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문재인 케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대국민 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더 이상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는 현재 의료체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과대 포장된 정책이다.”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이 ‘문재인 케어(care)’에 대해 한 말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미소퀸의원을 운영하는 이용민 소장은 문재인 케어를 가리켜 딱 잘라 ‘대국민 기만’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케어에 반기를 든 건 이 소장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케어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8월 26일 300여명에 달하는 의사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반대 피켓’을 들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의사들은 “정부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투입되는 문재인 케어의 재정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의사 적정수가를 보전하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재인 케어는 오는 2022년까지 3800여개의 비급여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으로 편입시켜 비급여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MRI·초음파 등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는 모두 급여 또는 예비급여를 통해 급여화된다. 현재 60%대 초반에 머문 건강보험 보장률을 5년 내 70%대로 높이는 게 골자다. 정부가 내세운 취지만 놓고 보면 ‘문재인 케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대체 왜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에 반발하는 것일까.

이용민 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단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면 막대한 추가예산이 필요하다. 정부는 5년간 30여조원 이상만 추가투입하면 보장률을 70%대로 올리고 치료적 비급여를 전부 급여화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5년 이후는 어찌할지 대안이 없다. 게다가 각 종별 의료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한 비급여에 대한 정확한 시술 종류와 시장 규모도 아직 파악된 게 없다.”

이 소장의 말대로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필요한 총 30조6000억원의 재원을 건강보험료의 급격한 인상 없이도 조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당장 올해 4834억원과 2018년에 3조7184억원이 들어간다. 이어 2019년에는 5조590억원, 2020년에는 6조922억원, 2021년에는 7조1194억원, 2022년에는 8조1441억원이 단계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여기에다 보건복지부는 문재인 케어를 위해 2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누적된 적립금은 20조656억원이다.

비급여가 필요한 이유

하지만 이용민 소장은 “누적된 적립금이 20조원이 넘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중기 재정수지 전망 자료를 내놓으며 2019년부터 적자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6~2025년 사회보험 중기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내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도 2023년부터 바닥난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의료비가 증가하면서 1인당 급여비가 2016년 96만원에서 2025년 180만원으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2022년까지 기재부가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를 매년 건보재정에 지원하게 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랏돈이 추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 소장은 “문재인 케어 발표 이전에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예상했던 정부 기관들이 지금은 재정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8월 31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 의료 이용량 증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김주경 국회 입법조사관(보건학 박사)은 “문재인 케어가 실행될 경우 비용의식이 낮아진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리는 쏠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며 “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억제돼 있던 잠재적 의료 수요까지 가시화할 경우 정부가 추계한 비용을 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서 건강보험료를 지난 10년 평균 증가율인 3.2%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국회 입법조사처는 “건보료를 연 3.2% 수준으로 올리면서 보험재정 지출을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강현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과대학장은 문재인 케어가 의료산업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이다. 이강현 학장의 말이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돼 ‘비급여 시장’이 엄격하게 제한되면 로봇수술과 같은 새로운 의료서비스를 만나는 일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해야 하며 시간과 돈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급여 항목이 급여화가 되면, 연구개발 시도 자체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 학장이 이렇게 말하는 까닭이 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서 새로운 의약품이나 의료서비스는 우선 비급여로 책정돼 의료시장에 들어온다. 이후 환자들의 진료를 통해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면 건강보험 급여로 전환되는 과정을 밟는다. 가령 ‘로봇수술’은 현재 비급여 항목으로 환자가 100% 부담하는 새로운 의료기술이다. 건강보험에 적용받지 않더라도 로봇수술을 받고 싶은 환자들이 있다면 병원은 이를 제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기기 개발업체와 병원은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해서 첨단 의료기기 도입과 신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현재 의료체계에서 비급여 항목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정해진다. 그런데 이를 급여로 전환하려면 정부는 공식 가격(보험수가)을 정해야 한다. “만약 보험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책정되면 의료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이 학장은 예상한다. 그에 따르면 비급여 항목이 급여화가 될 경우,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새로운 의료기기와 기술을 도입하려는 의사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학장은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를 설명했다. 가령, 중병에 걸린 환자가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이들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거나 막 개발을 마친 신약이나 치료법에 희망을 건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무리하게 급여화를 추진한다면, 환자들은 선진 의료기술을 가진 외국으로 의료망명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3분 진료’가 생긴 원인부터 해결해야

비급여가 급여화가 되면 현재보다 낮아지는 의료수가 역시 큰 문제다. 의료수가는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의사나 약사 등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의료행위에 대해 제공하는 비용을 말한다. 의료수가에 대해 최대집 전국의사총연합 상임대표는 “현재 의사들은 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에서는 큰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구조”라면서 “개원의들은 비급여 항목에서 수익을 내서 병원 임대료, 간호조무사 월급 등을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 최대집의원 원장인 최 대표는 내과를 기준으로 개원의들의 한 달 평균 수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급여가 적용된 환자

