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우체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한 한 할머니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2월 28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우체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한 한 할머니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대구 동구에 사는 62살 정금자씨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바지에 백팩을 메고 매일같이 요가 수업을 받는 정씨는 스스로도 ‘늙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바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카카오톡을 보내고 몇십 분씩 유튜브를 보곤 했어요. 웬만한 검색은 다 할 줄 알고 ‘스마트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아니었나봐요.”

문제는 지난 2월 중순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후에 생겼다.

“뭐지? 심각한 건가? 뉴스만 멍하게 보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어요.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는데 마스크 구할 곳이 없었지요.”

약국이나 편의점에 들러보았지만 마스크를 파는 곳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프라인에서 마스크 사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정씨같이 비교적 나이 든 사람밖에 없었다. 웬만한 젊은 사람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스크를 구입했다.

“저도 따라해 보려고 검색을 해봤는데 앱을 깔아야 하더라고요. 쿠팡 앱을 찾아 설치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그런데 가입하고 물건을 검색하는 데만 한나절이 꼬박 걸렸습니다. ‘로켓’은 또 뭐고 배송은 어떻게 된다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남들은 자녀가 대신 마스크를 사서 보내준다는데 아들과 소원한 정씨 부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크가 없으니 밖에 나가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기더군요. 라면과 쌀 외에 집에 먹을 것이 없었어요.”

결국 정씨는 마스크도 없이 동네 마트에 들러 며칠 동안 먹을거리를 직접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마트에 다녀온 후 며칠간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어요. 동네에도 확진자가 여럿 있다는데 그 사람들과 접촉했을까봐 마트도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정씨가 2월 말 차려 먹었던 밥상은 단출했다. 김, 김치, 계란, 밥, 김치찌개. 일주일 넘게 신선한 과일이나 육류는 섭취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얼마 전, 동네 통장이 들러 나눠준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마트에 다녀온 덕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씨만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금자씨의 동네 친구 김옥순씨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겨우 카카오톡만 보내는 그는 TV 뉴스를 보고 나서야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잘 몰라서 몇 날 며칠을 우체국을 찾아가서 허탕을 쳤어요. 나중에 서울에 사는 아들이 전화가 와서 어느 우체국에 마스크가 몇 장 들어온다고 딱 알려주더군요. 신기해서 ‘넌 그걸 어떻게 알았니’ 물어보니까 인터넷에 있대요. 난 그것도 몰랐지.”

사실 이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디지털 정보격차’라는 이름으로 ‘낡은’ 사회문제로 취급당하던 것이다. 웬만한 장·노년층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줄 아는 상황에 ‘정보화교육’이니 ‘정보격차’ 같은 단어는 몇몇 최신 IT기술에만 해당하는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그간 정보격차 문제를 오해하고 있었다. 몇 가지 통계자료를 살펴보자.

인터넷뱅킹 이용하는 70대 5.4%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정보화진흥원과 함께 매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조사 결과를 보자. 먼저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에 대한 자료다. 유무선 디지털 기기를 보유하고 있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지를 살펴봤을 때, 일반 국민의 접근성을 100으로 한다면 장·노년층(50대 이상)의 접근 수준은 90.1로 꽤 높은 편이다. 장·노년층도 일반 국민 못지않게 인터넷 접속을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활용 능력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를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는지 역량 수준을 평가해 보면 일반 국민을 100으로 볼 때 장·노년층의 능력은 50.0밖에 안 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마트폰으로 무선 네트워크를 설정할 수 있는 장·노년층은 51%에 그친다. 전체 국민 79.8%, 10명 중 8명이 할 수 있다고 대답한 것과는 사뭇 다른 수치다. 필요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이용할 줄 아는 장·노년층은 39.7%에 그친다. 컴퓨터로 문서나 자료 작성을 하지 못하는 장·노년층은 80.5%나 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이용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체 국민의 인터넷 쇼핑 이용률은 62.0%다. 특히 20대는 96.4%, 30대는 91.3%가 인터넷 쇼핑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 수치는 50대로 가면 급격히 떨어져 60대는 17.5%만이 인터넷 쇼핑을 이용한다. 70대 이상은 11.2%에 그쳤다. 인터넷 뱅킹 이용률은 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난다. 30대의 93.3%는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만 60대는 22.9%, 70대 이상은 단 5.4%만이 인터넷 뱅킹을 이용한다.

강조하자면 이들 장·노년층이 스마트폰을 아예 다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장·노년층은 스마트폰과 PC로 인터넷 검색을 능숙하게 할 줄 알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동영상도 즐겨 본다. 2019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서도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동영상 시청률은 67.9%,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이용률은 94.8%나 됐다.

그간 ‘정보격차’ 문제는 스마트폰이나 PC 같은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이용률을 높이고 스마트폰을 기초적으로 다룰 줄 아는 것이 정보격차를 줄이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생활 깊숙이 침투한 지금에 와서는 접근성만으로 정보격차를 해소할 수 없게 됐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능력을 두고 정보 소외계층을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정보격차 문제를 ‘디지털 정보격차’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는 이유다.

