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극장이 지난해 15주년 기념행사로 기획한 조명쇼. 에스플러네이드 돔에 숫자 15가 써 있다. photo 뉴시스
얼마 전 대학 동창을 만났다.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무역을 하는 친구다.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 그 친구는 “한강처럼 뛰어난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의 템스강은 TV 화면에서는 그럴듯하게 보여도 실제로 보면 탄천(炭川)의 너비밖에 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뜻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몇 해 전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푸강의 웅장함,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탑과 수변(水邊) 초고층 건물들이 만드는 화려한 스카이라인, 그리고 황푸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쏟아내는 불빛 등이 참으로 황홀한 경관이었다. 그런 상하이를 보다 귀국해서 한강을 보니 너무 밋밋했다. 한강의 강폭은 평균 750m이고 넓은 곳은 1㎞가 넘는다. 파리 센강의 강폭은 불과 135m, 한강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한강은 센강의 거의 5배가 넘을 정도로 넓지만, 단지 넓어서 시원하다는 것 외에 보여줄 게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수변공간이 도시공간과 단절되는 단조로운 토지이용계획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강 수변공간에 대한 인식은 여름철 장마 혹은 태풍으로 인한 홍수를 예방하는 차원의 획일적인 치수(治水)관리에 머물렀다. 그 사이 한강변 양쪽은 아파트 ‘병풍’에 둘러싸였다. 선진국의 수변 개발(waterfront development)은 우리가 하듯이 환경보전 차원의 공원 개발에 머물지 않는다. 수질관리와 공원 조성은 기본이고 상업·업무 공간을 추가하여 고용 창출과 세수 증대를 추구한다.
   
   서울이 한강변과 도심공간을 연결해 수변 접근성을 강화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강은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런던시는 산하 연구원인 ‘Z/Yen 그룹’과 공동으로 2007년부터 전 세계 110개 도시를 대상으로 매년 두 차례 글로벌 도시들의 금융경쟁력을 측정해 발표한다. 올봄 공표한 2018년 상반기 글로벌 금융경쟁력 측정지수(The 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는 흥미롭다. 상위 10개 도시의 공통점을 분석해보니, 공통적으로 강을 끼고 있거나 바다에 접한 ‘수변도시’라는 점이 눈에 띈다. 1위에서 6위까지를 나열하면 런던, 뉴욕, 홍콩, 싱가포르, 도쿄, 상하이 순이다. 세계적인 도시는 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인구의 집중지이며, 수출입품을 취급하는 항구도시라는 것이다. 즉 글로벌 도시로 자리매김하려면 세계 자본의 활동과 글로벌 엘리트층을 유인할 수 있는 경제 인프라 및 생활편의시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서울은 2014년 상반기 조사에서는 7위였으나, 이번 조사에서 27위로 추락했다.
   
   한국은 1980년대에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Asian 4 tigers)’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떠한가? 홍콩과 싱가포르가 어떻게 ‘수변 공간’ 개발을 이용해 도시경쟁력,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한때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우리보다 앞서가는 국가들의 사례는 한국의 간판도시 서울에 아픈 교훈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매립으로 꽃핀 홍콩이라는 불꽃
   
   현재 홍콩은 72조원(5000억홍콩달러)짜리 인공섬 건설을 두고 찬반논쟁이 격렬하다. 홍콩 정부가 첵랍콕공항이 있는 란타우섬의 동쪽 지역을 간척해 1700㏊(17㎢) 규모의 인공섬을 조성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인공섬은 주택·상업지구로 개발해 110만명이 정주할 예정이다. 홍콩의 역사는 간척(reclamation)의 역사이다. 국토가 협소하고 전체면적의 3분의 2가 그린벨트 및 공원이어서 간척이 유일한 토지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토지와 관련된 홍콩의 근대사는 드라마틱하다.
   
   영국은 중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뒤 1843년 난징조약을 체결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빼앗았다. 조차(租借)가 아니라 영구적인 소유권을 확보한 점거였다. 영국은 곧이어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켜 승리했고, 구룡반도의 잔여 토지와 구룡반도 북쪽의 신계(New Territories)를 조차했다. 조차 기간은 1898년 7월에서 1997년 6월 말까지였다. 현재 중국은 1997년 7월 1일 홍콩을 되찾아 명목상으로는 ‘1국가 2체제(One Nation Two System)’로 운영 중이다. 그런데 영국은 무슨 이유로 홍콩을 반환하게 되었을까. 원래 영국은 영구적 소유권을 갖고 있던 홍콩섬을 1997년 이후에도 돌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1인자였던 덩샤오핑이 전기와 수도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자 1985년에 어쩔 수 없이 홍콩 반환을 약속했다. 홍콩섬은 식수와 전기를 자체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식수와 전기는 홍콩이 아니라 중국 본토인 광둥성 선전(深川)에서 끌어다 쓴다.
   
