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에 지난 9월 중순 세계 각국 예술가들이 속속 도착했다. 독일, 체코, 이탈리아, 폴란드, 베트남 등에서 날아온 이들은 경주의 한곳으로 모였다. 이들에게 미션이 주어졌다. ‘경주를 작품으로 만들어내라. 단 현지에서 구한 재료를 활용할 것. 기간은 보름’.이들은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에 초대된 작가들이다.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로 6개국 13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보름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경주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숙소에 돌아오는 이들의 손에는 벽돌, 폐타이어, 나무조각, 삼베, 풀 등이 들려 있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와 처음 만난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이미 10년도 넘은 과거지만, 파리 거리를 걷던 중 기묘한 모습의 동양인 포스터 하나를 발견했다. 요즘 한국 청년들에게 유행하는, 앞머리를 눈썹 바로 위까지 늘어뜨린 뒤 일직선으로 자른 헤어스타일이다. 작은 귀고리와 함께 둥글고 두꺼운 뿔테 안경, 히틀러 스타일 콧수염으로 잔뜩 멋을 부린 모습이다. 이미 철 지난 전시회 포스터로, ‘Lonard Foujita’가 사진 속 주인공 이름이다. 화가였다. 당시 포스터 속 동양인에 대한 첫인상은, 뉴욕이나 런던에서 흔히 볼 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다. 거친 절벽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에 파도가 출렁인다. 그 바다를 가리키며 세 노인들이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다. 세 노인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듯 생김새도 특이하고 옷차림도 기괴하다. 도대체 나이 드신 분들이 무슨 연유로 이 험한 산중에 올라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될 즈음 세 노인들의 기찬 입담이 시작된다.먼저 맨 아래 서 있는 노인이 말문을 연다.“나이가 드니까 내가 몇 살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 다만 내가 어렸을 적에 천지를 만든 반고(盤古)와 친하게 지냈던 생각이 날 뿐이야.”아니
마침내 베르메르가 워싱턴에 상륙했다. ‘베르메르와 장르 페인팅의 대가들: 영감과 경쟁(Vermeer and the Masters of Genre Painting: Inspiration and Rivalry)’이란 제목의 초대형 전시회로 워싱턴국립예술관(www.nga.gov)이 무대다. 지난 10월 22일 시작해 내년 1월 2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장르 페인팅이란 신화, 종교화, 풍경화, 정물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을 의미한다. 16세기부터 200여년에 걸쳐 네덜란드에서 발전된 회화 영역이다.전시회 일정이 알려진 지
시카고를 방문한 것은 6개월 만이었다. 한 대학 저널리즘 학회 참석차였지만 진짜 욕심은 딴 곳에 있었다. 시카고미술관(www.artic.edu)에서 열리는 ‘폴 고갱 특별전’이다. 6월 25일부터 9월 10일까지 열리는 ‘역대 최대 규모’ 고갱 전시회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다. 아웃사이더(Outsider). 고갱 특별전이 시카고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떠오른 단어다.시카고는 동부의 뉴욕에 대항해 만들어진 후발 이민자들의 도시다. 뉴욕이 일찍 미국에 자리 잡은 영국·독일·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들의 도시라면 내륙의 시카고는 한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미국의 허리를 이루는 평균적인 미국인들이었다. 어떻게 이들 평균 미국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현실을 고려해 필자가 강조하는 길은 예술이다. 미국인이 ‘꾸준히’ 좋아하는 예술가를 통해 평균 미국인의 생각을 읽는 식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답이다. 설문조사를 하면 항상 미국민이 좋아하는 화가 1~2위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명실상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호퍼다. 호퍼는 미국인의 내면을 가장 잘 묘사한 화가로 통한다. 오바
지난 2월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MoMA)이 자리 잡은 뉴욕 맨해튼 53번가 주변엔 프랜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1879~1953)전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꼈다. 지난해 11월부터 열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피카비아의 대규모 회고전을 알리는 홍보물이다. 현대미술관, 프랜시스 피카비아의 발견피카비아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마르셀 뒤샹(1887~1968)과 동시대 작가로 시인, 편집자, 그래픽디자이너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대중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런데 이 생소한