1인당 초진비용은 1만5000원이다. 환자가 한 달 이내에 병원을 다시 찾는 경우인 재진비용은 1만2000원이다. 주 5일 기준, 병원이 하루 평균 50명 내외의 환자를 받았을 경우 발생하는 수입은 대략 1500만~2000만원이다. 여기서 임대료, 직원 월급, 의료기기 사용비용 등을 제외하면 월 매출액의 절반에 못 미치는 금액이 순수익금이라고 한다. 은행대출을 통해 병원을 개업한 의사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최 대표는 적정한 의료수가의 책정 없이 문재인 케어가 실행되면, 병원 문을 닫는 개원의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 대표의 말대로 현재 의료수가는 낮게 책정된 것일까. 2015년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는 건강보험수가의 원가보전율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원가보전율이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행위를 한 후 정부에서 받으라는 비용을 원가로 나누어 100을 곱한 비율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진찰료의 원가보전율은 56.5%, 입원료의 원가보전율 46.4%, 주사료의 원가보전율 69.9%, 처치 및 수술료의 원가보전율 77.6% 등으로 모두 원가 이하였다. 급여와 비급여의 항목을 모두 합한 의료행위도 결과는 비슷했다. 상급병원 84.2%, 종합병원 75.2%, 병원 66.6%, 의원 62.2% 등 전체평균은 69.6%였다. 최 대표에 따르면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실시하기 전에 적정한 의료수가 책정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의료수가는 언제부터 이렇게 책정됐을까. 1977년 처음으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197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공무원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관행수가보다 약 45% 낮은 수준에서 의료보험수가를 책정했다. 이후 농어촌지역(1988년)과 도시지역(1989년)까지 대상자와 급여 범위를 확대하면서 국내 건강보험은 최단기간 전국민 의료보장을 이뤘다.

그렇지만 의료보험 도입 초기의 저수가 체계가 40년간 이어지면서 병원은 소위 ‘3분 진료’라고 불리는 박리다매식 진료를 통해 손실을 보전해왔다. 최 대표는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병원은 환자를 최대한 많이 진료해 수익을 거뒀다”면서 “3분에 환자 1명을 진료하는 ‘3분 진료’라는 말이 생기게 된 배경이 낮은 의료수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낮은 의료수가 문제는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병원이) 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해 의료계와 환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신포괄수가제의 함정

문재인 케어에 포함된 ‘신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포괄수가제란 500개가 넘는 질환에 대해 치료 내용과 상관없이 정액으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기존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한 입원료, 검사료 등 진료를 한데 모아 미리 정한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신포괄수가제는 과잉진료를 막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반대인 과소진료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은 정해져 있으니, 의사가 치료원가를 낮추면 더 많은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여서다. 포괄수가제에서는 수술방법에 상관없이 의사가 받을 수 있는 수술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술을 할 때도 비싼 실을 쓰지 않고 값싼 실을 쓸수록 이익이다. 환자가 뱃속에 어떤 실이 들어갔는지 알 방법이 없어서다.

문재인 케어의 실행 여부를 두고 보험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급여 항목은 그간 민간보험인 실손의료보험이 보장해왔다.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를 입어 치료를 받을 경우,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의료비를 정해진 한도 내에서 보장해 주는 상품이다. 실손의료보험은 전체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다. 만약 문재인 케어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국민들은 실손의료보험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가 실행되면 실손보험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 문재인 케어가 모든 질병을 케어할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급여 항목들이 단번에 급여 항목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을 없애는 대신 ‘예비급여’라는 비급여와 급여의 중간 성격을 띤 새로운 단계를 만들었다. 예비급여에 포함된 항목들은 급여 항목의 자기부담금(30% 안팎)보다 높은 부담금을 적용한다. 예비급여에 대해 이용민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예비급여라는 이상한 개념을 만들어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사실상 예비급여는 자기부담금이 90%에 달해 비급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문재인 케어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현재 의료체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다.”

문재인 케어를 둘러싸고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크다. 대한의사협회, 전국의사총연합, 대한평의사회 등 대형 의료단체들이 문재인 케어에 반기를 든 상황이다. 문재인 케어를 취재하며 들었던 말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의사의 말이 있다.

“정부가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에 반기를 들 의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정책 진행 과정과 재정조달 방법에서 보완해야 할 점들이 너무 많다. 5년 안에 성과를 거둘 생각으로 졸속으로 정책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많은 혜택을 누린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책임을 지는 사람들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의료계의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의료정책을 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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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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