   다시 간척지 얘기로 돌아가자. 영국이 홍콩섬을 점령한 1843년에서 124년이 경과한 1967년까지 간척한 토지는 1000㏊(10㎢)에 불과했다. 1976년에는 간척지 누적 면적이 2000㏊에 달했고, 1996년 총 간척지 재고량은 8000㏊(80㎢)에 이르렀다. 바다를 매립해 경기도 분당의 약 4.4배나 되는 토지를 확보한 셈이다.
   
   특히 홍콩 정부는 1980년대 홍콩섬 중심지역인 ‘센트럴(Central)’ 인근 해안을 간척해 국토를 확장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것이 홍콩섬 빅토리아항구의 수변을 매립하는 ‘뉴 센트럴 하버프런트(the New Central Harborfront)’ 프로젝트다. 간척은 2007년부터 시작되어 32㏊(32만㎡) 부지를 조성한 뒤 수변공원, 공공청사, 업무, 상업, 주거 및 문화시설을 건립했다. 그 결과 홍콩은 전혀 다른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빅토리아항구 앞 간척지에 조성된 수변 스카이라인과 레이저쇼는 홍콩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서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빅토리아 피크(peak)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전경은 홍콩을 알리는 TV 광고의 단골 메뉴다.
   
   홍콩 정부는 매일 밤 8시부터 3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hony of Lights)’라는 이름의 음악 및 레이저쇼를 공연하는데, 빅토리아항구 수변 37여개 빌딩이 레이저를 쏘아 올려 진행한다. 홍콩 ‘나이트쇼’를 보면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노랫말처럼 홍콩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화려한 밤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룡반도 ‘침사추이(Tsim Sha Tsui)’는 홍콩섬의 중심지인 센트럴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핫 스팟(hot spot)’이다. 홍콩 정부는 효과적인 ‘나이트 쇼’를 위해 매일 밤 진행되는 레이저쇼에 참여한 빌딩들에 전기료를 감면한다. 영국이 홍콩을 포기했던 이유처럼 홍콩은 전기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토에서 전기를 사다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기 위해 ‘전력낭비’를 감행한다. 관광산업을 지원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홍콩은 또 하나의 야심 찬 대형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룡반도 서쪽 간척지 40㏊ 규모의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가 그것이다. 중국은 이 사업으로 홍콩을 ‘쇼핑·관광의 천국’에서 ‘아시아의 문화예술 허브’로 격상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이미 홍콩을 되찾은 이듬해인 1998년에 기획되었다. 그 뒤 2012년 착공, 2015년 인프라 시설 공사 완료 뒤, 현재 개별 건물들을 짓는 중이고 2031년에 완성된다. 무려 30년에 걸쳐 진행되는 3조원짜리 사업이다. 서구룡문화지구는 구룡반도의 워터프런트인 구룡공원을 조성한 후 그 옆에 공연장, 극장, 박물관, 전시관, 콘서트홀, 미술관 등 15개의 문화시설을 짓는다는 계획하에 추진 중이다. 베이징까지 운행하는 고속철도역과 홍콩 지하철역이 약 1㎞ 거리에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홍콩 정부가 홍콩을 ‘쇼핑의 천국’ 도시를 넘어 ‘문화예술의 도시’로 이미지를 격상시켜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 홍콩 빅토리아항구의 명물인 레이저쇼 ‘심포니 오브 라이트’. photo 뉴시스

   황무지를 관광명소로 바꾼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역사적인 만남으로 유명해졌다. 두 정상은 싱가포르의 센토사(Sentosa)섬에서 만났다. 센토사는 ‘테마파크’(유니버설스튜디오), ‘건강 휴양지’(스파보타니카), ‘싱가포르 역사 체험’(이미지 오브 싱가포르), ‘아름다운 해변’(실로소 비치)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관광지다. 섬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면 4개 테마구역이 균형 있게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센토사섬에는 1967년까지 영국 해군이 주둔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72년 센토사 개발을 위해 센토사 개발공사(Sentosa Development Corporation)를 설립해 2009년까지 6개 자회사를 설립했다. 정부는 자본과 토지를 출자한 최대 주주임에도, 관료와 학계 출신 인사를 배제하고 민간 기업 출신을 대표로 임명했다. 한국과는 달리 현장경험이 없는 관료와 교수를 배제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은 북·미 회담 전날 밤, 마리나베이샌즈(Marina Bay Sands) 맞은편에 있는 머라이언공원(Merlion Park)을 찾았다. ‘머라이언’은 ‘lion(사자)’에 ‘mermaid(인어)’를 합성한 단어로, 머리는 사자, 몸은 물고기인 상상 속의 동물이다. 싱가포르 관광청의 로고로 디자인해 1966년부터 사용하는 싱가포르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래서 ‘머라이언상’이 있는 머라이언공원은 인근 마리나베이샌즈와 함께 싱가포르 여행의 필수코스로 꼽힌다. 당초 마리나베이는 항구였으나 홍수로 인한 잦은 범람과 오염 때문에 항구 기능이 쇠퇴했다. 그래서 정부는 360㏊(360만㎡)의 바다를 매립해 101㏊의 사업 부지를 확보한 뒤, 호텔·쇼핑·컨벤션·카지노·박물관·요트정박시설 등의 복합리조트를 개발했다. 2003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2010년 쌍용건설이 시공한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완공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개장했는데, 마리나베이샌즈 개발은 항만이 고급 주거, 관광 및 해양 리조트 시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아시아의 대표적 성공 사례이다.
   
