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서울중앙지검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사옥.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11월 8일 서울중앙지검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사옥. ⓒphoto 조선일보 DB

SK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를 사실상 전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홍(50)씨는 무속인이라고 검찰이 밝혔다. 그가 역학을 공부한 역술인인지, 신들린 무속인인지는 정확지 않다. 서울 강남 역술가에선 김씨가 증권사에 다녔다가 역술인이 됐다는 점에 대해 “그런 경우엔 대부분 신(神)이 들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매출 293억 회사 지분 12.9% 소유

김씨는 ‘에이 플러스 에셋 어드바이저’라는 회사의 지분 12.95%를 소유한 대주주다. 이 회사는 보험·금융상품 판매, 부동산 임대 컨설팅, 재테크 컨설팅, 대출 중개 및 금융자문 컨설팅을 하는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회사다. 2011년 매출액(6월 30일 기준)은 293억원. 김씨는 이 회사 지분 18.5%를 갖고 있다가 2011년 1월 유상증자를 거쳐, 6월 현재 12.95%의 지분을 갖고 있는 3대 주주다.

김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금융·재테크 컨설팅을 주업종으로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재계엔 “2000년대 초반 금융 분야의 지인들과 어울리던 최태원 회장 형제가 선물투자에 해박한 김씨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된 것으로 안다”는 말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재계에 “증권업계 출신이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재력가들의 선물투자를 대행해 줬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부를 쌓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도사급 역술인’으로 서울 강남에서 이름을 떨쳤다는 말도 있다. 주간조선이 강남 역술계 인사들에게 탐문했으나, 그에 대해 상세하게 아는 역술인은 찾지 못했다.

서울 강남에서 10년 이상 역학원을 운영해온 한 고수급 역학인은 “김원홍이란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만약 그가 강남에서 활동을 했다면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강남의 다른 역학인은 “재벌가를 상대하는 역술가는 통상 일반인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며 “웃기는 얘기 같지만 일반인을 만나면 자신의 ‘몸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유명 무속인 역시 “김원홍이란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1961년 경주서 태어난 ‘신동’

1961년 경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릴 적 ‘신동’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고 한다. 그의 학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가 어떻게 하다 역학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한때 강남 일대에서 ‘도사급’ 대접을 받았고, 각계 유력층 인사들이 그를 찾았다는 말만 소문으로 떠돈다.

김씨는 이틀 뒤의 주가지수를 정확히 맞히는 등 신통력을 발휘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그를 각별히 신뢰하며 ‘선생님’으로 대접했다고 한다. 2010년 김씨의 부친이 숨졌을 때 최 회장이 직접 문상을 했고, 49재에 다시 한 번 찾아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그와 최 회장과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김씨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8년 전인 2003년이다. 당시 손길승 SK 회장이 SK해운 자금 7800억원을 횡령, 해외 선물투자를 했다가 적발된 이른바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 것이 계기였다. 검찰은 2003년 분식회계 당시 손길승 회장에게 해외 선물투자 자문을 해준 사람도 김씨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당시 손길승 전 회장의 선물투자에 관여하면서 6000억원 넘게 손실을 끼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손 전 회장은 90% 이상의 손실을 봤고, 횡령혐의로 구속기소까지 됐지만 김원홍씨에 대한 SK의 신뢰는 식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그를 SK해운 고문에 앉힌 것이 이를 방증한다.

증권가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선물투자에 손을 댄 것도 김씨의 권유 때문”이란 말이 돌고 있다. 그가 최 회장에게 ‘올해 재물운이 좋다, 손 큰 투자를 할 시기가 왔다’며 투자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물투자 초기 김씨는 최태원 회장의 돈을 서너 배로 불려주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고, 이로 인해 최 회장뿐 아니라 최 회장 가족과도 교류하는 막역한 사이로 관계가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워커힐서 열린 공연제

SK그룹은 무속인과 일정한 인연이 있다. 최태원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회장은 단전호흡에 깊이 매료됐고, 영(靈)과 혼(魂)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 5주기(1998년 8월 사망)를 맞은 2003년 8월 당시 불거진 분식회계 사건으로 크게 흔들렸던 SK는 계열사인 서울 워커힐에서 대규모의 공연제(祭)를 개최했었다. 이 자리에 ‘법사’라고 불리는 한 무속인이 참석해 일종의 위령제를 지내며 행사를 주관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공연제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최종현 회장을 기리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제사라기보다는 하나의 퍼포먼스를 연상케 했다”고 전한 바 있다.

김씨의 영향력과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그에게 ‘증여세’가 과세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그의 계좌에서 움직였던 약 6000억원대의 선물투자금 중 2000억원에 대해 최태원 회장이 건넨 ‘증여’로 판단, 김씨에게 600억원대의 증여세를 부과했고, 김씨는 이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심판원이 김원홍씨 계좌에서 움직인 2000억원을 ‘증여’로 판단한다면, 이는 김씨가 SK로부터 2000억원이란 천문학적 금액을 그냥 받았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최태원·최재원 형제는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지 못했다. 최태원 회장은 1998년 선친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을 당시, 부과된 상속세 700억원을 내지 못해 빚을 얻어다가 5년간 분할해 납부했다. 3조원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금화할 수 있는 재산은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재계에는 이번 사건을 전후해 최 회장 형제가 평소 알고 지내던 재벌 3세 등에게 수억~수십억원씩 돈을 빌렸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최 회장 형제는 △미래저축은행에서 1000억원 △제일저축은행에서 200억원 △스위스저축은행 200억원 △삼화저축은행에서 70억원 등 수천억원대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억원 줬다면 증여, 안 줬다면 횡령 의혹

“김원홍씨 계좌의 2000억원이 사실상 최태원 회장 형제의 돈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현금이 모자라 선물투자에까지 손을 댄 최 회장 형제가 역술인에게 2000억원을 그냥 증여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조세심판원이 김씨의 불복을 인정한다면, 이는 과세 당국이 ‘SK가 문제의 2000억원을 김씨에게 증여한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는 ‘문제의 2000억원이 누구 돈이냐’ 하는 의문과 직결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최 회장 형제를 둘러싼 의혹, 나아가 비자금 조성 의혹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번 사건이 터지기 8개월 전인 지난 3월 20일 홍콩으로 출국,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다. 검찰은 수차례에 걸쳐 SK 측을 통해 그의 귀국을 요청했지만, SK는 “고문직에서 물러난 사람이라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김씨는 한때 증권사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해운의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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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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