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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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궁지에 몰렸다. 검찰 내부에선 검찰개혁 과정에서 문 총장의 입지가 좁아지는가 싶더니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의 연이은 폭로로 문 총장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검사는 지난 5월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무일 검찰총장이 강원랜드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문 총장은 안 검사가 지난 2월 4일 방송사에 나가 외압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땐 독립된 강원랜드 비리 수사단을 꾸려 위기를 넘겼다. 당시 문 총장은 “수사 도중 보고받지 않겠다”며 수사단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이후 수사단은 강원랜드 비리수사 외에도 과거 수사팀의 수사를 검찰 내부에서 부당하게 방해한 의혹도 수사해 왔다.

검찰 내부의 위기감이 크게 고조된 것은 5월 15일 안 검사의 기자회견 이후 강원랜드 비리 수사단장을 맡은 양부남 광주지검장이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히면서다. 양 지검장은 “검찰 고위간부(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 최종원 서울남부지검장)에 대해 기소 결론에 이르러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 회부를 요청했다”며 “문 총장이 심의위 회부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고 5월 1일부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한 검사의 항명이 아닌 조직적 반발 움직임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에다 문 총장이 측근인 김우현 반부패부장을 비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커지면서 사태가 확산된 것이다.

수사단은 김우현 반부패부장이 지난해 춘천지검의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에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수사에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반부패부장은 총장 직속부대인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 전국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총장의 최측근 자리. 특히 김 부장은 문 총장의 광주제일고·고려대 후배다. 검찰 내부에서는 반부패부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것은 검찰총장을 기소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대검은 “수사가 끝난 상황에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위원도 있는 심의위보다는 법률전문가로만 구성된 전문자문단의 심의가 적절하다고 판단해 의견을 조율한 것이지 수사 도중 수사지휘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문 총장을 비호하는 입장이다. 5월 16일 김후곤 대검찰청 반부패부 선임연구관도 “강원랜드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며 검찰총장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경찰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검찰을 하나로 묶지도 못하고 내부 갈등을 사전에 조율하지도 못한 데 대한 평가는 문 총장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외부인이 된 검찰총장”

검찰 내부에선 문 총장이 검찰개혁에 대해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접근해 야당 눈치를 보다 내부에서조차 오해의 불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문 총장이 검찰개혁 요구가 거센 가운데 국회와 청와대, 행안부, 경찰 사이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카드는 거의 없었다. 외부에선 서울중앙지검이 적폐수사에서 성과를 냈기 때문에 검찰의 입지가 커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지만 검찰은 이미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적폐수사가 활발해질수록 오히려 문 총장의 협상카드는 더 줄어들었다. 야당은 검찰이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 수단이 되고 있다고 강력 반발했다.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 총장 입장에선 정치보복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야 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비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선 설득력이 떨어졌다.

급기야 문 총장은 임기 초 전국 특수부 부장 회의에서 “균형을 맞춰라”는 지시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방검찰청의 특수부장은 “문 총장이 특수부 부장 회의 석상에서 균형을 맞추라고 말했다”며 “검사들은 여당 의원 비위를 발굴해 검찰이 야당에 집중해 수사한다는 인식을 불식시켜 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부장검사는 “총장이 검찰개혁에 있어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접근한 것이 문제”라며 “일련의 사태들도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을 위해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모으고 설득하는 과정이 없다 보니 총장이 외압을 행사한다는 이상한 주장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총장이 외압을 받아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순 있어도 검찰총장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이미 총장을 내부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패싱 없다” vs “이미 끝난 게임”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면서 적폐수사에선 상당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에 전념할 수 있게 문 총장이 지원한 점과 현안 사건에 대해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과정을 보고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성과에 대한 과실도 검찰총장이 아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가져가는 분위기다.

문 총장은 적폐수사에 대해선 한발 뒤에 섰던 것과 달리 그동안 검찰개혁에 대해선 총력을 다해 방어막을 쳤다. 지난 3월 13일 검찰총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대폭 줄이고 직접 수사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범죄 첩보를 경찰에 넘기겠다”면서도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확실히 했다.

청와대 검찰개혁안은 경찰 입장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경찰에 영장청구권과 수사종결권을 줘 비대해진 검찰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이관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막는 것이 핵심이다.

공수처 도입에 대해 문 총장은 반대 의견을 보이다 최근 찬성 의견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기 때문에 반대만으론 검찰의 다른 권한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공수처가 도입돼도 검찰의 특수수사 등 직접 수사는 보장해 달라고 청와대와 국회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문 총장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검찰총장을 빼고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 패싱’ 논란은 계속됐다. 청와대는 논란을 잠식시키기 위해 5월 말까지 경찰, 검찰 자체 개혁안을 내라고 지시한 상태. 대검은 각 지검별로 영장청구권,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주는 방안 등 4~5개 주제에 대해 의견을 취합 중이다.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는 수사지휘권을 없앨 경우 보완수사를 검찰이 경찰에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주고 나서 항고처럼 검사가 견제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일선 검사들에게 던지고 있다. 한 대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검찰 의견을 종합하라고 한 만큼 더 이상 검찰 패싱 논란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청와대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묻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이미 청와대가 결론을 정해놓고 검찰 패싱 논란이 일자 요식 행위로 의견조회를 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한편 감사원이 오는 6월 사상 첫 대검 감사에 착수하는 것을 두고도 검찰 내부에선 말이 많다. 문 총장이 청와대의 검찰개혁안에 반대하고 있고 내부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감사가 이뤄지는 것은 정부가 총장을 궁지로 몰기 위한 것이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총장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며 “개혁은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지만 총장이 지금처럼 흔들리면 검찰 내부에서 새로운 수장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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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웅 더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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