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원내대표(왼쪽)와 안상수 비대위원회 준비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성태 원내대표(왼쪽)와 안상수 비대위원회 준비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던 전통 보수층마저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래도 제1 야당이 이대로 죽기야 하겠느냐”는 안이한 분위기 속에 반성과 혁신을 저버린 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냉소를 넘어 ‘무관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전직 장관급 인사는 “‘제도적 보수’를 자처해왔던 나도 더 이상 한국당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민주당 쪽에 포용력 있고 중도적인 인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선택지가 없어서 지난 지방선거 때 2번(자유한국당)을 찍었는데 한국당이 그걸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6·13 지방선거 패배 이후 한국당이 보여준 행태에 대한 보수층의 실망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당을 추스르기 위해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던 김성태 원내대표의 선언은 3주째 허공을 맴돌고 있다. 혁신위를 만들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만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준비위는 혁신위원장 후보를 공모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위원장으로 거론된 인사들의 조롱을 샀다.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현 상황을 “불쾌해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이 비대위원장 후보라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한 명사(名士)들도 예외 없이 “내 이름을 빼달라”는 반응을 보였다.

비대위원장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인사들조차 “이제 비대위를 맡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바보가 되는 상황이 됐다”면서 혀를 찼다. 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사조차 조만간 ‘불가(不可)’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요즘 만나는 사람 모두가 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곧 내 이름도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당은 비대위 구성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친박계가 주장해온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한국당이 더 깊은 내홍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한국당 신임 당대표·원내대표에 관심을 보여온 인사와 계파는 결국 당의 분열을 봉합하기보다 이를 부추기며 분당을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들은 대개 “내년에 경제가 어려워질 거고 그러면 문재인 정부도 무너진다” “2020 총선에서는 정권 견제심리가 작동해 보수당이 유리해진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는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으로 현 위기상황을 뭉개고 있다. 국회의원의 희생이나 헌신을 기대했던 한국당 당직자와 보좌관들조차 이들의 현실 왜곡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당내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미래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그중 최악의 경우는 2020년 총선에서 20석 안팎의 ‘미니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당은 왜 비대위도 구성 못 하는 정당으로 전락했을까. 당 안팎 관계자들은 그 첫 번째 원인을 ‘분열’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당은 사실상 두 개로 쪼개지다시피 했다. 양 진영은 총선·지방선거 등 선거가 있을 때마다 더 치열하게 대립했다. 친이명박-친박근혜 세력은 그때마다 유불리한 입장을 바꿔가며 공천학살을 감행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친박 공천 배제 명단이 작성됐고 박근혜 대통령 때에는 친이계 핵심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이 낳은 양측의 불신은 이제 2020년 총선 공천권을 가져오기 위한 사활을 건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여론의 질타에 대해 말로는 반성하고 있다지만 속은 여전히 권력 욕구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국회 가결 때였다.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친이계는 이후 바른정당으로 분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당에 돌아왔지만 친박계 인사들은 보수진영을 망치고 정권을 내준 책임을 복당파에 돌리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자성하지 않는 친박세력에 더 비판적이다.

김성태 원내대표 등 복당파가 지방선거 완패 직후 중앙당 해체와 비대위 구성을 추진하다 불발된 것은 여전히 당내 다수를 점유한 친박계 인사들이 복당파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의 한국당은 114명의 거대 야당임에도 그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두 번째 원인은 ‘정치의 부재’에 있다. 친이·친박 양측은 서로를 불신하고 만나는 것조차 꺼린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 산물을 만들어내듯 당내에서도 세력 간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필요한 건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한국당에서 이런 정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한때 가까웠던 사이일지라도 진영의 논리가 재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를 헐뜯는다. 최근 김성태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자신을 비판했던 초선 의원에게 감정이 섞인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선 의원 A씨는 또 이 문자 메시지를 같은 친박 진영에 속한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주며 감정선을 자극했다. 여의도연구원 한 관계자는 “입장이 다르다고 당내 동지를 만나지도 않고 서로 공격할 빌미만 찾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조기 전당대회를 열고 한바탕 세 싸움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희생과 헌신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당 쇄신을 촉구하는 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쇄신의 방향과 당위성만을 주장한다. 제 살 깎는 것에 인색한 것은 과거 보수정당의 문제로 지목됐던 ‘웰빙정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막말과 독단으로 당을 운영해 비난을 산 홍준표 전 대표가 만약 스스로 사퇴하지 않았다면 당내에서 정치적 생명을 걸고 홍 전 대표의 사퇴를 주장했을 인물이 몇이나 됐을까.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한국당 관계자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네 번째는 당내에 공유하는 보수적 이념과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당에 오래 몸담았던 인사들 중 상당수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에서조차 보수적 접근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보수는 이성적 판단보다 경험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당은 지금 중앙당 해체 등 기존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제시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국당의 한 원로급 인사는 “이제 와서 보수주의를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다만 보수적 이념과 가치를 공감하지 않는 인사들은 이번 쇄신 과정에서 스스로 물러나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위기를 봉합할 책임을 지고 있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리더십 부재를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 원내대표는 현 정권 실세가 연루된 드루킹 특검을 성사시키며 나름 입지를 잡는 듯했으나 6·13 지방선거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선거 직후 중앙당 해체와 혁신위 구성을 주도하려다 친박계의 반발로 ‘스탭’이 꼬였다. 김 원내대표 주변에서조차 ‘왜 대표가 일을 조급하게 밀어붙였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 원내대표는 모든 당직자의 사표를 받은 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새 당직자를 인선하지 못하고 있다. 친박계는 복당파인 김 원내대표가 당내 주도권을 잡을 경우 친박계 청산에 나설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 배후에 당내 최다선인 김무성 의원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보여주기식 정치, 즉 ‘쇼통’을 비판해왔지만 정작 그들은 보여주기식 정치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비대위 구성이 실패할 경우 김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가 김 원내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고 나설 경우 한국당은 다시 분당 초읽기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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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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