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는데 저를 태운 택시기사가 “저기 좀 보라”며 혀를 차더군요. 저희 회사가 있는 상암동의 하늘공원 옆으로 택시가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번호 첫머리에 실린 사진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택시기사는 “나도 미터기 교체를 하러 저렇게 줄을 서야 하는데 저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언론 보도대로 미터기를 요금인상에 맞춰 업데이트하려면 무려 6시간 가까이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5년 전 택시요금 인상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는데, 되풀이되는 소동을 지켜보면서 한마디로 ‘후지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첨단 스마트폰 시대에도 살아남은 기계식 미터기나, 미터기 교체를 위한 장사진이나, 미터기 교체 현장에 나와 작업 개시를 허락하며 감독하는 공무원이나 진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택시 장사진을 지켜보고 있자니 얼마 전 싱가포르에 놀러갔다가 이용해본 ‘그랩’이 떠올랐습니다. 싱가포르에 가기 전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어떻게 이동할까를 고민하다가 ‘싱가포르산(産) 우버’인 그랩을 발견했습니다. 앱을 깔고 카드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가입이 되는데 실제 공항에서 이용해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군요. 운전기사도 친절하고 도요타 프리우스 차량도 새 차처럼 깨끗했습니다.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그랩을 몇 차례 이용했는데 가장 신기한 것이 요금이었습니다.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요금이 매번 달라졌습니다. 특정 시간대 그랩을 호출하는 사람들이 몰리면 요금이 올라가는 구조라고 합니다. 공급과 수요에 따라 요금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우리 택시의 기계식 미터기와 비교하면 신천지인 셈입니다.

저는 이 그랩이라는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번호 김회권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제대로 알았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0억달러, 도요타자동차가 10억달러, 현대기아차가 2억7500만달러 등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회사라고 합니다. 그랩은 동남아 시장을 놓고 우버와 경쟁하다가 작년 3월 우버가 그랩 지분 27%를 취득하는 대신 동남아 시장에서는 철수하기로 하면서 최소한 동남아 차량공유 시장에서는 절대강자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기사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의 우버와 싱가포르 그랩, 중국의 디디추싱, 인도의 오라 등 세계 4대 차량공유 업체에 모두 투자하고 있는 손정의 회장의 구상입니다. 그는 차량공유 업체가 앞으로 스마트폰의 지위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 듯합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박을 치는 것이 구글과 애플처럼 플랫폼을 통제하는 회사인데 미래의 자동차 업계도 플랫폼이 될 차량공유를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갈린다는 겁니다. 손정의 회장은 2020년 중반 자율주행차로 운행하는 승차공유 서비스를 내놓겠다며 도요타자동차와 함께 모네테크놀러지라는 회사도 세웠다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자동차가 반도체의 최대 고객이 된다는 것도 그가 차량공유 업체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택시 업계의 반발에 막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우리의 차량공유 서비스 현실에 비춰보면 그랩의 약진이나 손정의의 구상은 그야말로 딴세상 얘기입니다. 미터기를 교체하려는 택시의 장사진만큼이나 우리의 미래가 뭔가에 꽉 막혀 있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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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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