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oto 최준석
한국화학연구원 황성연 박사는 “원유정제공장에 황(黃)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다”면서 “그걸 조금이라도 처리할 방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 자가치유(self-healing) 기능을 갖는 폴리우레탄 소재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황 박사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바이오화학연구센터를 이끈다. 바이오화학연구센터는 대전과 울산에 조직을 두고 있다. 지난 11월 9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만난 황 박사는 자신을 “바이오플라스틱을 합성하는 연구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쉽게 말하면,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만드는 화학자”라고 했다.
   
   황 박사팀이 ‘황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연구한 결과가 ‘실온에서 자가치유 기능을 지닌 스마트 고탄성 소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지난 1월에 나왔다. 재료 관련 최고 학술지 중 하나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실렸고, 그것도 표지기사로 보도됐다. 표지그림은 황 박사와 그의 팀 2명(박제영·오동엽 박사)이 뭘 연구해냈는지를 보여준다. 투명한 동전 모양인 폴리우레탄이 5㎏ 무게의 덤벨을 들고 있다. 이 폴리우레탄을 칼로 찢으면 25분이 지나 저절로 원상회복된다. 그리고 ‘자가치유’된 폴리우레탄 소재는 인장 강도가 강력해 덤벨을 매달아놔도 찢어지지 않는다.
   
   
▲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저널의 2018년 1월호 표지에 소개된 황성연 박사팀 연구.

   5㎏ 덤벨 견딜 정도의 인장
   
   황 박사의 설명을 듣고도 나는 이 연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황 박사는 “전선 피복, 해저 케이블 피복에 자가치유 소재를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전선은 피복이 벗겨지면 교체해야 하는데, 우리가 개발한 신소재를 쓰면 벗겨진 피복이 원상 회복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연구의 효용성을 깨달았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을 잇는 해저 케이블은 물론, 태평양을 지나는 해저 케이블도 이 소재를 쓰면 수명이 크게 길어질 수 있다. 그 비용 절감 효과는 막대하다.
   
   황 박사는 “올해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실린 논문의 저자 중에는 노벨상 후보와 같은 빅가이(big guy)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논문 조회수에서 4위를 차지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실용화할 수 있는 기술까지 확보했다”고 말했다.
   
   황 박사에 따르면, 자기치유 소재 관련 논문은 요즘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편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피인용지수(impact factor) 20 이상 저널만 해도 수십 편의 논문이 실리고 있다. 피인용지수가 좀 낮은 저널까지 치면 수천 편은 될 거라고 했다.
   
   
▲ 1991년 미국 영화 ‘터미네이터2’의 장면. 경찰관 모습의 터미네이트 T-1000은 총을 맞아도 몸이 바로 ‘자가치유’된다. 상상 속 로봇 피부의 자가치유가 황성연 박사팀이 연구한 자가치유 폴리우레탄 신소재와 개념이 같다. photo 트라이스타픽처스

   해저 케이블, 로봇 인공근육 등에 쓰여
   
   “다른 그룹의 자기치유 연구는 기계적 물성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강인성(toughness)의 경우 이전 연구는 상용화가 어려운 정도로 낮았다. 기존 연구가 10메가줄(MJ)이었다면 우리 연구는 27메가줄의 강인성이 나왔다. 우리가 개발한 신소재는 절단했다가 재접합되면 실온에서 2시간 만에 원래의 기계적 강도를 80% 이상 회복하고 6시간 뒤에는 완전 회복해 5㎏의 덤벨을 들 수 있다.”
   
   황 박사는 논문이 나온 뒤 신소재의 실용화를 원하는 기업 40~50군데와 만났다고 했다. 자가치유 소재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자가치유 속도가 빨라야 하는 경우도 있고, 빠르지는 않아도 되나 물성이 잘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센서의 경우 빠른 회복이 필요하다. 센서 회로가 잘리면 수초, 수십 초 안에 빨리 붙어야 한다. 지하 케이블과 같이 손상이 천천히 일어나는 경우는 회복 속도보다는 단단한 물성이 잘 나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 스마트폰 겉면의 보호필름, 고급 자동차의 겉면 보호필름이나 코팅 소재로도 쓸 수 있다.
   