이향수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디지털 정보격차가 예전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디지털 기술로 정보를 얻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의사 결정을 하고 경제적 활동 영역을 넓히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더욱 커졌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들도 정보격차

사실 그간 한국 사회는 정보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업 닐슨코리아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세대별 모바일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앱)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를 보면 만 55~69세인 베이비붐 세대의 유튜브 점유율은 80%를 넘어섰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60대의 77%가 유튜브를 이용한다는 결과도 있다. 카카오톡 같은 메시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장·노년층은 더 많다. 검색과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롭게 이뤄지다 보니 더 이상 정보화교육 같은 정보격차 감소 노력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주현 연세대 바른ICT연구소 연구교수는 다른 차원에서 정보격차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노년층의 경우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오주현 교수가 조사해 보니 베이비붐 세대 내에서도 정보격차가 크게 존재하고 있었다. 디지털 기기 이용자의 24.7%는 로그인이 필요 없이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는 데 그쳤고, 온라인 계정을 이해하는 집단은 22.8%,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집단은 26%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디지털 기기를 아주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다.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전자상거래 이용 가능 여부다. 오주현 교수에 따르면 인터넷 뱅킹, 온라인 쇼핑을 포함하는 전자상거래는 단지 인터넷에 접속해서 물건을 검색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계정을 만들고 결제 방식을 이해하고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이관한 다음 결제까지 마쳐야 전자상거래가 완료된다. 진입장벽이 꽤 높은 셈이다. 그런데 이 전자상거래 이용 여부는 삶의 질을 바꿀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국가적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더욱 그렇다.

경북 경주시에 사는 71살 오형준씨는 인터넷 뱅킹을 사용할 줄 모른다. 평소에는 산책도 할 겸 은행을 다니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꽤나 부담스럽다. 거주하는 곳 근처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는 월세를 이체하기 위해 은행에 갈 수 없어 집주인에게 미뤄 달라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휴지가 다 떨어졌는데 마트에 나가지 못해 머뭇거리니까 대구에 사는 딸이 휴대폰으로 배달을 시켜서 보내주더라고요.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어서 물어봤는데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자녀의 도움을 받기 민망하다는 오씨는 조만간 다시 집 밖으로 나설 예정이다.

명절 때마다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으로 KTX 표를 예매하지 못해 창구에 길게 늘어서는 노인들의 모습과 감염 위험이 큰데도 마스크나 식자재를 구하지 못해 집 밖을 나서 줄을 서는 노인들의 모습이 겹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즘은 행정서비스나 사회복지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서비스를 신청할 때가 많다. 복지서비스를 신청하려 해도 정보를 구해야 할 텐데 이건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주민센터나 보건소 등에서도 안내받을 수 있지만 행정기관에서도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지금 존재하는 정보격차는 단순히 정보에 접근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떠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느냐, 주어진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살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정보격차를 크게 느끼는 집단을 두고 디지털 소외계층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눠 파악하고 있는데 장애인, 장·노년층, 다문화가정 등이 대표적인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 디지털 소외계층은 딱 디지털 정보격차의 문제에서만 소외계층으로 분류되곤 한다.

대구에 사는 57살 정호용씨는 경제적 취약계층은 아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한 지는 3년 가까이 되지만 남은 퇴직금과 개인연금이 있어 혼자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고 정씨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스마트폰은 물론 인터넷도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하는 정씨는 지금 “완전히 고립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24시간 TV 뉴스를 시청하며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친구들이 카톡으로 앱을 하나 설치해 보라고 보내줬는데 이걸 다운받아도 되나 고민하다가 안 받았어요. 스팸문자 같은 거일지도 모르잖아요. 편의점에 가려고 해도 마스크 단단히 쓰고 나가야 하는데 마스크도 없네요. 겨우 몇 장 구했는데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집 안에만 있어요.”

디지털 취약계층 위한 디지털 조력자 필요해

이향수 건국대 교수는 “단순히 경제적·물리적 기준으로만 취약계층을 한정 짓지 말고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디지털 소외계층 역시 아우를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는 저소득층, 농·어촌 지역 같은 경제적·물리적 기준으로 디지털 정보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디지털 소외계층을 정의하는 데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디지털 정보격차를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번처럼 국가적 재난 상황이 다시 닥칠 때는 물론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따라잡지 못한 소외계층이 충분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일이 반복해 발생할지도 모른다.

만약 장·노년층에게 ‘디지털 조력자(Digital Supporter)’가 함께한다면 이 문제는 좀 더 쉽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알려주고 도와주는 동거 자녀 같은 존재가 조력자다. 정씨에게 조력자 가족이 있다면 코로나19 확진자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마스크를 구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2017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부부나 혼자 사는 노인단독가구는 전체 노인인구의 72%에 달했다. 대다수의 노인들이 자녀의 도움을 곧바로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은 생소하고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오주현 교수는 지금까지 대다수 ‘정보화교육’이 여럿이 한자리에서 일괄적인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는 집합교육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각자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가 다르고 필요한 기술 수준 역시 다르기 때문에 집합교육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어르신들 같은 경우에는 한 번의 교육으로 완벽하게 학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집합교육은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오 교수가 제안하는 것은 공공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조력자를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 반복적으로 물어보거나 아예 대신 기술을 알려줄 조력자가 필요한데 개인이 해결할 문제로만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측면에서 ‘노·노케어’의 일환으로 동년배 노인들이 강사가 되어도 좋고 청소년 봉사활동 시간을 활용해 세대 간의 단절을 메울 수 있는 청소년 조력자를 만들어도 좋다.

“종종 디지털 소외계층이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들고 주민센터에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디지털 기술에 대해 조언을 받을 곳이 없다는 얘기지요.”

디지털 조력자를 통해 디지털 소외계층의 정보격차가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힘들게 줄을 서서 KTX 표를 예매하는 노인들이 줄어들 것이고 적은 돈을 이체하려 일일이 은행을 찾는 소외계층도 없어질 것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식자재를 구하지 못해 불안감을 안고 집 밖으로 나서는 일도 없을지 모른다. 숨겨져 있던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를 시급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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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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