   원래 싱가포르는 1980년대 ‘외국인 인재(foreign talent)’ 유치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뒤, 1990년대 해외 인재를 적극 유치했다. 기존 제조업 중심 발전 전략을 재검토하려는 차원이었다. 대외경제 여건의 불안정으로 인한 잦은 경기변동, 협소한 국토에 따른 산업용지 부족,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중국·동남아 국가들의 추격이 촉매제였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1990년대 초 지식정보사회로 전환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국적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본부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21세기에 들어서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했다. 종전의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 유치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억만장자들을 모셔오기 위해 자동차 경주대회를 유치했고, 고급 스포츠카를 엘리베이터에 실어 거실에 주차할 수 있는 으리으리한 호화주택 건축까지 허용했다. 부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호화스러운 생활 여건 구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금융인으로 알려진 짐 로저스(Jim Rogers)가 싱가포르에 이주한 것도 2007년이다. 그는 “북한이 개방되면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입하고 서울로 이사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
   
   해외투자자 유치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활동을 집약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자 한 노력은, 57층짜리 건물 3개가 거대한 배를 떠받드는 형상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봐도 알 수 있다. 고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랜드마크를 조성해 전 세계에 싱가포르의 도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목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비용만을 고려했다면 결코 지을 수 없는 건물이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국토면적이 서울의 1.1배인 719㎢에 불과하지만, 2017년 1742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방문했다. 한국은 싱가포르의 몇 배의 면적임에도 겨우 1333만명이 찾았다.
   
   싱가포르는 문화 분야도 강화했다. 1999년 국가전략 우선순위에 ‘세계 문화 중심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르네상스 시티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프로젝트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총 3단계로 나눠 진행됐다. 이 무렵 싱가포르 문화예술의 상징인 ‘에스플러네이드 극장(Esplanade Theaters on the bay)’이 완공됐다. 이 또한 마리나베이샌즈 근처의 바다 전망이 가능한 곳이다. 7000여장의 유리조각을 둘러쌓아 만든 극장은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개의 대형 콘서트홀과 극장, 쇼핑몰을 갖췄다. 건축 비용으로 6억싱가포르달러(약 6600억원)를 사용해 건축기간 내내 국민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완공 후 매년 3000여개 이상의 행사를 진행한다. 그중 70% 이상을 시민들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서 지금은 사랑받는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7월 싱가포르에서 여의도와 서울역~용산역 구간 개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여의도를 ‘맨해튼처럼 통째로 재개발’하고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 ‘철로는 지하화한 뒤 지상을 컨벤션, 쇼핑센터,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여의도 및 용산 전면 개발 선언을 굳이 싱가포르에서 한 것은, 싱가포르의 성공적인 수변도시 개발에 자극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는 금융 중심지에서 문화 중심지로
   
   홍콩과 싱가포르는 공통점이 꽤 많다. 작은 국토, 부족한 천연자원, 협소한 내수시장, 세계 물동량 1·2위를 다투는 항구도시 등등이 그것이다. 또한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 개방경제 체제를 유지해 대외지향적 경제성장을 달성한 도시라는 점과, 문화예술 중심의 도시로 변모 중이라는 점도 또 다른 공통분모다. “향후 국가 간 경쟁은 문화 분야에서 일어날 것이다”라는 루이스 유(홍콩 서구룡문화지구 공연감독)의 말처럼, 아시아에서 문화 분야를 선점하려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쟁은 상상 외로 뜨겁다. 두 도시의 목표는 분명하고 뚜렷하다. 경제력이 향상되어 의식주가 해결된 관광객들을 겨냥해 고급 문화예술 분야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시설을 ‘물 좋은’ 수변 지역에 짓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내국인은 물론 해외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례가 싱가포르는 마리나베이샌즈이며 홍콩은 서구룡문화지구이다.
   
   요약하면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제적 실용주의가 발생한 배경은 작은 도시(국가)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 한때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두 도시(나라)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여의주를 얻어 종횡무진 활보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과연 우리는 다시 한 번 ‘한강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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