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오전 11시14분경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인근 민가가 대여섯 채 드문드문 흩어진 도로변의 야산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5분도 채 안 돼 인근 산자락 나무들이 모두 벌겋게 변했고 사람들이 대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불길은 발화지를 중심으로 전 방위적으로 퍼졌다. 북쪽으로는 삼척, 동쪽으로는 한울원전 인근까지 화재가 번졌고 서쪽 내륙으로도 불길이 번져 울진군 금강송면(구 서면)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위협하는 규모로 커졌다.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의 금강송 군락지는 이번 산불의 최대 분수령이자 무조
성남 대장동 사태로 민관(民官)공동개발 현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있을 때 추진한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로 민관공동개발의 허실(虛實)이 하나둘 드러나면서다. 대장동 사태에서는 별다른 기여가 없는 민간이 공공이 강제수용권과 용도변경 등 인허가권을 동원해 헐값에 확보한 땅을 취득해 수천억원대의 개발이익을 취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 와중에 공공의 탈을 쓴 ‘낙하산’들이 민간업자들과 작당해 사업편의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억에서 수십억원대 뇌물을 받은 사실도
‘김○○. 출생일 2021년 ○월 ○○일’.지난 5월 1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아기방 칠판에는 아기 1명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창문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니 피부가 아직 불그스름한 신생아가 자원봉사자 품에 안겨 있었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 며칠 전 들어온 아이였다. 베이비박스를 국내에서 최초로 만든 이종락 목사가 아기방 왼편에 있는 베이비박스의 바깥쪽 문을 열자 건물 전체에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시끄럽게 울렸다. 이 음악이 울려퍼진다는 것은 긴급 보살핌이 필요한 아기가 왔다는 말
서울 종로구 창신2동은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한 국민의힘 오세훈 시장이 패배한 5개 동 중 하나다. 오세훈 신임 서울시장은 서울 전역 425개 동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눌렀으나, 구로구 구로3동과 항동, 강서구 화곡8동, 마포구 성산1동, 종로구 창신2동 등 5개 동에서 박영선 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패했다.구로3동과 항동이 구로구을(乙)에서만 3선 의원을 지낸 박영선 후보(초선은 비례대표)의 옛 지역구인 구로구에 속해 있고, 화곡8동과 성산1동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강서구와 마포구에 각각 속해 있다는
지난 3월 2일 전북 김제 심포항(港)에서 올라간 새만금 동서도로. 지난해 11월 25일 개통한 이 도로는 세계 최장 33.9㎞ 새만금방조제 완공과 함께 바다에서 호수로 변한 새만금호(湖)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다. 왕복 4차선 도로 위로 올라가니 양옆으로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풍광이 ‘모세의 기적’처럼 펼쳐졌다. 총연장 16.5㎞의 도로 가운데 지점에서는 동서도로와 열십 자(十)로 입체 교차하는 남북도로(남북2축) 교량이 새만금호 위로 놓이고 있었다. 3·1절 연휴 다음 날이라 그런지 지난해 말 개통한 왕복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제주시 봉개동(회천동) 폐기물처리장. 5년 전부터 폐기물처리장 입구 너머엔 가로 약 1m, 세로 1.5m, 높이 1m가량의 커다란 직육면체 모양 물체들이 겹겹이 쌓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흰색 건물 같지만 실제는 서로 다른 쓰레기를 압축해 올린 ‘압축 포장 폐기물’ 덩어리들이다. 압축 포장 폐기물은 대부분 오랜 기간 한자리에 방치되면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고 일부 포장은 뜯겨져 악취를 내뿜고 있다. 곳곳엔 폐기물 내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흥건했
인천 서구 왕길동의 ‘사월마을’. 수도권매립지로부터 약 1㎞ 떨어진 이 마을엔 50여가구만이 남았다. 1990년대만 해도 바다와 수풀로 둘러싸인 살기 좋은 동네였지만 현재는 비산먼지와 쇳가루가 날리는 험한 동네가 돼버렸다. 주택들 사이로 폐기물 중간처리 업체가 우후죽순 들어섰고 주변 새소리는 작업장에서 새어 나오는 굉음에 뒤섞인 지 오래다. 장선자 전 사월마을환경비상대책위원장은 “주민들 살기만 더 어려워졌다”며 “시에 관련 대책을 요구해왔지만 변한 건 없다”라고 말했다.국립환경과학원은 2017년 8월부터 2년간 사월마을 환경오염·주
문재인표 ‘가야공정’이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제2안민터널(가칭) 접속도로(IC) 공사현장에서 삼국시대 때인 4~5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곽묘(덧널무덤) 748기를 비롯해 석곽묘(돌널무덤), 석실묘 등 총 881기의 대규모 유구(遺構)가 발견되면서다. 여기서 쏟아져 나온 각종 형태의 토기와 철제칼, 갑옷, 장신구 등 유물만 무려 4000점이 넘는다. 터널 접속도로 공사현장에서 방대한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관련 공사는 올스톱된 상태다.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의뢰로 매장문화재 발굴을 진행 중인 경
지난 8월 4일,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에 아파트를 신규 공급하는 계획을 앞세운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8·4대책)이 발표되면서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서울시 등 관계 기관 합동으로 아파트 1만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한 태릉골프장 바로 앞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이 자리하고 있다.태릉과 강릉을 비롯해 국내 18개 지역에 산재한 조선왕릉 40기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스페인 세비야 총회에서 유네스코 세
지난 12월 16일 찾아간 전북 군산 시내 곳곳에는 더불어민주당 군산지역위원회가 걸어둔 현수막이 있었다. 그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군산시청과 시의회가 있는 군산시 조촌동에 내걸린 ‘2020년 군산시 국가예산 전년대비 320억 증가, 1조536억원 국회 최종 확정’이란 현수막이었다. 지방 소도시인 군산시의 인구는 27만명. 1인당으로 환산하면 약 390만원가량의 국가예산이 군산에 떨어진 셈이다.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과 문 대통령의 친구가 시장으로 있는 울산이 각각 사상 최대 규모인 7조755억원과 3조2175억원
