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여야의 새로운 전선(前線)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5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돼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 국회와 협의할 대통령 개헌안을 준비해달라”고 주문하자, 야당은 즉각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장제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하는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117석의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반대할 경우 정부 주도 개헌은 사실상 어렵다. 지난 2월 5일 서울 반포동
지난 1월 30일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대륙아주 사무실에서 이시윤(83) 전 헌법재판관을 만났다. 이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있는 이시윤 전 재판관은 1962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해 춘천지방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거쳐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4년간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법조계의 대표적 원로로 평가받는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최근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된 대법원과 비대해진 법원행정처가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사람보다는 구조를 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남북 간에 해빙무드가 급속히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화 국면이 북한에 핵무력을 완성할 시간을 벌어줘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우려의 바탕에는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남북 대화 국면이 자칫 대북 제재와 압박을 이완시키고 북한의 협상력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우려다.지난 1월 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병연 교수(경제학과)도 “개의 꼬리로 몸통을 흔들겠
2018년이 위기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북핵(北核) 위기부터 우리 앞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올해 우리는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북한에 맞서 전쟁이냐 평화냐는 마지막 선택지를 받아들 가능성이 크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안보 리스크에 더해 3고(고금리·고유가·원화강세)를 힘겹게 넘어야 한다. 여야가 사활을 걸 지방선거는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덮어버릴 ‘정치 과잉’을 다시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정덕구(70) 니어재단 이사장을 만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이 같은 위기의 폭과
북한 김정은이 영하 20도를 밑도는 엄동설한에 백두산에 올랐다는 뉴스가 나온 날, 뒤늦게 ‘장성택의 길’을 읽었다. 작년 2월 발간된 이 책은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정치학자 라종일(74) 교수의 저서. 현재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는 라 교수는 이 책에서 학자의 시선과 대북 정보 책임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에 소설적 상상력까지 버무려 장성택이 왜 비참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다.김정은 체제에서 ‘1호 동지’로 불렸던 2인자 장성택은 자신이 권좌에 앉힌 처조카에게 왜 죽임을 당했을까. 그의 처형 원인에
1934년생인 노(老)학자는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큰 소리로 물었고, 그는 천천히 또박또박 답했다. 그가 “책 한 권 내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답했을 때 서로의 문답(問答)에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사연이 진짜 그랬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쉼 없이 하나둘 자료를 모았고 천신만고 끝에 지금에야 책을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교 용어인 정진(精進)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위원장을 지낸 정양모(83) 박사가 펴내는 ‘조선시대 화가 총람
대전시 대덕 특구에 있는 국가핵융합연구소를 찾아가면서 생뚱맞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떠올랐다. 핵융합 전문가를 만나기 전 머릿속에 입력해둔 핵융합과 핵분열에 관한 기초지식들이 엉뚱한 연상작용을 일으킨 모양이다. 하지만 100% 엉터리는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핵분열은 죽고, 핵융합은 살아야 할 상황 아닌가.현 정부가 궁극적 폐기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원자력발전은 핵분열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물질의 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서 쪼개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발전을 한다. 핵이
지난 7·3 전당대회에서 의석 107석의 제1 야당 키를 잡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두 달여 동안 그야말로 좌충우돌해왔다. 밖으로는 “좌파 포퓰리즘 독재정권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해온 문재인 정권과 사방에서 부딪혔고, 안으로는 당 혁신을 추진하면서 구(舊) 여권 기득권 세력인 친박(親朴)들과 충돌해왔다. 최근에는 “5000만 국민이 핵 인질이 됐다”며 북핵과 맞서기 위한 미국의 전술핵 재반입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동분서주가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다소 주
‘양심은 이렇게 법 안에, 그리고 법의 주변에, 또 법을 넘어 존재하여야 한다.’김우창(80) 고려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하러 가면서 그가 최근에 펴낸 ‘법과 양심’(에피파니)이라는 저서에 나오는 구절을 곱씹어봤다. 노(老)학자는 양심이 법보다 우위에 있음을, 이른바 덕치(德治)가 법치(法治)보다 낫다는 진리를 깨우쳐주려는 것 같았지만 기자의 눈에 세상사는 여전히 갈피를 잡기 힘들다.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오랫동안 꿈꿔왔지만 지금 현실은 법이 있어도 살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법의 잣대가 공정하니 마니 격렬한 입씨름을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여전히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한 시간 넘도록, 정치에 무관심하고 TV도 보지 않는다는 그를 붙잡고 나라 걱정을 나눈 후였다. 그의 말은 이랬다. “나는 전향을 한 번 했다. 1992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했다. 이후에는 전향이라 할 만한 생각의 변화는 없었고, 다만 진화와 성숙이 있었다. 그런데 진보 진영에서는 내가 또 한 번 전향했다고 보는 것 같다. ‘제2의 김지하’라는 얘기까지 한다. 