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건물 외벽에 MLB 서울시리즈 홍보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photo 뉴시스
서울시내 한 건물 외벽에 MLB 서울시리즈 홍보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photo 뉴시스

“메이저리그 경기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 그 자체로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앞두고 ‘1세대 빅리거’ 출신 김선우 해설위원(MBC 스포츠플러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선우는 2001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데뷔해 몬트리올 엑스포스-워싱턴 내셔널스-콜로라도 로키스-신시내티 레즈에서 6시즌 동안 활약한 메이저리거 출신 야구인이다. 이번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이하 서울시리즈)에선 MLB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과 함께 마이크를 잡는다. 김선우 외에도 박찬호, 김병현, 이대호, 김광현 등 메이저리그 출신 야구인들이 특별 게스트로 중계석에 함께할 예정이다. 오는 3월 20일과 21일 열리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라이벌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 2연전을 중심으로 LA 다저스와 키움 히어로즈·한국야구 대표팀의 평가전, 샌디에이고와 LG 트윈스·한국 대표팀의 평가전 등 흥미로운 이벤트가 야구팬을 기다린다.

 

‘찬호 팍’ 등장 이후 가까워진 MLB

과거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딴 세상 얘기, 꿈같은 대상으로 여겨졌다. 1958년 스탠 뮤지얼이 이끄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시작으로, 1962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82년 행크 애런이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까지 세 차례 MLB 팀이 내한해 친선경기를 가진 적이 있지만 지속적이고 활발한 교류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1994년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하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김선우 등 1세대 메이저리거들이 미국에 건너가 풀타임 빅리거로 활약하면서 미국 야구의 진수를 선보였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리그에서 펼치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은 팬들에게 자부심을 선사했고, 꿈과 환상의 무대로만 여겼던 메이저리그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라울 몬데시, 게리 셰필드, 션 그린 등 다저스 동료 선수들이 ‘찬호 도우미’란 별명과 함께 신문지상에 오르내렸고 ‘퀄리티 스타트’처럼 당시로선 생소했던 야구 용어가 대중화됐다. 박찬호 선발 경기 생중계를 통해 미국야구의 수준 높은 플레이와 팬서비스, 인프라를 접한 국내 팬들의 야구 보는 눈높이도 높아졌다. ‘제2의 박찬호’를 꿈꾸는 야구소년들이 증가하면서 야구 저변이 크게 확대됐다. 이는 한국야구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져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과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대회 성과, 그리고 KBO리그 800만 관중 시대를 가져왔다.

이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한국 선수의 활약을 보는 것은 낯설거나 신기한 광경이 아니다. 지난 시즌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한국인 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유틸리티 부문)를 받았다. 올겨울엔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6년 총액 1억1300만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바람의 손자사위’ 고우석도 2+1년 최대 940만달러에 샌디에이고와 계약했다. 김하성과 고우석은 이번 서울시리즈에서도 샌디에이고 주축 선수로 당당히 금의환향할 예정이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항상 멀게만 느껴졌던 메이저리그였는데 1세대 선수들이 길을 내고 류현진, 김하성 등 후배들이 그 길을 따라 잘 와준 덕분에 서울시리즈라는 대형 이벤트도 가능했다”면서 “경기 당일 MLB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서울에서 보게 되면 굉장히 뭉클한 감정이 들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서울시리즈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추진하는 ‘야구 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앞서 1999년 멕시코 몬테레이를 시작으로 일본 도쿄(2000·2004·2008·2012·2019),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산후안(2001), 호주 시드니(2014)에서 정규시즌 개막전을 개최한 메이저리그는 이번 서울에서 역대 아홉 번째 국외 개막 시리즈를 치른다. 특히 올해는 서울시리즈 외에도 3월 초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2경기, 4월 멕시코시티 시리즈, 6월에 열리는 영국 런던 시리즈까지 4차례의 국외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MLB 구단 사정에 정통한 야구 관계자는 “MLB는 과거 도쿄에선 다섯 차례나 개막전을 개최했지만 한국에선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면서 “이번 서울시리즈를 통해 MLB가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했다. 실제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2024년 여러 국가에서 열리는 국제 경기를 준비하면서 설렌다. 우리의 노력 덕분에 전 세계에 야구에 대한 열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토대 위에서 멕시코시티와 런던에서 열리는 정규시즌 경기,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개막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번 서울시리즈는 매우 특별하다”면서 “국제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 야구에 매우 특별한 경기라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생각을 밝혔다.

지방구단 한 관계자는 “사실 허구연 KBO 총재가 처음 MLB 개막전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구단들 사이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털어놨다. 허 총재는 2022년 부임 때부터 한국야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야구를 통한 국제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 개막전의 한국 개최, KBO리그 개막전의 미국 개최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MLB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가 주최사 측 문제로 무산돼 망신을 사는 일도 있었다.

