주역이기도 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앞서 매년 1월 열리는 골든글로브는 HFPA 소속 기자들이 투표로 수상작품을 결정합니다. 골든글로브의 역사도 HFPA와 같아 올해 76회를 맞이했습니다.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의 자선 행사로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까지 골든글로브를 통해 2900만달러의 자선금을 모아 미국의 오락산업 관련 자선단체와 교육기관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현재 HFPA에는 전 세계 55개국의 각종 매체 종사자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대양주와 라틴아메리카 등 미국 바깥의 영화시장을 커버하는 잡지와 신문 소속의 기자들이 회원입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르피가로, 보그 등 유명 잡지들의 이름이 보이더군요. 박흥진씨 덕분에 주간조선도 이들 유명 매체와 콘텐츠를 공유하는 셈입니다. HFPA에서는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 작가 등 연간 400명을 상대로 인터뷰가 이뤄진다고 합니다. 연간 시사하는 작품만 300편이라니 거의 하루에 한 편꼴입니다. HFPA의 모토는 ‘종교 혹은 인종 차별이 없는 단결(Unity without Discrkmination of Relogion or Race)’이라고 하는데, 어디서나 말 많고 탈 많은 기자들이 이렇게 멋진 구호 아래 오래도록 단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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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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