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시사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마감시간 임박해 터져나오는 대형 뉴스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딱 그렇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도 모든 뉴스를 빨아들일 블랙홀의 뚜껑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세기의 담판, 승부사, 두 지도자 간의 결단 같은 말들은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협상에 임하는 두 사람의 즉흥성과 돌발성을 감안하면 예측이 쉽지 않고 진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답답한 심정에 전문가들에게 전화만 여러 차례 돌렸습니다. 하지만 다들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다”는 말만 웅얼거리더군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합의 내용이 나와 봐야겠지만 전에도 북핵 관련 미·북 합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라고 했습니다. 합의 내용과 합의 내용이 지켜지는 것과는 또 별개라는 얘기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만나는 순간,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와 트럼프의 변호사이자 해결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하원 증언으로 소용돌이 치는 워싱턴 기류를 지켜보면 진짜 변수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이번 하노이 회담이 도대체 북한 비핵화의 끝이냐 시작이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말 잔치와 시늉만으로 뭉개다가 결국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 전문가는 북한 비핵화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비유하더군요. 사뮈엘 베케트의 이 부조리극에서 ‘고도’는 결국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도가 누군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릴 뿐입니다. 고도(Godot)라는 이름이 영어의 God(神)와 프랑스어의 Dieu(神)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으나 고도에 대한 정의 역시 결국 관객의 몫으로 남습니다.

지금 북한 비핵화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고도가 누군지 모르는 것처럼, 북한 비핵화의 실체가 뭔지 다들 생각이 제각각일지 모른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비핵화는 하겠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괴상한 역설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썼는데 뉴스가 뜨네요. 역시 블랙홀급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회담장을 떠났다는 뉴스입니다. 뭔가를 기대하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급반전입니다. 협상가와 승부사가 벌이는 도박이 쉽게 끝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협상을 다시 이어갈까요.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나는 거래 자체를 좋아해서 거래를 한다” “나는 거래를 통해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같은 말들을 했습니다. ‘크게 생각하라(Think Big)’는 신념을 바탕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놓고 자기 주도로 일괄타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도 했습니다. 하노이에서 그가 ‘스몰딜’에 빠질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스몰딜’은 그의 체질이 아닌가 봅니다. 그가 합의문 결렬 직후 밝힌 대로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 알파”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양측은 미래에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 백악관의 입장인데 이게 협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인지, 미세먼지에 뒤덮인 창밖 풍경만큼이나 앞길이 불투명해 보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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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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