 

오타니가 다저스로 갈 줄 누가 알았을까

이번 서울시리즈는 최근 공격적으로 스포츠 이벤트에 투자하고 있는 쿠팡이 스폰서 겸 프로모터로 나서면서 추진력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관계자는 “설마 되겠냐고 생각했던 대형 이벤트가 마침내 성사됐다. KBO와 구단들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 있지만, 어찌 됐든 성사됐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참가 선수 중 ‘한국인 메이저리거’ 김하성과 고우석에게 큰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특히 김하성은 친정팀인 키움의 홈구장 고척스카이돔에서 큰 박수와 따뜻한 환영을 받을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LG 트윈스와 한국야구 대표팀 소속이었던 고우석도 이제는 상대 팀 선수가 되어 LG, 대표팀과 맞붙는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야구계 최고의 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투타를 겸업하는 ‘21세기 베이브 루스’ 오타니는 최근 6시즌 동안 두 차례나 만장일치 MVP를 수상했고, 올겨울 10년 총액 7억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2012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이후 두 번째로 서울을 찾는 오타니는 3월 13일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한국식 ‘손가락 하트’ 포즈를 한 사진을 올려 한국 팬들에게 미리 인사를 전했다. 사진 상단엔 태극기 이모티콘도 달았다. 이번 서울시리즈는 오타니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첫 공식 경기가 될 전망이다.

서울에서 다저스 데뷔전을 갖는 선수는 오타니만이 아니다. 올겨울 12년 총액 3억5000만달러(약 4256억원)에 다저스와 계약한 일본인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에 합류한 타일러 글래스노도 서울에서 첫 경기를 갖는다. 그 외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잰더 보가츠, 다르빗슈 등 초특급 선수들이 서울 고척돔을 누비는 초현실적 광경을 조만간 만나게 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 프로스포츠 전문가인 이진만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는 “서울시리즈가 확정될 당시만 해도 오타니, 야마모토가 다저스로 가고 고우석이 파드리스로 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개최 확정 이후 이 선수들이 양 팀 소속이 되면서 서울시리즈를 향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게 사실”이라며 “KBO리그 정규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경기가 야구 붐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스포츠 마케팅 분야의 일인자로 알려진 박찬혁 한화 이글스 대표이사도 “시기적으로 정규시즌을 앞둔 시점이라 리그 흥행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오타니가 다저스와 계약한 뒤 이번 시리즈에 대한 일본 쪽의 관심이 상당히 커진 것으로 안다”면서 “흥행성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지방구단 관계자는 “MLB의 수준 높은 야구를 즐기고 한국야구의 발전한 모습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과거 한·일 슈퍼게임이 가져온 효과처럼 한국야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바라봤다.

 

다르빗슈도 표 못 구해 쩔쩔

한·미·일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서울시리즈 1차전 입장권은 예매 오픈 15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1인당 2매까지만 예매할 수 있는데도 1만6000석이 동났다. 주최사 쿠팡플레이가 신분증 검사 등 강도 높은 단속을 예고했음에도 암표까지 등장했다. 암표 가격은 1석당 50만원대에서 200만원대에 이른다. 한 KBO 관계자는 “서울시리즈는 KBO가 아닌 MLB 주최 행사라 KBO는 물론 구단 직원들도 표를 구하기 어렵다. 주위에서 정말 많은 요청을 받았지만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고척돔을 홈으로 사용하는 키움 히어로즈 관계자는 “사무실에서 구장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놔서 구단 직원들도 경기를 볼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일본야구 최고 스타인 다르빗슈조차 지인들의 표 요청을 들어주지 못해 곤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르빗슈는 “경기장인 고척돔의 규모가 작아 표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실제 1만6000석인 고척돔은 축구장을 개조한 런던스타디움(5만9659석)은 물론 도쿄돔(5만5000석) 등 그간 MLB 해외경기가 열린 구장들과 비교해 좌석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울시가 이번 시리즈를 위해 잔디 교체, 원정 로커룸 리모델링 등 개보수를 진행했지만 메이저리그 기준에선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 야구 관계자는 “MLB 관계자들이 개보수 이후 고척돔을 확인한 뒤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는 평가를 내렸다. 내야 상단 좌석의 경사나 시야 등은 여전히 문제”라며 “자신 있게 국제대회용으로 내세울 만한 경기장을 갖추지 못한 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 건설 중인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 향후 건설 예정인 잠실 새 구장이나 청라돔이 개장하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지방구단 관계자는 “이번 서울시리즈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극받아 야구단과 구장 시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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