김지하에 비교해주니 나로서야 영광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된 지난 7월 24일 이종훈 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 전) 사장을 만났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한전 사장을 지낸 그는 한국 원자력 발전의 산증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76년 고리 원전 1호기 건설 부소장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원전 건설 현장을 누비면서 국산 원전 개발을 이끌었다. 한전 부사장 시절 한국 최초의 표준형 원전인 영광 3·4호기(OPR-1000) 개발 책임자로 뛰면서 원전 기술 자립 기반을 닦았고, 한전 사장 재임 5년간 3세대 국산 원전인 APR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경청(傾聽)할 필요가 있다.”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7월 5일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가진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새 정부를 향해 “완급(緩急)조절과 정책의 완결성을 높일 것”을 조언했다. 국회의장은 정당에 소속돼 있지 않지만, 정 의장이 민주당 출신이고 집권여당 내에서 입지가 상당하다는 측면에서 그의 ‘쓴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여당 성향의 유력 인사 가운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비판적 입장을 밝힌 건 이례적이다.국회의장 취임 1년과 제헌절 69주년을
“원론적으로는 청문회에 못 나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회서 나를 부르겠다는 게 논란을 확대하고 김상곤 후보자랑 나를 맞대결시키려는 의도라면 내가 말려들 이유가 없다.”지난 6월 19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병준(63) 국민대 교수는 6월 28일로 예정된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참석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김병준이 벼른다, 복수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던데 서부극도 아니고 그런 것은 없다”면서도 “2006년 일어난 일에 대해 모두 되씹어보고 반성하자는 차원의 얘기를 하고 싶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청와대에서 가진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신의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집권 초반 대통령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지도 모를 개헌을 먼저 꺼내든 것은 이례적이었다. 대선후보 시절 정부 내 개헌특위 구성을 공약한 바 있는 문 대통령은 이날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 정부 내에 개헌특위를 따로 두려고 한 것인데 국회가 그런 역할을 해준다면 정부 내에는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국회는 이
지난 2월 6일 서울 마포 불교방송빌딩 캠프사무실에서 만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곧 다가올 정치 빅뱅”을 강조했다.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면 그때부터 대통령 선거일까지 60일간 전광석화와 같은 정치적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지금의 100일은 과거 정치사의 10년을 압축해 놓은 것이 될 수 있다”며 “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이 불과 1주일 전 얘기지만 그 사나흘 전만 해도 누가 그런 예상을 했느냐”고 했다. 지금은 차기주자로서 지지율이 낮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전개되면 자신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지난 12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지난 12월 14일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은 그는 원내대표로 일했던 ‘7개월 열흘’을 돌아보며 “폭풍 같은 시간을 뚫고 왔다”고 했다. 4선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인 그는 지난 5월, 총선 패배로 만신창이가 된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았다.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親朴) 입장에서는 김종필의 자민련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그가 마뜩지 않았지만 총선 패배로 궁지에 내몰린 상황에서 그를 새 원내대
“누가 불쌍하다고요?”원희룡(52)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자리를 물러나면서 “외롭고 슬픈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고 하자, 갑자기 말을 멈췄다.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이 불쌍하다. 국민이 불쌍한 게 먼저다.” 원희룡 지사는 말을 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서 경쟁을 뚫고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은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통령의 입장이 아니라, 불쌍한 개인으로 여겨달라는 얘기를 하다니,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지난 10월 4일 오후 경기도 굿모닝하우스에서 남경필(51) 경기지사를 만났다. 굿모닝하우스는 옛 지사공관이다. 남경필 지사에게 “개선하고 싶은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기자가 묻자, 그는 “오렌지요?”라고 되물었다. 남 지사는 이렇게 말하곤 다시 되받았다. “오렌지보다는 한라봉에 가깝지 않나요?”“오렌지요? 한라봉은 어떻습니까!”1998년 그는 부친인 남평우 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사업가 집안의 아들로 자란 그는 연세대 졸업 후 잠시 아버지가 사주로 있던 경인일보에서 기자로 일
지난 9월 5일 아침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주 앉은 김부겸(58) 의원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전날인 일요일 충남 무창포에서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하는데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이날 아침 일찍 조찬 모임에도 갔다 왔다고 했다. 지역주의의 벽을 깨고 4년 만에 다시 국회에 들어와 대권을 향한 자기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일까.그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여권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지역주의의 아성을 세 번의 도전 끝에 무너뜨린 것이다
지난 8월 16일, 전북 무주군 반딧불장터에 ‘민생 투어’ 중인 김무성(65) 전 새누리당 대표가 나타났다. TV에서 익히 보던 그 모습 그대로다. 덥수룩한 수염에 팔뚝까지 걷어올린 남방셔츠와 면바지. 신발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맨발에 등산용 샌들 차림이다. 손에는 밀짚모자가 들려 있다. 6선 국회의원으로 집권당 대표까지 지냈지만 겉모습은 본인의 표현대로 ‘거지’꼴이다. 김 의원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재래시장 곳곳을 돌며 폭염 속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인사말을 건넸다. 어리둥절해 하는 상인들에게는 “새누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