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7일 서울 중구 정동 미대사관저에서 열린 ‘걸스플레이 2’ 캠페인 론칭 행사에 참석한 멜라니아 미 대통령 영부인. ⓒphoto 주한 미국대사관
지난해 11월 7일 서울 중구 정동 미대사관저에서 열린 ‘걸스플레이 2’ 캠페인 론칭 행사에 참석한 멜라니아 미 대통령 영부인. ⓒphoto 주한 미국대사관

지난 2월 부산 광남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숲(13)양은 지난해 12월 초 학교 체육 수업시간을 잊지 못한다.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을 함께 뛰면서 축구공을 주고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광남초 6학년 학생들은 당시 남녀 구분 없이 반 학생 20여명이 절반씩 팀을 짜 함께 축구 경기를 했다. 김양은 “그전까지는 여학생이 함께하는 스포츠 수업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는데, 남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니까 훨씬 재미있었다”며 “여학생들이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운동장에 나갈 때만 해도 ‘각각’ 따로 나갔지만 들어올 때는 땀범벅이 돼서 다들 친근하게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 김양의 설명이다.

김양이 이날 참가한 체육 수업은 주한 미국대사관이 지난해 11월부터 추진해온 공공외교 캠페인인 ‘걸스플레이 2’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교육 당국의 협조를 얻어 서울·부산·광주·대구 4개 도시를 순차적으로 돌며 약 700명의 초·중학생들을 상대로 체육 수업과 면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에 찌든 한국 학생들에게 운동을 시키자는 취지였고, 특히 체력이 약하기로 유명한 한국 여학생들을 학교 체육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자는 의도였다.

‘걸스플레이 2’는 6개월간 진행된 캠페인이지만 학생들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는 것이 이 캠페인에 참여한 일선 체육 교사들의 설명이다. 특히 남학생 비율이 높은 남녀공학에서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걸스플레이 2’ 참가 학교 중 한 곳인 서울 창천중학교 박양화 체육담당 교사는 “남녀공학에서는 운동을 잘하는 여학생들도 남학생들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축되곤 한다”며 “남학생 비율이 높을수록 여학생들은 위축되면서 체육 수업에 점점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신광여중의 이선민 체육담당 교사는 “여중의 경우에는 원래 여자들끼리만 있으니까 운동도 눈치 보지 않고 열심히 한다”며 “운동 잘하는 남학생이 인기 있듯 운동 잘하는 여학생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6개월 캠페인에 학생 700명 참여

지난 5월 15일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미국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 이날 이곳에서는 ‘걸스플레이 2’ 캠페인을 민간 파트너인 ‘스포츠 커넥티드’라는 NGO에 이양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6개월간 ‘걸스플레이 2’를 지속해온 미대사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걸스플레이 2’의 숫자 ‘2’는 영어로 ‘또한’을 의미하는 ‘Too’다. “여학생 또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알리샤 우드워드 주한 미대사관 공공외교참사관은 기자와 만나 “걸스플레이 2가 숫자 2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신 분들에게 ‘걸스플레이 1은 언제 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고 웃었다.

지난해 11월 ‘걸스플레이 2’ 캠페인 출범 당시에는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동행한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주한 미대사관저에 들러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민호와 쇼트트랙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조해리 선수도 참석했다.

주한 미국대사관 측에 따르면 캠페인을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동안 8만명 이상이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네이버 블로그를 방문했다고 한다. 데이나 제 주한 미대사관 공공외교담당관은 “700명의 학생들과 직접 만나 운동을 하는 데서 오는 이점을 설명해줬다. 또 학생들이 운동하는 데 많은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에서 ‘걸스플레이 2’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한국 여학생들의 체육활동 참여 수준이 미흡하다는 공감대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함께 발표한 10대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63.1%로 전년도에 비해 14.1%포인트 증가했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10대 여성의 비율은 35.7%로 26.1%인 남성에 비해 1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특히 30대 여성의 경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체의 38.6%까지 높아지면서 23.8%인 남성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 어릴 때 운동을 하지 않는 습관이 30대가 넘어서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알리샤 우드워드 공공외교참사관은 “미국의 여성 기업임원 94%가 고등학교 때 스포츠를 즐겼고 52%는 대학생 때까지 운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학생들이) 여성으로서의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는데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학생 절반이 운동 전혀 안 해