그를 처음 접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 2층 이탈리아 전시관에서였다. 길이 1m 정도의 비교적 큰 유화 초상화에 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얼굴과 손만 뚜렷이 그려져 있을 뿐 몸과 의상은 미완성 상태였다. 모든 유화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검게 퇴색한다. 빛의 반사에 의해 생기는 유화 특유의 신비롭고도 신선한 3차원 질감도 시간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간다. 벽에 걸린 초상화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냥 보지 말고 느끼면서 정독해야만 하는 유화다.퇴색된 유화 속에 그려진 검은 수염은 어둠 속에서
지난 3월 중순 세계 미술계의 큰손들이 홍콩에 집결했다. 영국 왕족 켄트가의 마이클 공자빈, 인도 억만장자 부디 텍, 홍콩 재벌 뉴월드그룹의 후계자 아드리안 쳉,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등 방문자 명단은 화려했다. 특히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마윈 회장은 지난 3월 15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전자통신박람회) 2015’ 개막식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나기로 한 일정을 하루 앞두고 있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방문이었다. 세계의 수퍼 리치들을 홍콩으로 불러들인 것은 ‘아트바젤 홍콩’(3월
소가 닭 보듯 지나쳐온 전시관이 뉴욕 맨해튼 5번가 북쪽의 ‘노이에 갈레리에(Neue Galerie·www.neuegalerie.org)’이다.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란 거창한 이름의 장소지만 노이에 갈레리에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다섯 블록 떨어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들르는 것이 한층 의미가 있다고 믿어왔다. 노이에 갈레리에는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게르만 미술작품들의 집산지이다. 게르만 미술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제로에 가깝다. 무식한 발상일 듯하지만, 그림이나 조각에 관한 게르만인의 재능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이다.과학·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유럽회화관(European Paintings Galleries)이 지난 5월 23일 새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럽회화관은 미술관에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정면으로 만난다. 미술관의 기본이랄 수 있는 13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그려진 유럽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내부의 개보수, 그림 위치의 변화와 새로운 작품 구입이 있었다. 45개 전시실에 걸린 700여개의 그림이 대상이다. 오래된 그림은 손질을 하고, 다른 미술관에서 빌려온 그림도 걸렸다. 틈틈이 가는 메트로폴리탄이지만, 새롭게 변신한 미술관을
서울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은 지하철 4호선과 교차한다. 6호선에서 4호선 서울역 방향으로 바꿔 타려면 60여m의 긴 환승통로를 지나야 한다. 거리가 제법 되다 보니 통로 양쪽으로 공항에 흔히 있는 무빙워크를 설치해 놓았다. 4호선 서울역으로 가려고 이 무빙워크에 올라서는 순간, 승객은 낯선 포스터에 움찔한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거장 MUNCH, 에드바르트 뭉크 탄생 150주년’.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그는 1863년 12월 12일 태어나서 1944년 1월 23일 눈을 감았다.마네·모네·드가의 작품은 몰라도 뭉크
프랑스 파리 루브르에 들른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성(聖) 안나와 성 모자(母子)(The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이하 ‘성 안나’라고 줄여서 표현)’를 꼼꼼히 챙겨 보기 위해서이다. 다빈치가 완숙기에 들어선 1499년(당시 47세)부터 구상해서 1519년 숨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댄 그림이다. 가로 112㎝, 세로 168㎝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성 안나는 다빈치의 ‘그리다가 중간에 그만둔 작품’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예술평론가들은 성 안나를 다빈치의 권위에 맞춰서
