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무통 로칠드의 아트 라벨들
샤토 무통 로칠드의 아트 라벨들

‘나는 1등이다. 나는 2등이었다.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PREMIER JE SUIS SECOND JE FUS MOUTON NE CHANGE.)’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포도주는 118년 동안 2등이었다. 1973년 드디어 1등으로 승격됐다. 1등의 축하는 20세기 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해줬다. 피카소가 드로잉하듯 자유로운 선들로 그린 인물들은 축배를 하며 승리의 쾌감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눈으로만 봐도 이미 그 맛과 향기에 취해 어느새 그림 속의 인물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 같다.

피카소의 그림 밑에는 ‘1973년 1등급이 되다(PREMIER CRU CLASSE EN 1973)’라는 문구와 함께 오랜 세월 2등의 서러움을 이겨낸 프랑스 보르도 포이약(Pauillac) 지역의 포도주 샤토 무통 로칠드 1973년 빈티지(포도 수확연도) 라벨이 있다.

포도주의 질은 포도의 품종과 작황 상태, 포도주 제조방법과 장인정신이 만들어낸다. 인간이 노력을 한다 해도 자연변화에 따른 토양 상태 때문에 품질이 달라진다. 즉 신이 내리는 축복이 함께 해야 최상급 포도주가 가능하다.

영혼을 울리는 맛, 예술과 통하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예술가가 창작의 진한 고통을 이겨내고 영혼을 울리는 맛을 내듯이 오랜 세월을 이겨내어 숙성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또 블랙커런트(베리의 일종)향을 풍기며 타닌이 강하고 입안에 도는 보디감이 묵직한 적포도주이다.

주요 재배 품종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황제의 이미지를 지닌 카베르네 소비뇽과 여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왕비의 이미지를 지닌 메를로를 블렌딩하여 조화롭고 아름다운 맛을 창조해 오감의 황홀경을 자아낸다. 단순히 오감을 자극하는 맛이 아니라 영혼에 울림이 있는 충격적인 새로운 맛, 그것이 샤토 무통 로칠드 1등급의 예술적인 맛이다.

로칠드 가문은 18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주지역, 즉 게토에서 환전상을 시작했다. 19세기 유럽 여러 지역에 진출해 최대 금융세력으로 등극한 유대인 재벌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럽 상류 사회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국의 금융계를 주름잡았던 네이선 로칠드의 아들인 나다니엘 로칠드 남작은 프랑스로 건너가 귀족들과 친해지기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열었다. 손님 접대의 꽃은 술.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다른 귀족들처럼 로칠드 가문을 대표할 수 있는 포도주로 1등에 도전하고 싶었다. 로칠드 특유의 맛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포도주가 필요했다.

1853년 나다니엘 로칠드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샤토 브란 무통을 매입해 샤토 무통 로칠드로 이름을 바꿨다. 2년 후 188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보르도의 메독 및 그라브 지방에 있는 포도주에 등급을 매기라는 나폴레옹 3세의 지시가 내려졌다. 나다니엘은 최고의 품질인 ‘프리미에 그랑 크뤼(Premier Grand Cru·우수한 품질을 양조하는 뛰어난 포도밭)’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으나 실패하고 2등급을 부여받았다. 2등이라는 굴욕 사건은 1등을 향한 도전으로 118년 동안 계속됐다.

100점 만점에 100점!

1922년 나다니엘의 증손자 필립 남작(Baron Philippe de Rothschild·1902~1988)은 20세 때 샤토 무통의 주인이 된다. 1등이 되기 위한 품질 관리로 1924년 프랑스 포도주 업계 최초로 샤토 병입, 즉 양조장에서 직접 포도주를 병에 담는 것을 실현시켰다. 그 당시에는 혁명과 같은 일로 포도주 품질 신뢰에 혁신을 이뤘다.

샤토 병입이 시작되면서 라벨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라벨에는 양조장의 로고, 빈티지(생산연도), 포도주 이름, 생산지, 등급, 병입자, 병입 장소, 포도원의 서명이 들어있다. 이 라벨은 포도주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이자 직접 맛과 향을 느끼기 전에 고객과 눈으로 나누는 소통의 시작이다.

1926년 필립 남작은 ‘모든 수확을 샤토에서 병입했다’는 혁신적인 문구와 함께 유럽으로 퍼진 로칠드 5형제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화살과 무통을 나타내는 양머리를 그려 넣어 로칠드만의 라벨을 제작하였는데, 보르도 지역의 심한 반대로 인해 실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였을 때 필립은 납치되었다가 겨우 탈출하고 아내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돌아와 첫 제품을 내놓으면서 죽기 전에 맛보아야 할 포도주, 100점 만점에 100점인 20세기 최고의 빈티지 1945년을 만들어내었다. V자가 새겨진 라벨은 필립 줄리앙(Philippe Jullian)이 전쟁 승리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해준 최초의 아트 라벨이었다. 가족을 잃은 가장 큰 고통을 아트로 승화한 것이었다.

‘최고’라는 증명은 아트라벨로

1등을 하면 상장, 도장, 상표 등을 받듯이 최고라는 상표는 아트라벨이다. 로칠드가 1등이 될 거라는 필립은 포도주가 그려내는 맛에 신이 선물한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가 마력적인 향료를 첨가할 것이라고 믿었다. 로칠드의 첫 만남인 아트라벨을 통해 아티스트가 안내하는 예술적인 맛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라벨을 매년 바꾸는 거야. 포도주는 매해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알맞은 예술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디자인을 맡길 거야. 그리고 라벨 디자인에 대한 대가로 포도주를 줘야지. 예술을 위한 포도주, 포도주을 위한 예술이 아닌가’라고 생각한 필립은 최고 중의 최고를 결합시켰다.

1997년 빈티지는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 조각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1930~2002)이 그 맛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뜨거운 태양이 춤을 추듯 빛나고, 포도주 잔과 어우러져 있는 빨간 입술은 사랑을 부르는 듯하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되어 있는 뱀과 여인은 포도주에 흠뻑 취해 자유롭게 춤을 추고, 뻐꾸기가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리는 여인의 노랫자락은 현실의 고단함을 유쾌함과 희망으로 안내한다. 니키 드 생팔이 상상하게 하는 1997년 빈티지는 사랑스럽고 자유로운 맛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가 선택한 아트라벨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결합만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향과 맛을 창조해내는 포도주에다가 삶의 극적인 순간에 만들어내는 위대한 상상의 힘이자 가능성인 아트를 더한 것이다.

상상과 창조의 위대함을 만나고 싶을 때 무엇으로 그들을 부르는가. 1958년 달리, 1973년 피카소, 1975년 앤디 워홀 등 샤토 무통 로칠드의 예술을 마셔라.

조혜덕

성신여대 동양화과·이화여대 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전 뉴욕 첼시 아트게이트 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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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덕 ‘아트 컴퍼니 인터알리아’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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