지난 12월 2일 찾아간 부산 사상구 학장동의 대호PNC 부산공장. 부산 최대 노후 공업지역인 사상공단 일대의 다른 공장들과 달리 적벽돌의 외관이 돋보이는 이 공장은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찾은 폐공장이다. 오거돈 부산시장과 함께 사상공단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부산대개조’ 선언을 했다. 하지만 ‘부산대개조’ 선언이 나온 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폐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100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했다는 공장은 곳곳에 유리창이 깨진 흔적이 보였고 경비실에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공장 옆 이면도로에 서
‘웨어러블 로봇’을 대중에 알린 영화 ‘아이언맨’이 개봉한 것이 2008년이다. 초소형 원자로로 작동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젊은 군수사업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의 활약은 전 세계 군(軍) 관계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아이언맨’이 등장한 지 2년 후인 2010년, 경기도 의왕에 있는 현대로템 방산사업부도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현대로템은 IMF 외환위기 때 현대정공을 비롯 대우중공업과 한진중공업 철도차량 3사(社)가 통합 출범한 회사로, 우리 육군의 K-1, K-2 전차와 장갑차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100일이 넘어섰지만, 양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임시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 하지만 국제법에 근거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각국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이 직접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보겠다는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image1]누적 한·일 커플 1만여쌍지난 10월 6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Aichi
X세대(1970년대생)는 세대 담론의 투명인간이었다. 베이비붐세대는 바글거리는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후에도 부모와 자식 부양을 이중으로 책임져야 하는 슬픈 세대로, 386세대는 똘똘 뭉쳐 민주화를 이뤄낸 거룩하고 당당한 세대로 주목받았다. 그 다음은 순서로 보자면 X세대다. 하지만 세대 연구자들은 X세대를 건너뛰고 밀레니얼세대를 주목했다. ‘워라밸’과 ‘욜로족’으로 상징되는 이 세대야말로 기존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세대라며 연구하고 배우라고 한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1990년대생으로 표방되는 Z세대 연구가 한창이다. 스마트폰과
지난 7월 23일, 공주역에서 우금티터널을 넘어 우금치(牛禁峙)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우금치, 우금티, 우금고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고개에는 과거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호환(虎患) 걱정 없이 고개를 넘을 수 있지만, ‘소(牛)를 끌고 넘는 것을 금(禁)한다’는 뜻의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우금치는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94년, 죽창(竹槍)을 든 동학군이 일본군이 지휘하는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몰살당한 현장이기도 하다. 우금티터널 옆 옛 국도 변에 있는 우금치전적지를 찾으니 ‘
북한이 이른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한 지 이틀 후인 지난 5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찾았다. 인구 170명 안팎의 작은 시골마을은 여느 농촌 풍경과는 달랐다. 허리를 굽혀 농사짓고 있는 노인들 위로는 컨테이너를 매단 헬기가 날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들어서면 줄지어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마을회관에서 현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어 있는 옛 성주골프장 입구까지 약 500m 길이의 도로 양쪽으로 수백 개의 현수막이 빼곡히 달려 있다. ‘박근
“여기 사람들은 이제 관심도 없고, 뉴스에 가덕도공항 이야기가 나오면 ‘또 선거할 때가 됐나 보다’ 합니더. 그냥 지들 표 따묵는 밭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예. 섬이라 인구도 적으니까 개무시하기 딱 좋다 아입니까. 가덕도를 봉으로 생각하는 걸로 볼 수밖에 없죠.”부산 가덕도 대항동에 사는 황영우(56)씨는 ‘가덕도신공항’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가덕도는 부산 밑 끝자락에 있는 인구 3000여명의 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산 강서구 소속으로 부산 시내와 김해, 창원에서는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섬 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크게 가
1년 만의 일본이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일본 특유의 발 빠른 변화가 느껴진다. 10여명의 ‘70대 노인군단’이 맞는다. 이른바 ‘실버 계약사원’들로, 외국인의 입국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필자의 여권을 보자마자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인사한다. 주변에 보니까 영어·중국어·태국어·인도네시아어 인사도 들린다. 이들의 업무는 지문감식기에 손가락을 대는 방법, 입국카드 기입 요령 등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하루 8시간 근무에, 대략 20만엔 전후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노령 기초연금 같은 사회
을지로 3가에 자리잡고 있는 공구상들은 산업화 시대 한국 제조업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던 곳이다. 고층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요즘에도 을지로 3가 공구상 골목은 5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넓이의 골목사이로 공구를 실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위태롭게 지나가는 모습은 변함없다.공구상들의 쇠 깎는 소리만 들렸던 이 동네에 언제부터인가 포크레인이 건물을 긁어 허물어뜨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철거 공사 중인 현장과 공구상들의 작업 현장이 골목 하나를 두고
“나는 내 안의 천재성을 키워주겠습니다!”“나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겠습니다!”“나는 끝까지 나를 사랑하겠습니다!”지난 1월 5일 오후 1시,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한 특별한 대학의 입학식이 열렸다. 1300명의 신입생들은 엄숙하게 입학 선서를 했다.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학생들은 경북 경산, 부산,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과 애틀랜타, 호주 멜버른, 일본 구마모토에서 날아온 학생도 있었다. 신입생들의 나이는 10대부터 70대까지. 할머니, 손자뻘이지만 모두 ‘19학번’ 대학 동기이다