앞으로 ‘걸스플레이 2’는 ‘스포츠커넥티드’라는 민간 NGO가 이어간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슬로건인 ‘Passion Connected’에서 단체 이름을 땄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참여한 대런 로버츠 텍사스대 스포츠리더십 센터장은 “스포츠 활동의 신체적 혜택은 잘 알려져 있지만 더 중요하고 지속적인 것은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효과”라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를 하는 여학생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자부심과 자신감도 더 높다. 경쟁적 팀에서 운동하는 것은 어린 여학생들에게 건전한 경쟁이 무엇인지, 팀워크가 무엇인지, 신뢰가 무엇인지, 시간관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가르쳐준다”며 “운동장 안과 밖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더 큰 회복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포츠커넥티드 측이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어렸을 때 운동을 한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성인이 되었을 때 과학·기술 등 남성들의 참여 비율이 높은 영역에서 일자리를 가질 확률이 높다. 로버츠 센터장은 “14살이 되면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두 배 높은 비율로 운동을 그만두고 17살 되면 여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운동을 완전히 그만둔다”고 강조했다. 그는 “‘걸스플레이 2’와 같은 선도적 캠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성(性)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타파를 주문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학생들의 체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관련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지난 2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학교체육진흥법 개정안과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에 따르면 학교장이 성별 특성을 고려해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체육 교재를 확보하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여학생의 체육 활동 참여 증진을 위해 특화된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 개정안은 학교체육에서 성별을 이유로 참여나 혜택을 제한 혹은 배제하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규정했다. 법안을 발의한 금태섭 의원은 “남학생들은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성별에 기인한 교육 현장의 차별적 시각이 여전하고 학교체육에서도 실질적인 양성평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제 초·중·고교생 가운데 규칙적인 체육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학생 비율이 49.9%로, 남학생(25.3%)보다 2배가량 높다”고 법안을 제안한 이유를 밝혔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

“운동하는 여학생이 자신감도 높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걸스플레이 2’ 캠페인 민간 이양식이 열린 지난 5월 15일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만났다. 내퍼 대사대리는 2015년 4월부터 대사관 차석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1월부터 마크 리퍼트 전임 대사의 뒤를 이어 대사대리 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국무부 일본과장 및 인도과장으로 근무했다.

내퍼 대사대리는 1997년 북한 영변 핵시설의 사용후핵연료를 조사하기 위한 국무부 대표로, 2000년에는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평양 방문 선발대의 일원으로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한 경험도 있다. 마크 리퍼트 대사가 떠난 뒤 1년4개월째 대사직을 수행 중인 내퍼 대사대리는 해리 해리스 전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주한 미대사 인준 절차를 거치고 부임할 때까지 한국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 ‘걸스플레이 2’를 6개월간 진행한 성과를 어떻게 보나.

“걸스플레이 2 캠페인이 지난 6개월 동안 성취한 모든 것에 대해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캠페인이 전달한 메시지는 남학생들과 똑같이 여학생들도 스포츠 접근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끝낸 뒤 다른 곳으로 보낼 땐 슬픈 기분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마치 우리가 키운 아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훌륭한 파트너를 우리가 찾아서 넘길 수 있는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좀더 가깝게 관계를 유지하고 협력을 해나갈 계획이다.”

내퍼 대사대리는 “걸스플레이 2가 전한 ‘여학생들이 남학생과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며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는데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여학생들에게 특별히 스포츠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런 로버츠 센터장이 전문가라 잘 설명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여학생 남학생 모두 스포츠로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본다. 여학생 기준으로 말하자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때까지 운동을 한 여학생의 경우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자신감은 높고 실망감은 낮다. 시련에 부딪혀도 회복력이 높다. 여러 사례로 봤을 때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국가일수록 GDP가 높다. 개인, 사회, 국가 등 모든 이해당사자에게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

- 여학생들이 스포츠에 참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그래서 이 캠페인은 가정, 그리고 학교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학생들이 기회를 갖지 못할 이유,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접근성에 대해서는 여학생들도 똑같이 기회를 가져야 한다. 사랑스러운 여성과 운동 잘하는 여성이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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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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