이탈리아의 피렌체 우피치(Uffizi)미술관에 들른 것은 1월 초이다. 영어로 오피스(Office)라는 뜻인 우피치는 르네상스의 대부(代父) 메디치가문의 사무실에 해당한다. 피렌체 내 모든 미술관을 72시간 동안 무제한 관람할 수 있는 50유로짜리 티켓을 구입했다. 사흘 중 이틀을 우피치에 투자했다. 겨울의 이탈리아 미술관은 한산하다. 미술관 바닥에 울려퍼지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스스로의 귀에 담을 수가 있다. 코를 바짝 붙이면, 유화에서 퍼져나오는 수백 년 된 기름 냄새도 느낄 수 있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에는 표를
처치 곤란 배송상자로 멋진 그림액자를 만들 수 있다. 벤타코리아(대표 김대현)가 지난해에 이어 배송상자에 미술을 입힌 두 번째 ‘벤타아트 콜라보레이션 박스’를 선보였다. 벤타코리아는 독일의 에어워셔 브랜드인 벤타에어워셔의 국내 수입사이다. 이번에 벤타코리아의 초대를 받은 작품은 ‘나비 작가’로 알려진 남경민의 작품이다. 남 작가는 피카소·고흐·샤갈 등 거장의 작업실이나 실내 풍경을 배경으로 나비가 날아다니는 작품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독특한 색채로 시공을 초월해 거장의 작업실로 안내하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예술박물관은 흑인 화가 케인드 와일리(Kehinde Wiley·35)를 처음 만났던 곳이다. 2층 현대미술관을 돌아다니던 중 한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그림을 발견했다. 붉은색과 기하학적 문양을 배경으로 앞발을 솟구치는 백마를 탄 흑인전사(戰士) 그림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이 청바지에다 러닝셔츠만 입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말을 탄 흑인 외 다른 모든 부분은 18세기 유럽 그림과 비슷하다.멋대로 입은 옷과 당당한 모습의 흑인 표정을 통해 흑인 정체성을 묘사한 그림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림의 크기가 가
‘20세기 들어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17세기 초 화가. 예술의 본고장 이탈리아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버금가는 인물로 재평가되는 인물. 매매시장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지만 유럽 곳곳에 미발굴 명화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가.’1571년생의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에 관한 수식어들이다. 한국인에게는 비교적 생소하지만 21세기 들어 전 세계 미술관으로부터 특별하게 취급되는 화가이다. 카라바조 작품 소장 여부가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피카소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과는
중국의 화가 장다첸(張大千·1899~1983)은 57세 때 처음으로 떠난 유럽 여행에서 피카소를 만났다. 그 만남에서 피카소는 장다첸을 ‘오로지 전통만 있을 뿐 창조적인 부분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런 장다첸이 2011년 피카소를 가볍게 제치고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잘 팔린 작가로 꼽혔다.미술시장 분석 회사인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는 최근 ‘2011년 세계 미술시장 개요’에서 장다첸이 2011년 경매 낙찰 총액 5억달러(약 5700억원)를 넘어, 2010년에 피카소가 세운 최고가(3억6000만달러·약 4140억원) 기록을 경신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일파만파다. 연이어 쏟아지는 수사 속보를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은 ‘상류층의 비리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부산저축은행 관계사인 갤러리를 통해 미술품을 담보로 거액의 불법 대출이 이뤄졌다는 내용이다. 이번에도 권력형 비리의 파트너가 미술품이 된 셈이다. 이러다간 미술품 자체에 대한 인식마저 곡해될까 염려스럽다. 여하튼 미술작품이 얼마나 돈이 되기에 이리도 법석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특히 362억원을 대출받기 위해 담보로 제공된 작품 23점 중 21점이 중국 현대회화로 알려지면서 중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조각가 김영원, 화려한 오방색의 추상작가 이두식, 극사실주의 1세대 작가 지석철, 나무와 숲의 화가 주태석…. 한국 화단의 대표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라는 것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 교수들이 분야를 망라하고 하나로 뭉쳤다. 미술대학 발전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HOMA·Hongik Museum of Art)에서 12월 6일부터 19일까지 ‘201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 교수 작품전’을 개최한다. 동양화·회화·조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