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대규모 기업 투자
삼성전자 증설 허가 LCD 생산라인 추진
장쑤성의 대표적 기업도시로
쑤저우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운하에서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photo 신화통신
쑤저우 구도심을 가로지르는 운하에서 뱃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photo 신화통신

지난 1월 2일 원단(元旦) 연휴의 끝무렵, 쑤저우(蘇州) 옛 도심의 관문인 반문(盤門)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반문 아래를 지나는 운하에도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사람과 선박이 동시에 드나들 수 있는 반문은 경항(京杭·베이징~항저우) 대운하의 중간 통과점이다. 자전거를 개조한 삼륜차(三輪車)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동방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쑤저우에는 경항대운하를 주축으로 도시 곳곳에 지류 격인 인공 하천들이 뻗어있다. 시내 주요 지점으로는 배를 탄 채 이동이 가능하다. 쑤저우의 수상 교통로로 쓰이던 인공 운하는 지금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하천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들은 손님을 태우고 노래를 부르며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듯했다.

나이가 제법 든 할머니 뱃사공들은 알아듣기 힘든 쑤저우 방언으로 노래를 흥얼댔다. 고음과 꺾어지는 음이 독특하다. 쑤저우 일대 방언으로 부르는 곤극(崑劇)은 쑤저우 쿤산(崑山) 일대에서 비롯된 전통 가무극이다. 여성적인 곤극은 남성적인 베이징의 경극(京劇)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가락으로 이름이 높다.

오왕 합려의 무덤 ‘호구’가 있는 곳

인구 830만명의 쑤저우는 장쑤성(江蘇省)의 성도 난징(南京)과 함께 장쑤성을 대표하는 도시다. 장쑤의 ‘쑤’는 쑤저우에서 따온 말이다. 쑤저우는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의 왕 합려(闔閭)가 도읍으로 삼은 곳이다. 쑤저우의 옛 이름도 동오(東吳), 오도(吳都)다. 오왕 합려는 재상 오자서(伍子胥)로 하여금 고소성(姑蘇城)을 짓게 하고 쑤저우를 도읍으로 삼았다.

쑤저우 기차역 북쪽에는 오왕 합려의 무덤인 ‘호구(虎丘)’가 있다. 합려를 매장했을 때 백호가 나타났다 하여 호구(호랑이 언덕)란 이름을 얻었다. 오왕 합려는 천하의 보검을 수집한 인물로 유명하다. 호구 중턱에는 오왕 합려가 검으로 바위를 두 동강냈다는 ‘시검석(試劍石)’과 합려가 죽을 때 소장했던 보검 3000자루를 파묻었다는 ‘검지(劍池)’가 남아있다.

후일 6국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합려의 보검을 노리고 이곳을 파헤쳐 지금은 ‘못(池)’이 됐다. ‘호구검지’라는 붉은 글씨가 적힌 바위 앞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호구 입구에는 목검과 플라스틱 칼을 파는 잡상인들로 가득했다. 호구 정상에 있는 호구탑(운암사 탑)은 기울어져 ‘동방의 피사의 사탑’으로도 유명하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토사구팽(兎死狗烹) 등의 고사가 태어난 곳도 쑤저우다. 오왕 부차(夫差)가 아버지(합려)의 복수를 위해 섶나무를 깔고 자며 복수를 다짐한 것이 와신상담 고사의 시작이다. 합려는 월나라 구천(句踐)과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결국 부차는 월나라를 멸망시키고 월왕 구천을 포로로 잡아 쑤저우로 끌고 왔다.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에서 쑤저우로 끌려온 월왕 구천은 노예 생활을 하며 부차의 똥을 핥아먹는 등 부차에게 신임을 얻는다. 결국 구천이 곰 쓸개를 빨아먹으며 부차에게 복수했다는 것이 와신상담의 배경이다. 이때 구천의 책사 범려는 애첩 서시(西施)를 부차의 첩으로 들여보내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토사구팽’을 염려해 은거한다.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월왕구천세가’ 편에서 처음 언급된 토사구팽 고사는 후일 천하를 통일한 한(漢)고조 유방(劉邦)의 심복 한신(韓信)이 인용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저장성 항저우와 경쟁관계

‘상유천당, 하유쑤항(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이란 말처럼 쑤저우의 경치는 저장성 항저우와 줄곧 비교대상이었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항저우에서 죽으면 원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隋)양제가 경항대운하를 뚫은 목적도 후궁들과 함께 쑤저우와 항저우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다.

쑤저우 시내 곳곳에는 옛 부호들이 세운 전통 정원들이 즐비하다. 송대에 세워진 창랑정(滄浪亭)을 비롯해 사자림(獅子林·원대), 졸정원(拙政園·명대), 유원(留園·청대)은 유네스코 4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특히 졸정원과 유원은 베이징의 이화원, 허베이성(河北省) 청더(承德·옛 열하)의 피서산장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名園)에 속한다.

중국의 옛 고위 관료들과 대지주들은 남은 여생을 쑤저우에서 보내곤 했다. ‘물고기 어(魚)’자와 ‘벼 화(禾)’자로 이뤄진 ‘쑤(蘇)’라는 글자처럼 쑤저우는 물산이 풍부했다. 쑤저우 북쪽 양청후(陽澄湖)에서 건져 올린 민물털게는 인근 상하이에서 최고로 치는 요릿감이다. 또 쑤저우는 항저우와 함께 미녀들이 많기로 유명해 첩을 들이기도 쉬운 편이었다고 한다.

현재 쑤저우는 장쑤성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다. 쑤저우는 상하이, 항저우로 이어지는 장강(長江) 삼각주의 핵심 도시다. 쑤저우는 일찍부터 상하이와의 연계 발전을 표방해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당초 항저우가 상하이의 빨대효과를 염려해 협력에 소극적으로 나오다 뒤늦게서야 상하이와의 연계발전에 나서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화둥(華東)지방의 금융과 물류의 중심인 상하이와 쑤저우의 거리는 지척이다. 지난해 7월 후닝(?寧·상하이~난징)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중간 정차역인 쑤저우는 상하이와의 철도 이동 시간이 24분으로 줄어들었다. 상하이와 쑤저우는 자동차로도 1시간 거리다. 상하이에서 쑤저우로 향하는 고속도로 연변에는 자동차 공장들이 즐비해 ‘중국의 디트로이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쑤저우 구도심에서 상하이로 가는 길에 있는 쑤저우 공업원구는 쑤저우의 경제성장을 주도한다. 쑤저우 공업원구는 지난 1994년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과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총리(현 선임장관)가 합작해 조성한 곳이다. 화교(華僑)인 리콴유 전 총리는 상하이와 가까운 쑤저우를 투자처로 선택해 대규모 기업투자를 단행했다.

쑤저우 구도심 외곽에 있는 쑤저우 공업원구에는 삼성전자, 락앤락 등 우리 기업들도 대거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쑤저우 공업원구에서 반도체와 LCD 등의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로부터 증설 허가를 받은 삼성전자의 7.5세대 LCD 생산라인이 조성될 곳도 쑤저우 공업원구다.

쑤저우 공업원구에는 삼성 계열의 신라호텔도 있다. 중국의 부동산개발회사인 젠위(建屋)가 운영하는 호텔로 신라호텔이 브랜드를 빌려주고 위탁경영하고 있다. 신라호텔의 첫 번째 해외진출 사례로, 쑤저우를 찾는 삼성 관계자들이 자주 이용한다. 이 밖에 쑤저우의 현급시인 장자강(張家港)에는 포스코가 스테인리스스틸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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