   신소재는 폴리우레탄 고분자 구조를 바꾸어 만들었다. 운동화의 바닥 소재가 폴리우레탄이다. 황 박사에 따르면 폴리우레탄은 고분자 화합물이고, 딱딱한 부분(hard segment)과 부드러운 부분(soft segment)으로 구성돼 있다. 이 두 부분이 명확히 상(相) 분리(phase separation)되어야 탄성력이 좋다. 기존의 자가치유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자는 ‘부드러운 부분’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자기회복이 좋은 소재를 찾다 보니 탄성력이 좋은 쪽을 들여다봤다. 그쪽에 자가치유 기능을 집어넣고 새로운 소재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았다. 황 박사팀은 그와는 달리 갔다. “우리는 ‘딱딱한 부분’을 열었다. 이 안에다 황 폐기물에서 나오는 다이설파이드(disulfide bond·이황화 결합)를 집어넣었다. 기존 콘셉트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이었다.”
   
   황 화합물에 자가치유 기능이 있다는 건 알려져 있었다. 폴리우레탄에 이황화 화합물을 집어넣어 원하는 효과를 나게 하는 구조와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게 힘들었다. 황 박사팀은 다이설파이드의 복분해반응이 쉽게 일어나게 폴리우레탄 고분자구조(backbone)를 전부 디자인했다.
   
   “실험 설계하면서 100개의 고분자 디자인을 만들어봤다. 폴리우레탄 그룹을 만드는 기본 재료인 아이소니아네이트에는 4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반응기가 비대칭형인 아이소포론계로 성공했다. 아이소포론과 반응하는 다가(多價) 알코올도 분자량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분자량 500짜리, 1000짜리 등이 있다. 촉매도 3~4가지가 있다. 반응온도도 40도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반응물에 넣는 용매인 솔벤트도 마찬가지다.”
   
   전체 경우의 수는 500가지가 넘었다. 이 중에서 가능성을 좁혀본 게 100가지였다. 때문에 100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 실험실에서 실험을 했다. 황 박사는 촉매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웃으면서 “그건 비밀”이라며 말하지 않았다. “나는 폴리우레탄 합성을 맡았다. 박제영 박사는 이황화 화합물의 자가치유 기능 전문가다. 오동엽 박사는 소재의 기계적 물성을 평가하는 일을 맡았다.”
   
   2015년 여름에 시작한 연구는 지난해 여름에 끝났다. 이후 논문을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제출했다. 그런데 저널 편집자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했다. 덤벨 5㎏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동영상을 같이 제출했는데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황 박사팀은 즉각 항의 이메일을 보냈고, 그러면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라는 피드백을 저널로부터 받았다.
   
   황 박사팀은 동영상 하나를 더 만들었다. 자가치유 소재로 감싼 은선(silver wire)을 칼로 자르고 놔두면 다시 들러붙는 화면이었다. 동영상에는 은선으로 연결된 회로에 불이 들어와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 회로 중간을 칼로 자르면 전구가 나간다. 옆에는 초시계가 달려 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구의 불이 꺼진 지 25분이 지났을 때 전구에 불이 다시 들어온다. 자가치유 소재로 인해 절단됐던 전선이 다시 연결된 것이다. 이 동영상은 압도적인 증거였다. 게재가 거절됐던 논문은 게재는 물론, 2018년 첫 간행물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폐플라스틱 처리 방법도 연구 중
   
   황 박사는 서울 서라벌고 출신. 학부는 숭실대 화학과 94학번이다. 박사 논문은 2011년 한양대 섬유고분자학과에서 임승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썼다. ‘생분해성 고분자 나노복합체의 물성 및 결정화 거동 연구’가 박사 논문 제목. 황 박사는 석사 때부터 분해되는 플라스틱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 기업(SKC)에 들어가 3년간 일했다. 한국화학연구원에 들어간 건 2014년 8월. 자가치유 소재 연구는 입사 1년이 지나 시작했다.
   
   황 박사는 자가치유 신소재의 향후 연구 방향과 관련 “로봇 인공근육과 스마트 센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의 근육이 뼈를 잡아주는 것처럼, 로봇도 근육이 있어야 정밀하게 팔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근육은 사용하면 손상된다. 하지만 자가치유 능력이 있는 소재로 근육을 만들면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로봇 인공근육은 새로 뜨고 있는 연구 분야 중 하나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특히 올해 한국사회에서도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는 “한반도 주변 해역의 미세플라스틱 오염 농도는 세계 어디보다 높다”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조개의 경우 관자 주변에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하다고 했다. 조개도 맘 놓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다. 황 박사는 폐플라스틱을 어떻게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주로 연구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정부 과제와 기업에 바이오플라스틱 연구자문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시중에 옥수수로 만든 빨리 분해되는 플라스틱이 나와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이 월등하게 싸기 때문에 바이오매스로 만든 플라스틱은 가격경쟁력이 없어 시중에 유통되지 못한다.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확실한 답은 아직 없어 보였다. 화학자가 빨리 분해되고 가격도 낮은 기적의 새 화합물을 만들어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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